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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 2015년 2월 27일
    Posted by skyyoon 윤
      己未獨立 宣言書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이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노라 半萬年 歷史의 權威를 仗하야 此를 宣言함이며 二千萬 民衆의 誠忠을 合하야 此를 佈明함이며 民族의 恒久如一한 自由發展을 爲하야 此를 主張함이며 人類的 良心 發露에 基因한 世界改造의 大機運에 順應倂進하기 爲하야 此를 提起함이니 是 ― 天의 明命이며 時代의 大勢이며 全人類共同主權의 正當한 發動이라...
  • 2015년 1월 15일
    Posted by skyyoon 윤
    易學原理總論 Wordpress 登載目錄   • • 천지(天地)의 조직(組織) 음양(陰陽)과 생명(生命) • 음양(陰陽)의 호근(互根) • 음양(陰陽)의 호선호후(互先互後) • 음양(陰陽)의 호역(互易) • 음양(陰陽)의 호대호소(互大互小) • 생명체(生命體)의 조직(組織) • 생명(生命)의 형화(形化) 무형(無形)과 유형(有形) • 생명(生命)의 기정형변화(氣精形變化) • 팔괘(八卦)는 ...
  • 2015년 1월 15일
    Posted by sangki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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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로 보는 세상

易學原理總論 - 易學으로 본 人生問題

  •               易學原理總論 - 易學으로 본 人生問題 -

                                              韓 長 庚 著                     1971年 靑林社 刊

                                                                                    2001年 周易·正易  삶과꿈 刊 에 合本

     

    第一章 天地의 組織

    第一節 陰陽과 生命

    ■ 運動은 陰陽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天地間에는 萬物이 가득히 차 있는데, 이 萬物들은 하나도 運動치 아니하는 것이 없고 또 暫時도 運動을 繼續치 아니하는 것이 없으니, 우리는 이것을 살아있다 하고 易學에는 이것을 生生이라 한다. 生生이라 함은 萬物이 모두 살아 있어, 空間的으로는 無限히 뻗어 나가는 擴大運動을 行하고, 時間的으로는 生하고 자라고 여물고하는 生長成의 作用으로써 無窮히 이어나가는 繼承運動을 行하여. 空間的 時間的으로 恒久하여 그치지 아니함을 말함이다. 易學에서는 宇宙라는 말과 天地라는 말을 아울러 쓰고 있는데, 宇宙라 함은 上下 四方의 空間과 古往今來의 時間을 總稱하는 말이오 天地라 함은 太陽을 中心한 太陽系의 宇宙를 말하는 것이니, 宇宙와 天地는 말뜻이 大體로 同一하며 다만 空間과 時間을 總稱할 때에는 宇宙라하고 萬物의 生生하는 現象을 말할 때에는 天地라 하는 것이다.

     

    天地間에 空間的 時間的으로 運動이 그치지 아니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易學에는 이 運動體를 太極이라 하는데, 太極의 運動은 能動과 受動, 發顯과 收斂等 相反하면서 또한 相合하는 對待作用에 依하여 作用과 反作用의 運動이 일어나며, 能動 發顯等 動的作用을 陽이라하고, 受動, 收斂等 靜的作用을 陰이라 하니, 陰陽은 易學이 天地萬物의 生生하는 原理를 說明하는 用語로서, 萬物의 組織 運行 生成 變化等 온갖 狀態를 陰陽이라는 두마디의 말속에 包括치 아니함이 없는 特殊한 用語이다. 지금 科學의 電氣에 陰電 陽電이 있고, 磁氣에 陰極陽極이있고, 原子에 電子陽子가 있는 것 等이 모두 이 陰陽의 理에 依한 것이다.

    이제 天地間에서 陰陽의 運動하는 狀態를 보건대, 陰과 陽은 서로 對待하여 相合하지도 못하고 相離하지도 못하여, 陰이 있는 곳에 반드시 陽이 있고 陽이 있는 곳에 반드시 陰이 있으며, 陰陽은 對待作用으로써 한번 陰하고 한번 陽하면서 스스로 運動치 아니할 수가 없으므로 그 運動은 한번 닫히고 한번 열리고 하는 鼓動運動이 되는 것이니, 心臟의 躍動, 潮水의 往來같은 것이 바로 이 陰陽의 鼓動運動이다.

     

    陰陽의 互根

    萬物은 自體가 生生하기 爲하여 반드시 어떠한 形態로든지 그 組織體를 가지고 그 組織體에는 반드시 運行力이 있어 그 組織體를 運營하여 이에 運動이 繼續하는 것이다. 天地間의 萬物은 모두 地의 形質에 依着하고 地의 形質은 天의 引力에 根柢하니, 天의 引力은 氣의 流行함이오 地의 形質은 精의 凝做함이라, 그러므로 天地間에 生生하고 있는 萬物은 모두 天의 氣와 地의 精을 聚하여 이루어진 것이니, 繫辭에 「精과 氣가 物이 된다」함은 이를 말함이다. 精이라 함은 萬物의 形體를 組織하는 本質로서 곧 水火의 精을 말함이오 氣라 함은 萬物의 運行하는 힘으로서 곧 雷風의 氣를 말함이니, 精은 承受 包含 收藏 凝聚 等의 陰性作用을 行하고, 氣는 發施 流行 出顯 鼓動 等 陽性作用을 行하므로, 萬物을 組織한 精氣의 두 作用은 곧 陰陽의 對待이다. 萬物은 精의 組織體만 있고 氣의 運行이 없으면 生生作用이 行치 못하고 또 組織體가 없이는 氣의 運行이 있을 수 없으니, 그러므로 萬物은 生生하기 爲하여 반드시 組織體가 있고 그 組織體는 스스로 運動을 일으키지 아니할 수 없도록 構成되어 있는 것이오 이것을 陰陽의 互根이라 한다.

     

    互根이라 함은 陽이 陰에 依着하여 能動作用을 行하고 陰은 陽의 鼓動을 承受하여 受動作用을 行하여 相離하지도 못하고 相合하지도 못하고 二하면서 一하고 一하면서 二함이다. 互根하고있는 兩物은 하나는 動作하려하고 하나는 靜止하려하며, 하나는 出顯하려하고 하나는 收斂하려하여 거기에 스스로 作用과 反作用에 依한 動作이 生치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니, 이가 곧 運動이다. 天地는 太極이라는 運動體에서 陰과 陽의 두 作用이 生하고 그 陰陽의 交互作用에 依하여 運動이 일어나서 無限無窮한 生生作用을 行하니, 太極과 陰陽은 物의 組織體가 作用과 反作用의 두 作用을 生한 然後에 運動이 일어난다고 하는 一體兩用의 理이다.

     

     

    陰陽의 互先互後

    萬物의 體를 組織運行하고 있는 陰陽의 兩作用은 一物의 兩面作用 卽 一體兩用으로 되어 物의 生하는 때에 陰陽의 作用이 함께 生하는 것이오 陰이 먼저 聚凝한 然後에 陽이 스스로 生하는 것도 아니오 또 陽이 먼저 發動한 然後에 陰이 스스로 生하는 것도 아니다. 陰陽의 組織에는 先後의 別이 없는 것이나, 그 組織에서 運動이 生하는 때에는 스스로 先後의 別이 있으니, 物의 能動하는 것은 陽의 作用이오 受動하는 것은 陰의 作用이라, 萬物이 運動하는 때에는 반드시 能動과 受動이 있어 能動이 先하고 受動이 後하는 것이므로 物의 運動에는 能動하는 陽이 先하고 受動하는 陰이 後하는 것이며, 이 理에 依하여 一年中에는 春夏가 陽이오 秋冬이 陰이므로 一年의 節序는 春夏의 陽이 先하고 秋冬의 陰이 後하는 것이다.

     

    그러나 運動이 일어나는 때에 비록 能動하는 陽이 先하고 있으되, 그 陽은 靜止하고 있는 陰속에서 發生하는 것이니, 이는 陰이 先에 있고 陽이 後에 있음이다. 그러므로 萬物의 運行하는 作用으로써 볼 때에는 能動하는 陽이 先하고 受動하는 陰이 後하며, 萬物의 組織된 本體로써 볼 때에는 形質인 陰이 先하고 氣力인 陽이 後하는 것이며, 이가 陰陽의 互先互後하는 것이오 陰陽이 互先互後하는 까닭에 先하던 것이 後하고 後하던 것이 先하면서, 平等한 作用으로써 無限無窮한 運動을 繼續하고 그 運動은 알이 닭을 낳고 닭이 알을 낳음과 같이 圓狀을 圜行하는 形態로 되는 것이다.

     

     

    陰陽의 互易

    陰陽이라 함은 萬物의 對待하는 體用關係에 따라서 生하는 것이오 固定不變하는 것이 아니니, 이는 萬物의 組織과 運行이 모두 陰陽의 兩面을 가지고 있으므로 物과 物이 相對하는 때에 能動하는 者는 陽이 되고 受動하는 者는 陰이 되는 까닭이다. 事物의 現狀은 受動作用을 行하므로 陰이되고 事物의 變通은 能動作用을 行하므로 陽이 되는지라, 一年中의 陰陽體用關係로써보면 冬至에 一陽이 生한 以後에는 陰은 受動하는 現狀이 되고 陽은 能動하는 變通이 되므로 陰이 體가 되고 陽이 用이 되며, 夏至에 一陰이 生한 以後에는 陽은 受動하는 現狀이되고 陰은 能動하는 變通이 되므로 陽이 體가되고 陰이 用이되는 것이니, 이것은 陰陽이 서로 體가되고 서로 用이 되어 陰陽이 互易하는 것이다.

     

    萬物은 모두 陰陽兩面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 物이 있는 때는 반드시 그 속에 陰과 陽이 있고, 또 陰의 속에도 陰과 陽이 있고 陽의 속에도 陰과 陽이 있어, 樹枝狀의 陰陽이 限없이 分布하고 있는 것이니, 精氣의 關係로써 보더라도 氣는 陽이오 精은 陰인데, 同一한 氣의 속에도 雷는 陽이오 風은 陰이며, 同一한 精의 속에도 水는 陰이오 火는 陽인 것이 그 一例이다.

    天地間에는 至大至廣한 者로부터 至細至微한 者에 이르기까지 모두 陰陽이 分布되어 있으므로 或은 한번 陰하고 한번 陽하여 限없는 運動을 繼續하고 或은 陰이 陽으로 變하기도하고 陽이 陰으로 變하기도하여, 陰陽의 互易作用에 依하여 萬物의 不測한 變化가 生하는 것이다.

     

    陰陽의 互大互小

    萬物의 運動은 陰陽의 交互作用에 依하여 일어나는 것이므로 거기에는 陰陽의 差等과 平等의 두 가지 作用이 있는 것이다. 陰陽은 一物의 兩面作用이므로 交互로 作用하여 그 機能이 平等한 것이니, 萬一 陰陽에 優劣과 强弱의 差等이 固定되어 있다고 하면 優强한 者가 常勝하고 劣弱한 者가 常敗하여 그 運動過程에 스스로 偏勝偏敗가 生하여 마침내 運動이 終止되는 것이다. 그러나 陰과 陽에 아무런 差等이 없고 固定的으로 平等하다고 하면 或은 兩勢가 相敵相持하여 交互作用이 行치 못하여 스스로 運動이 停止되고 或은 兩勢가 相觸하는 때에 衝突만 있고 調和가 없어서 모두 破壞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陰陽은 그 本體는 서로 差等하면서 그 運行은 平等한 것이니, 이것을 水火로써 보건대 水는 陰이오 火는 陽이라 同量의 水火를 서로 接觸하면 水가 能히 火를 滅하니, 이는 陰大陽小함이오 水는 비록 火의 近處에 있더라도 서로 接觸치 아니하면 能히 火를 滅치 못하되, 火는 水의 近處에 있으면 熱을 照射하여 能히 水를 말릴 수가 있으니, 이는 陽大陰小함이다. 水火는 그 組織體로는 水의 힘이 大하고 火의 힘이 小하며, 그 運行作用으로는 火의 힘이 大하고 水의 힘이 小하니, 이가 陰陽의 互大互小이오 陰陽은 互大互小로써 서로 平等한 것이다.

     

    萬物의 生生作用은 大小長短等의 差等이 없으면 組織體를 構成치 못하는 것이므로 그 體는 各其 獨自한 形態를 가지고 스스로 差等이 있는 것이오, 그 運行은 偏勝偏敗가 있으면 交互作用이 行치 못하여 生生이 끊어지는 것이므로 그 作用은 互大互小하여 差等하면서 平等한 運動을 行하는 것이다. 人體로써 보면 男體는 陽이오 女體는 陰이라 男體의 體軀와 體力은 女體보다 大하니, 이는 陽大陰小함이오, 女體는 胎宮을 有하고 모든 人類는 이 胎宮中에서 길러서 出生하니, 이는 陰大陽小함이며, 男體와 女體는 互大互小하여 서로 平等한 까닭에 易理에는 男女平等을 原則으로 한 一夫一婦制를 말한 것이다.

     

     

    生命體의 組織

    天地는 一太極의 運動體로서 그 속에 陰陽의 兩作用이 있어 一體兩用의 象이되고, 陰陽은 互根 互易 互先 互後 互大 互小의 여러 가지 作用으로써 不斷히 運動을 일으켜서 萬物을 生生하니, 陰陽의 서로 作用하는 힘이 곧 生命이오, 그러므로 陰陽은 生命元이 되어 陰陽運動의 行하는 곳에 반드시 生命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生命의 없는 곳에는 運動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오, 生命自體가 生生하기 爲하여 스스로 運動을 일으키는 때에 陰陽의 두 作用을 行하는 것이니, 太極이라 함은 天地를 一統한 하나의 生命體이므로 太極의 運動에서 陰陽作用이 生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陰陽運動과 生命은 어느 것이 先하고 어느 것이 後한다는 先後의 別이 없는 것인데, 이것을 宇宙의 組織으로써 보면 陰陽組織이 있는 까닭에 生命이 流行하는 것이므로 陰陽이 先하고 生命이 後하며, 宇宙의 運行으로써 보면 生命이 있는 까닭에 陰陽의 運動이 일어나는 것이므로 生命이 先하고 陰陽이 後하는 것이며, 易經은 先天運行의 理를 말한 까닭에 太極이 陰陽兩儀를 生한다 하여 太極이 陰陽보다 先한다 한 것이오, 이 글은 先天과 后天을 合한 原天組織을 말한 까닭에 陰陽을 生命의 元이라하여, 陰陽이 生命보다 先하다 한 것이다.

     

    陰陽은 萬物의 生命元이 되고 陰陽의 交互作用하는 힘이 生命인데, 陰과 陽은 비록 하나의 生命을 生하고 있으되 本是 對待되는 두 作用이므로 生命의 속에도 스스로 陰元과 陽元의 두 元이 合하여 있으니, 이는 父母가 相交하여 한 아이를 生하되 그 아이에게는 父母의 두 元이 合하여 있음과 같음이다. 陽은 能動하여 萬物을 創始하는 作用이 있으므로 이 創始作用을 陽元이라 하고 陰은 受動하여 陽元을 承受하여 萬物의 形質을 創生하는 作用이 있으므로 이 創生作用을 陰元이라 한다. 陰陽은 陰元과 陽元으로써 相交하는 것이므로 陰元이 陽元을 承受하여 物을 作成하는 것이 곧 生命體의 創造이니, 그러므로 모든 生命體는 陰陽二元의 妙合한 運行에 依하여 生生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곧 一體二元의 理이다.

     

    物의 生生에 一體二元의 理가 있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이는 萬物의 生生에 陰陽의 體用對待가 있는 까닭이다. 萬物의 生生에는 반드시 組織의 體와 運行의 用이 있으니 組織의 體라 함은 여러 個體를 合하여 하나의 生命體를 構成하는 것이오 運行의 用이라 함은 組織體를 統一的으로 움직이는 作用이며, 모든 組織體는 運行의 用이 있은 然後에 비로소 그 生生의 機能을 發揮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萬物이 生生作用을 行하기 爲하여는 어떠한 形態로든지 반드시 運行을 하지 아니하는 것이 없고 또 暫時도 運行을 繼續치 아니하는 것이 없으며, 또 그 組織이 스스로 運行을 일으키지 아니할 수 없도록 構成되어 있으니, 組織의 體는 陰의 象이오 運行의 用은 陽의 象이라, 그러므로 萬物의 生生은 모두 陰陽의 一體二元의 理로 되는 것이다.

     

    陰陽의 交互作用하는 힘이 生命이오 原天의 陰陽이 交互作用하는 때에 宇宙의 生命이 나타나는 것인데, 萬物의 生生에는 一體二元의 理가 있으므로 宇宙의 生命도 單獨으로 存在하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對待作用을 行하는 어떤 物과 合體되어 있는 것이다. 宇宙를 사람의 一身이라고 하면 사람의 一身에 生命體로 되어 있는 形質과 그 形質을 움직이는 精神이 있음과 같이 宇宙에도 또한 生命體와 精神作用이 있는 것이니, 이는 生命이 自體가 生生하기 爲하여는 반드시 自體의 生生을 營爲하는 精神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繫辭에 「形而上한 者를 道라 이르고 形而下한 者를 器라 이른다」하고 또 「한번 陰하고 한번 陽하고 함을 道라 이르고 陰하고 陽하고 하여 測치 못함을 神이라 이른다」하니, 有形而下하는 器는 無形에서 有形으로 化하는 生命이오 形而上하는 道는 한번 陰하고 한번 陽하여 그 變化함을 測할 수 없는 神이며 神은 宇宙의 精神인 唯一神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神과 生命은 形而上과 形而下로써 對待하여 生命은 形質의 生生이 되고 神은 精神의 運行이 되어 陰陽의 있는 곳에 스스로 神과 生命이 있는 것이며, 神과 生命은 天地太一體가되어, 神은 모든 生命體의 主宰가되고 生命은 神의 指令을 承行하여 萬物을 生하는 것이니, 神과 生命은 또한 一體二元의 理이다.

     

    神과 生命은 모두 無形하여 外形에 나타나지 아니하고 있으나, 그 造化의 迹은 萬物에 나타나고 있으니, 光明은 神의 作用이오 萬物의 躍動은 生命의 作用이며, 物의 永遠繼承은 神의 作用이오 物의 生滅은 生命의 作用인 것 等이 그 一例이오 이는 모두 形而上과 形而下의 區別에서 生하는 差異이다.

     

    科學者의 말 = 生命體는 無機物質에서 起源하였다고 한다. 지금에 科學者들은 化學的으로 生命의 起源을 究明하였다고 말하고 있으나 化學的으로 말하는 生命은 生命體의 分子組織을 究明함이오 生命의 究明이 아니니 이는 化學的生命論은 生命體를 오직 物質的으로만 보고 神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모든 生命體는 化學的으로 分析하면 거의 同一한 物質로 이루어지고 모든 生命體가 同一한 化合物로 이루어졌다는 事實은 모든 生命體의 起源이나 또는 化學的으로 본 根本的인 設計가 同一하다는 結論을 얻게 된다.

    第二節 生命의 形化

     

     

    無形과 有形

    物의 生生하는 것은 無形에서 有形한 形質이 生하여 空間的으로는 無限히 擴大하고 時間的으로는 無窮히 繼承하는 것인데, 陰陽生命元에는 形이 없으니, 形이 없으면 또한 生生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生命元은 自體가 生生하기 爲하여 스스로 無形으로부터 有形으로 化하는 運動을 行하는 것이니, 이는 天地間 萬物은 各其 自體의 生生法則을 가지고 自體의 法則을 따라서 生生하고 있는 것이므로 生命元도 또한 自體의 生生을 爲하여 自體의 生生法則을 따라서 無形으로부터 有形으로 化하는 運動을 行하는 것이다.

     

    無形으로부터 有形으로 化함에는 반드시 生命 氣 精 形의 順序를 밟는 것이니, 이것을 사람의 生殖作用으로써 보면 男體와 女體는 生命元의 象이오, 처음에 兩體의 氣가 相感하여 愛戀의 마음이 動하는 것은 氣化의 象이오 다음에 兩體의 水火作用이 行하여 陰精과 陽精이 相合하는 것은 精化의 象이오, 그 다음에 胎兒의 形이 成하는 것은 形化의 象이니, 사람의 生殖作用은 無形으로부터 有形으로 化하는 運動이므로 또한 生命 氣 精 形의 順序를 밟는 것이오, 이것이 萬物의 形化作用의 原理와 相合하는 것이다.

    天地間의 萬物은 無形과 有形으로 大別되어있고 有形은 모두 無形에서 生한 것이므로, 이 有形한 物은 다시 無形으로 돌아가는 理가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萬物에는 生하고 滅하고 하는 現象이 있어, 無形에서 生한 有形物은 반드시 生滅이 있는 것이오, 처음부터 形이 生치 아니한 者는 形이 滅할 것이 없는 까닭에 無形한 生命元은 生滅함이 없이 恒久히 繼續하는 것이다.

     

    萬物의 生命體는 恒久繼承하는 生命元을 包하여 써 本을 삼고, 生滅하는 有形한 바탕을 얻어서 써 形質을 삼고 있으므로 萬物에는 世世로 繼承하여 恒久存存하는 作用과 生하고 자라고 여물고하여 生生變化하는 作用과의 두 作用이 함께 行하여 이 天地間에는 萬物의 生生이 그치지 아니하는 것이다. 만일 天地間에 無形만 있고 有形이 없으면 비록 陰陽生命元은 流行한다 하더라도 萬物의 生生이 없어서 이 天地는 한 暗黑한 空殼에 不過한 것이오, 또 萬一 有形만 있고 恒久存存하는 無形이 없으면 萬物은 한번 消滅한 뒤에 다시 繼生하는 것이 없어서 또한 暗黑한 空殼에 不過한 것이다. 그러므로 天地間에는 無形한 生命元과 有形한 形質이 아울러 存在하여 恒久하면서 變化하고 變化하면서 恒久한 것이며, 萬物은 그 形態는 서로 다르되 모두 同一한 生命元에서 出生하여 無形으로부터 有形이 生한 것이므로 그 本源은 모두 同一한 것이다.

     

     

    生命의 氣精形變化

    陰陽生命元이 無形에서 有形으로 化하는 氣精形의 順序를 보건대, 陰陽生命元은 無形한 것이오, 萬物의 生生하는 運動은 모두 無形에서 有形을 生하기 爲한 것이므로 陰陽生命元은 自體가 生生하기 爲하여 有形運動을 일으키는 때에 雷風의 氣가 生한 것이다. 生命元의 形化運動에서 雷風이 生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生命元은 陽元과 陰元으로 되는데, 陽元에는 奮動하는 作用이 있고 陰元에는 牽入하는 作用이 있으므로 陽元과 陰元이 形化運動을 行할 때에는 奮動作用을 行하는 氣와 牽入作用을 行하는 氣가 生하는 것이오, 宇宙를 運行하는 氣로서 奮動作用을 行하는 者는 電氣이오 牽入作用을 行하는 者는 磁氣이므로 生命元의 形化運動은 電氣와 磁氣를 生하는 것이며, 電氣와 磁氣는 처음으로 氣化하고 아직 形化되지 아니한 것이므로 生命도 아니오 物質도 아니오, 生命과 物質의 中間性을 띠고 있는 氣이다. 電氣와 磁氣는 生命元에서 第一 먼저 出生하여 陰陽對待關係를 가지는 것이므로 陽元과 陰元의 두 性을 具有하여 電氣에는 陰電陽電이 있고 磁氣에는 陽極陰極이 있는 것이며, 電氣와 磁氣는 天地間에 가득 차서 萬物의 運行하는 原動力이 되고 있으므로 電氣의 動하는 때에 雷의 鼓動作用이 生하고 磁氣의 行하는 때에 風의 施行作用이 生하는 것이니, 이가 生命元이 雷風의 氣로 더불어 一體가되어 天地間을 流行하고있는 氣化生命體의 생긴 始初이다.

     

    生命元의 運動에 依하여 電氣와 磁氣가 먼저 生한 것이므로 電氣의 있는 곳에 반드시 磁氣가 있어 磁氣中에 電氣를 含하고 電流가 通하면 그 周圍에 磁場을 生하는 것이며 太陽系宇宙의 中心이 되고 있는 太陽에도 또한 電氣와 磁氣가 있어 이 電氣와 磁氣가 太陽을 運行하고 모든 引力의 中心이 되고 있는 것이니, 太陽光明의 光波와 電波의 運動法則이 同一한 것은 太陽의 光明이 電氣로 되어 있는 까닭이오, 地上의 온갖 風의 變化는 太陽에서 오는 磁場風의 作用에 依한 것이다.

     

    그 다음에는 雷風의 氣가 또한 自體가 生生하기 爲하여 有形運動을 일으키는 때에 氣와 形의 中間性을 띤 精이 生하니, 精이라 함은 聚하면 有形이 되고 散하면 無形이 되는 것이며, 宇宙間에서 有形도 되고 無形도 되면서 그의 聚散作用에 依하여 萬物을 生生하는 精은 水火이니, 그러므로 雷風의 形化運動에 依하여 먼저 生한 것은 水火의 精이다. 雷風의 形化運動에서 水火의 精이 生하는 것은 雷의 衝擊에 依하여 電火가 일어나고 風의 零下 二百餘度의 冷凝에 依하여 水液이 生하는 것이 그의 한 形態이며, 雷風의 氣는 無形하여 아무런 막힘이 없는 것이므로 雷風에서 生한 水는 透明하고 火는 光明한 것이다.

     

    水火는 陰陽對待關係를 가지고 天地間을 流行하면서 氣가 聚하면 凝結하여 有形한 精이 되고 分하면 發散하여 無形한 氣로 化하여 恒常 流動狀態로 되어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水火는 無形과 有形의 中間狀態로 되고 萬物이 無形으로부터 有形으로 化하는 過程과 또 有形으로부터 無形으로 變하는 過程에는 반드시 水火의 聚散作用이 行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水火의 精이 또한 自體가 生生하기 爲하여 有形運動을 일으키는 때에 精이 凝固하여 비로소 形質이 되는 것이오 精의 凝固한 形은 山澤이다. 水火의 精이 山澤의 形으로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水는 流下하는 것이오 火는 炎上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水火에는 聚散作用만 있는 것이 아니오 또한 上下로 오르내리는 升降作用도 있는 것이다. 水는 流下하는 것이로되 水가 流下치 아니하고 蓄貯하여 위로 升하여 넘쳐흐르면 水의 形體가 成하여 澤이 되는 것이니, 人體의 血液 植物體의 津液같은 것이 모두 澤의 象으로서 水의 形化한 것이며, 火는 炎上하는 것이로되 火가 炎上치 아니하고 收斂하여 아래로 降하여 地中에 갈무리하면 火가 土로 더불어 形體를 成하여 山이 되는 것이니 山이 地上에 솟아 있는 것은 火의 升降作用을 因하여 山의 土石이 생기고 火가 그 속에 갈무리하고 있는 것이며, 人體의 骨肉 植物體의 木質같은 것은 모두 山의 象으로서 山의 形化한 것이다. 山澤은 形으로서 體가 凝固하고 있으되 서로 陰陽對待 關係를 가지고 있으므로 凝固한 體의 속에서 그 氣가 相通하는 것이오 山澤의 속을 通하는 氣는 雷風이니, 이는 雷風의 氣는 山澤의 形에 依附한 然後에 萬物을 生生하는 原動力의 作用을 行하는 것이오, 山澤의 形은 內部에 雷風의 氣를 갈무리한 然後에 萬物의 奮動과 牽入의 作用을 行하는 것이다.

     

     

    八卦는 生命의 運動

    生命元의 形化하는 氣精形의 順序는 바로 易學의 乾 坤 雷 風 水 火 山 澤의 八卦象의 順序로 되니, 이는 易學의 八卦가 天地萬物의 生生하는 原理를 밝히는 가장 根本되는 圖像인 까닭이다. 八卦는 本是 天 地 雷 風 水 火 山 澤인데, 여기에 天地를 말하지 아니하고 乾坤을 말하는 것은, 天地라 함은 萬物을 生生하는 位를 말함이오 乾坤이라 함은 萬物을 生生하는 主體를 말하는 것으로서, 生命元인 陽元과 陰元도 乾元과 坤元으로 되어 있는 것이므로 萬物의 生生主體의 象을 取하기 爲하여 乾坤을 말한 것이다. 生命에는 時間的으로 無窮히 繼續하는 繼承性이 있고 空間的으로 無限히 擴大하는 流行性이 있는 것인데, 易理에 雷에는 世世로 繼承하는 作用이 있고 風에는 四方으로 流行하는 作用이 있으므로 生命의 形化運動에는 스스로 世世繼承作用을 行하는 雷와 四方流行作用을 行하는 風이 生하는 것이며, 生命雷風의 合體한 것이 곧 氣化生命體이다. 萬物은 聚하면 形이 生하고 散하면 形이 滅하는 것인데, 氣化生命體가 形化하고저 하면 먼저 聚하여야 하는 것이오 天地間에서 聚散作用을 行하고 있는 것은 水火의 精이므로 雷風의 形化運動에는 스스로 水火의 精이 生하는 것이오 氣化生命體에 水火의 精을 合한 것이 곧 精氣의 合體한 精化生命體이다.

     

    水는 流下하는 것이오 火는 炎上하는 것이라, 水火의 精의 形化運動에는 반드시 그 對待勢力을 遇하여 氣가 靜하고 精이 凝한 然後에 形體가 이루어지는 것이니, 그러므로 流下하는 水는 上升하여 澤이 되고 炎上하는 火는 下降하여 土中에 갈무리하여 山이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水火의 形化運動에는 스스로 山澤의 形이 生하는 것이오, 山澤의 形이라 함은 모든 生物의 形質을 構成한 要所이다.

     

    山澤은 이미 有形한 形質로 되고 있으므로 그 속에 無形한 雷風의 氣를 갈무리한 然後에 能히 運動을 行하는 것이니 이는 八卦의 象에 山澤과 雷風이 서로 反易하여 雷風은 山澤에 依附하고 山澤은 雷風에 依하여 서로 通氣하는 理이다.

     

    註 ●易學의 八卦原理

    萬物의 生生은 반드시 無形에서 有形으로 化하고 無形에서 有形으로 化함에는 陰陽生命元 雷風의氣 水火의精 山澤의形의 順序를 밟고 있는 것이오, 이 形化運動은 반드시 어떠한 生生原理의 속에서 어떠한 象으로 나타나는 것이니, 이가 옛적의 伏羲氏라는 聖人이 天文 地理 鳥獸의文 草木의地宜等 形象과 人身 萬物의 生生하는 理를 보고 비로소 八卦를 劃하여 그 生生하는 原理를 밝히니, 그러므로 八卦는 天地萬物의 生生하는 原理를 圖像으로써 表示한 學問이다.

     

    八卦의 劃象은 生命元인 陰陽에서 始하니, 이는 萬物의 生生은 반드시 男女 雌雄等의 陰陽兩性이 있고 萬物의 組織에도 반드시 剛柔 長短 曲直等의 陰陽兩性이 있고 萬物의 運行에도 반드시 消長 聚散 往來等의 陰陽兩性이 있는 까닭이다. 物의 陰陽性을 表示함에 陽을 −로 劃하고 陰을--로 劃하니 이는 陽의 象은 奇하고 陰의 象은 耦하여 奇의 象은 專一하고 耦의 象은 兩分하고 한 까닭이며, 모든 生物이 陽體의 生殖器는 奇하고 陰體의 生殖器는 耦하며 陽性인 馬의 蹄는 奇하고 陰性인 牛의 蹄는 耦하고 한 것이 그 一例이다.

     

     

     

    奇와 耦는 物의 陰陽組織이오, 陰陽의 組織體가 相交하여 새로 一物을 生하는 것은 物의 陰陽運行인데 物의 陰陽運行은 반드시 三數로써 하니, 父와 母가 子를 生하는 것도 父母子의 三數의 運行이오 相反되는 두 運動의 속에서는 새로운 한 運動이 生하여 三數의 運動이 되는 것이오, 陰陽이 相交할 때에는 처음에 陰陽의 氣가 相感하고 다음에 陰陽의 精이 相聚하고 그 다음에 次世代의 形이 成하는 것도 氣精形의 三數運行이니, 그러므로 三數는 萬物의 始生하는 數로 되고, 物의 始生한 者는 씨이므로 三數는 또한 씨의 數로 되는 것이다.

     

     

     

    易卦는 物의 生生을 象하여 劃한 것이므로 生命元의 象인 陰劃과 陽劃을 서로 交錯하여 陰陽相交의 形態를 짓고 物의 始生하는 數인 三劃으로써 卦象을 作成하니, 卦는 모두 乾☰ 坤☷ 震☳ 巽☴ 坎☵ 離☲ 艮☶ 兌☱의 八卦로 된 것이다.

     

     

     

    三劃과 八卦는 三數와 八數이오 天地自然數에 一二三四五는 生數이오 六七八九十은 成數인데, 三은 生數의 中數이오 八은 成數의 中數이니, 그러므로 萬物은 三數에서 發顯하여 八數에서 體가 定하는 것이오, 易卦의 三劃과 八卦는 또한 物이 三에서 生하여 八에서 體가 成한다는 原理를 象한 것이다. 이 三八의 數를 生成의 理로써 보면 三은 精化의 씨의 象이오, 八은 精化의 씨가 열매를 맺아서 體가 定하는 象인데, 天地는 한 개의 씨의 生成하는 象으로서 天地自然數의 生成中心이 되는 三八의 數에 當하므로 易卦의 三劃八卦는 또한 한 個의 씨의 象으로 되어 그 속에 天地의 道를 彌綸하고 있는 것이다. 天地自然數는 一에서 八까지가 總三十六이오 易 八卦의 奇劃 一 耦劃 二의 合計가 또한 三十六이니, 그러므로 八卦라는 八數는 易理의 體가 定하는 數이오 지금 原子學에 八이 安定數로 되어 있는 것도 또한 이 理에 基한 것이다.

     

     

     

    八卦의 象은 다음과 같다

     

    ☰乾은 純陽이므로 天의 運行하는 象이 되고 純陽은 光明의 象이므로 太陽의 象이 되어 乾字를 쓰니, 乾은  倝과 乙로 되어  倝은 太陽이 비로소 나와서 光明하다는 뜻이오 乙은 物의 發展하는 形容이다. 그러므로 乾은 太陽의 光明이 비친다는 뜻이오 사람에 있어서는 男體의 象이 되며, 天地間의 모든 運動은 乾陽의 能動作用에 依하여 行하는 것이므로 乾은 生命元이 되는 것이다.

     

     

     

    ☷坤은 純陰이므로 地와 달의 陰質의 聚凝한 象이 되고 純陰은 物의 形質을 生하는 象이 되므로 坤字를 쓰니, 坤은 土와 申으로 되어 土氣가 伸하여 萬物의 形質을 生한다는 뜻이다. 坤陰은 반드시 乾陽을 承受하여 物을 生하는 것이므로 受動作用으로써 乾陽을 받아서 內部에 陽氣를 含하고 外面에 光明을 生하여, 그 作用은 乾과 함께 生命元이 되고 그 形質은 地와 달이 된 것이며, 사람에 있어서는 女體의 象이 되는 것이다.

     

     

     

    六子

     

    乾은 男體의 象이오 坤은 女體의 象이므로 乾坤을 父母로 하여 六卦가 生하고 이 六卦를 六子라 한다. 坤이 乾을 交하여 一陽을 得한 震☳ 坎☵ 艮☶의 三卦는 二陰一陽이 되고 이것을 陽卦라하며, 乾이 坤을 交하여 一陰을 得한 巽☴ 離☲ 兌☱의 三卦는 二陽一陰이 되고 이것을 陰卦라 하니, 이는 萬物의 生生은 旣成한 속에 次世代로 될 新生命이 生하면 그 新生命이 物의 主가 되는 것이므로 坤이 乾을 交하여 一陽을 得한 것은 그 一陽이 主가되어 陽卦가 된 것이오, 乾이 坤을 交하여 一陰을 得한 것은 그 一陰이 主가되어 陰卦가 된 것이다. 萬物이 地上에서 生生함에는 반드시 아래에서 生하여 위로 올라가는 것이므로 乾坤의 相交에 依하여 所得한 六子는, 이것을 長中少로써 나누면 下劃이 主가 된 것은 長이 되고 中劃이 主가 된 것은 中이 되고 上劃이 主가 된 것은 少가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震은 長男이오 坎은 中男이오 艮은 少男이며, 巽은 長女이오 離는 中女이오 兌는 少女이다. 또 萬物의 生生함에는 氣精形의 順序를 따라서 처음에 氣가 生하고 다음에 精이 生하고 내종에 形이 生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長男長女인 震巽은 氣가되고 中男中女인 坎離는 精이 되고 少男少女인 艮兌는 形이 되는 것이다.

     

     

     

    ☳震은 처음에 生한 氣이오 一陽이 重陰中에 있어 奮出하려하여 鼓動作用을 行하는 象이 되니, 陽氣가 重陰中에서 鼓動作用을 行하는 것은 電氣의 陰陽相激하는 雷의 作用에 依한 것이므로 震은 雷의 象이 되는 것이다. 萬物의 陽體의 씨인 陽子는 반드시 陽體에 있어 生命이 鼓動하고 恒久히 繼承하는 것인데, 三男中에서 오직 震雷가 氣로 되어 恒久性이 있고 또 鼓動作用으로써 能動作用을 行하여 運動이 繼續하고 있으므로 震卦에 生命의 繼承作用이 있어 陽子의 元인 乾元이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易學에는 오직 震卦에는 長子 또는 子를 말한 것이오 子라 함은 乾坤을 繼世하는 震子라는 뜻이다. 震卦에는 雷動과 繼世의 象이 있고 震字가 또한 雷霆 과 姙娠이라는 뜻이 있으므로 卦名을 震이라 한 것이오 사람에 있어서는 男體의 精子의 象이 되는 것이다.

     

     

     

    ☴巽은 처음에 生한 氣이오 天氣가 下降하여 地를 接하여 서로 牽引하는 磁氣의 象이며 磁氣의 힘에 依하여 風이 일어나는 것이므로 巽은 風의 象이 되는 것이다. 巽의 磁氣는 비록 氣이로되 陰性의 氣이므로 陽子의 象이 없고, 震子의 依附하는 바의 體로 되어 震의 陽氣와함께 恒久한 것이다. 巽字는 本是 으로서 와 丌로 되고 는 物을 具하는 形象이므로 巽은 丌上에 庶物을 具하여 薦한다는 뜻이니, 이는 地가 天의 陽氣를 順承하여 萬物을 生함을 象함이오 사람에 있어서는 女體의 股의 象이 되어 陰陽相薄의 象이 있는 것이다.

     

     

     

    ☵坎은 氣의 다음에 生한 精이니 精이라 함은 氣와 形의 中間에 있어 그 性이 流動하여, 散하면 氣로 되고 聚하면 形으로 되는 것이라, 坎은 坤陰中에 乾陽을 含하여 外暗內明한 精이오 水가 또한 流動하는 精으로서 內가 透明함으로 坎은 水의 象이 되는 것이며, 坎은 또한 달의 組織의 象이 되니, 이는 달은 坤陰의 속에 乾陽을 含하고 乾陽의 氣에 依하여 運行함이 水와 같은 까닭이다. 坎字는 土와 欠으로되어 陷穴이라는 뜻인데, 水는 地와 서로 떠나지 못하고 반드시 地의 卑陷한 곳에 고이는 것이므로 坎이라 한 것이오 사람에 있어서는 男體의 陽精水의 象이 되는 것이다.

     

     

     

    ☲離는 氣의 다음에 生한 精이오 乾陽이 坤陰에 依附하여 內暗外明한 精인데 乾의 純陽은 光明의 象이 되고, 純陽의 속에 一陰을 得하면 陽氣가 激化하여 火를 生하는 것이므로 離는 火의 象이 되는 것이며, 離는 또한 太陽의 組織의 象이 되니 이는 太陽은 乾陽이 坤陰에 依附하여 光을 發함이 火와 같은 까닭이다. 離字에는 兩麗라는 뜻과 鳥라는 뜻의 두 가지 뜻이 있으니, 離는 火를 發하는 陰宮으로서 陰體의 子宮의 象이 되므로 陽精의 附麗하는 兩麗의 象이 되고 또 陽體의 陽精水가 陰體의 子宮으로 넘어갈 때에는 반드시 兩體의 사이에 있는 空間의 絶處를 飛越하여야하고 空間의 絶處를 飛越함에는 반드시 火의 發揚作用과 水의 流通作用이 倂行하여야 하는 것이니, 이는 水火가 通明하여 絶處에 逢生하는 理이다. 陽體의 陽精이 陰體의 子宮으로 넘어감에는 水火의 作用으로써 空間의 絶處를 飛越하는 것이므로 坎의 陽精水에는 習飛의 象이 있어 坎을 習坎이라 하는 것이오, 離의 子宮에는 飛越하는 精을 承受하는 鳥의 象이 있어 鳥名의 離字를 쓴 것이며, 사람에 있어서는 女體의 子宮의 象이 되는 것이다.

     

     

     

    ☶艮은 내종에 生한 形이니 地氣가 上升하여 天을 接하고 아래의 二陰에 附하여 止하므로 山의 象이 된 것이다. 艮은 震子가 反顚하여 陽氣가 위에 뭉치고 氣가 形을 이룬 것이므로 씨가 生長하여 열매를 맺는 象이 되는데, 三男中에 가장 幼少하여 아직 成實치 못한 果實이 되고 後日의 長成하기를 待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果字의 半字를 써서 艮이라 한 것이다. 山은 위의 陽氣가 아래의 陰質에 附하여 萬物을 終하고 萬物을 始하는 곳이므로 艮은 사람에 있어서는 物의 終始作用을 行하는 男體陽根의 象이 되는 것이다.

     

     

     

    ☱兌는 내종에 生한 形이니 內部에 陽氣를 含하여 發宣하는 作用을 갈무리하고 外部에 陰精이 엉기어 形을 이루고 있는 것은 水가 갑아서(고여서) 上溢하는 것이므로 澤의 象이 된 것이다. 萬物의 陰體의 씨인 陰子는 形質의 作成作用을 行하는데 天地間에 처음으로 形이 나타난 것이 水이오 水의 成形한 것이 澤이며 六子中에 最後에 成形한 것이 또한 兌澤이니, 그러므로 兌澤에는 形質을 作成하는 作用이 있어 陰子의 元인 坤元이 된 것이다.

     

     

     

    兌는 一陰이 二陽을 包하고 陰陽이 嘉會하여 모든 生物의 血液 津液等이 되므로 說(悅)의 象이 되는데, 三女中에 가장 幼少하여 口의 象이 있으되 아직 言을 發宣치 못하고 後日의 長成하기를 待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說字의 言을 덜어서 半字인 兌를 쓴 것이며, 사람에 있어서는 女體의 卵子의 象이 되는 것이다.

     

     

     

    八卦中에서 乾坤은 陽物과 陰物로서 陰陽不測하는 神의 作用을 行하며, 陰陽의 交互作用하는 力이 곧 生命이오 乾坤은 바로 生命元이니, 그러므로 神과 生命은 一體二元의 理가 되는 것이며, 神은 無形하여 永遠不窮하고 生命은 無形에서 有形으로 化하는데 生命의 속에는 반드시 神이 갈무리되어 있으므로 八卦의 속에는 無形한 神作用과 有形한 萬物의 本能作用이 있어 그 生生作用을 行하는 것이니, 이가 易學에 伏羲氏가 비로소 八卦를 劃하여 써 神明의 德을 通하고 萬物의 情을 類한다고 한 것이며, 그러므로 易卦象에는 모두 神作用과 萬物本能의 作用의 象이 있는 것이다.

     

     

     

     

     

    太陽과 달의 生成

     

    生命이 氣化 精化하여 처음으로 有形物을 生한 것은 太陽이다. 이것을 易理로써 보건대 乾坤生命元이 運行하여 雷風의 氣를 生하고 雷風의 氣가 運行하여 水火의 精을 生하고, 그것이 乾坤의 統天作用과 水火의 聚散作用에 依하여 乾坤 雷風 水火가 合하여 生命 氣 精의 有形體가 結成되니, 이가 곧 太陽이다. 生命의 運動에는 陰陽이 互根하여 先後의 別이 없는 것이나 그 처음에 發生할 때에는 스스로 能動과 受動이 있어 能動이 先하여 陽이 되고 受動이 後하여 陰이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天地間에서 有形한 組織體의 始生한 것은 能動作用을 行하는 陽物인 太陽이다. 그러므로 太陽系 宇宙에서는 太陽이 가장 먼저 出生한 것이다.

     

    太陽이 이미 生하여 能動作用을 行하면 반드시 受動作用을 行하는 陰物의 組織體가 生치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오, 또 萬物은 獨陰獨陽으로서는 運動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므로 太陽은 陰體를 얻은 然後에 運動이 行하고 生命이 繼繼生生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太陽의 始生하는 때에 陰體가 太陽에서 分離하여 한 陰性의 組織體를 이루는 것이오, 이가 곧 地球이다. 太陽은 陽體이오 地球는 陰體인데 地球가 어떻게 하여 太陽에서 生하는가 하면, 이는 原始生物이 自體의 分裂에 依하여 繁殖하고 또한 男體의 속의 精子에서 女體가 出生하는 理와 같은 것이다. 사람의 男女는 모두 陽體의 精子에서 生하는 것인즉 이는 女體가 男體에서 生하는 것이오 사람은 日月에서 生한 것이므로 사람의 女體가 男體에서 生하는 것은 地球가 太陽에서 出生하는 原理에서 發源한 것이오, 그러므로 地球는 太陽속에서 生한 것이다.

     

     

     

    太陽에서 地球가 生하면 地球는 陰體이오 陰體는 그 組織이 偶하므로 地球의 內部에서 偶하려는 作用이 일어나서 스스로 水土의 一部가 分離하여 半空中에 逆上하는 것이오, 八卦中에서 土의 上升한 것이 山이오 水의 上升한 것이 澤이니, 그러므로 半空中에 逆上하여 組織體를 이룬 것은 山澤의 象인 달이다. 地球와 달과의 關係를 易理로써 보면 地球는 女體의 象이오 달은 女體의 胎宮의 象이며, 달이 生한 以後에 비로소 太陽과 달의 陰陽의 義가 맺아져 萬物의 生生作用을 行하는 것이다.

     

    太陽이 水火의 精을 얻어서 비로소 有形物이 된 것이므로 太陽과 地球 달의 사이에서 出生한 萬物은 모두 水火로써 體를 삼는 것이오, 地球와 달도 또한 水火로써 體를 삼아서 有形化한 것이다. 그러나 同一히 水火로써 體를 삼고 있으되, 陽物과 陰物의 組織形態는 서로 同一치 아니하니, 陽物은 陰을 體로하고 陽을 用으로 하는 까닭에 太陽은 內部에 水가 있고 外部에 火가 發揚하는 것이며, 地球와 달은 內部에 火를 갈무리하고 外部에 水가 流行하는 것이다. 太陽은 內水外火하고 地球와 달은 內火外水하므로 日月이 相交하는 때에 水火의 聚散作用이 行하여 萬物의 生滅作用을 行하는 것이다.

     

    太陽은 雷風의 氣化體가 精化體로 된 것이므로 太陽에서는 雷風의 氣가 宇宙運行의 原動力이 되어 電氣 磁氣 및 火精이 生生作用을 行하는 것이오, 달은 精化體가 山澤의 形化體로 된 것이므로 달에서는 山澤의 形이 萬物胎育의 胎宮이 되어 山澤 및 水精이 生生作用을 行하는 것이다.

     

     

     

    달은 地에서 水土가 逆上한 것으로서 달의 山澤과 地上의 山澤은 그 源이 同一하므로 달과 地上潮汐과의 사이에 密接한 引力作用이 있는 것이며, 달의 山澤은 六子中에 最少하여 長의 時運에는 아직 未成하고 世上에 出生치 아니하여 胎中에서 자라고 있는 胎兒의 象이며, 또 달은 地의 胎宮으로서 山澤으로써 形質을 삼고 있으니, 胎育中의 山澤과 달의 形質인 山澤은 別個의 두 山澤이 아니라 全然 同一한 山澤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長의 時運에는 山澤이 最少하여 여물지 못하고 있으므로 달도 또한 여물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地上의 萬物은 日月의 作用에 依하여 生生하고 있는데 달이 아직 여물지 못하고 있으므로 萬物도 또한 여물지 못하고, 사람도 人類全體가 아직 자라는 過程에 있는 것이다.

     

     

     

    乾坤生命元은 乾元과 坤元으로 되어 있고, 乾元과 坤元은 實際로 萬物을 生生하고 있는 日月속에 있으니, 太陽은 男體의 象이오 雷風의 氣가 太陽의 運行을 主하는데, 雷가 乾坤六子中에 가장 먼저 生하여 陽性作用을 行하므로 震子인 雷가 乾元이 되어 萬物을 資始하는 作用을 行하는 것이며, 달은 女體胎宮의 象이오 山澤의 形이 달의 組織을 主하는데, 澤이 乾坤六子中에 가장 내종에 生하여 陰性作用을 行하므로 陰精인 兌澤이 坤元이 되어 萬物을 資生하는 作用을 行하는 것이다.

     

    氣精形의 順序에는 氣가 먼저 生하여 始하고, 形이 내종에 生하여 成하는 것이므로 物을 始하는 乾元은 六子中 먼저 生한 陽氣인 雷를 用하고 物을 作成하는 坤元은 내종에 生한 陰精인 澤을 用하는 것이니, 乾元坤元이 모두 氣精形의 生生하는 陰陽의 自然秩序이다. 乾元과 坤元을 人身으로써 보면 乾元은 男體의 精子의 象이오 坤元은 女體의 卵子의 象이다.

     

     

     

    註 ●序卦의 日月生成

     

    序卦로써 日月의 生成하는 象을 보건대 乾卦의 大明은 太陽의 光明을 말함이오 坤卦의 牝馬는 달의 作用을 말함이니 이는 乾坤이 日月의 象으로 되고 있음을 總論한 것이다. 需訟卦에 乾陽과 水와 雷風의 象이 있어 비로소 太陽의 象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오 需訟卦의 다음인 師比卦는 水土의 象인데 水土가 地球에서 分離하여 天空中에 올라가서 달이 되니, 이가 곧 比卦의 顯比와 小畜卦의 密雲이며 密雲이라 함은 土가 逆上하여 山이 되고 水가 逆上하여 澤이 된 것으로서 空中의 山澤이 곧 달의 組織體이다.

     

    序卦라 함은 무엇인가 하면, 天地는 一個生命의 有機體로서 모두 自體안에 自體의 生成法則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萬物各個의 生長成에는 모두 同一한 起源과 共通한 法則이 있어 어느 한 部分에 變化가 發生하면 全有機體가 반드시 그것을 因緣하여 連鎖的變化가 일어나며, 또 그 變化形態는 各其自體의 生生法則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六十四卦의 卦序는 이미 乾男이 있으면 반드시 坤女가 있고 乾坤男女가 있으면 또 반드시 六十二卦의 子女生殖이 있는 것이니 이것이 緣緣生生이오 易學은 이生命體의 緣緣生生의 理로써 六十四卦를 序定하여 時運의 生長成하는 象을 말하고 그것으로써 天地人事 및 萬物의 運行變化하는 象을 밝힌 것이다.

     

    序卦는 易學의 가장 主要한 組織이니, 이것을 人身으로써 보면 人身의 耳目口鼻頭腹手足等은 身體를 構成하는 原材이오 이 原材가 各各 그 位置에 當하여 配列된 까닭에 사람에게 生命이 있고 性情이 生하는 것이다. 易學은 天地의 組織과 準似하여 하나의 生命體로 되어 그 속에 神明의 作用이 行하고 萬物의 性情이 動하는 것이니, 이는 六十四卦라는 原材가 各各次序대로 그 位置에 當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易學을 지은 聖人이 그 次序의 錯亂될 것을 念慮하여 特히 序卦 一篇을 지어서 한 生生體系를 이루어 놓은 것이다. 序卦의 組織을 人身으로써 보면 人類의創生 男體의組織 女體의組織 胎宮의組織 및 胎兒의生成의 다섯 部分으로 되어 있고, 宇宙로써 보면 日月의創生 日月의光明 日月의相互關係 달의陰精作用 后天月의胎育의 다섯 部分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宇宙萬物의 變化에는 變易 反易 交易의 三易이 있으니,

     

    變易이라 함은 物의 發展過程에 그 作用이 對待物로 變하는 形態이니, 寒이 暑로 變하고 暑가 寒으로 變하면서 陰陽이 互易하여 物을 生生하는 것 等이 곧 變易이오 지금에 어느 一物이 異質의 他物로 轉變하는 것을 化學的變化라 하는 것은 또한 變易의 한 形態이며, 易卦의 次序中에 變易하는 形態의 卦는 모두 八卦이다.

     

    反易이라 함은 物의 發展過程에 現狀의 속에서 그 對待되는 物이 發用하는 때는 그 對待物은 반드시 本體되는 現狀과 倒逆하여 反生하는 形態이니, 舊事物의 속에서 新事物이 生하는 때에는 그 新事物의 作用은 반드시 舊事物의 形態와 相反하는 것으로서, 母體中에서 胎兒가 母體와 逆生하여 있고 그믐달이 初生달로 倒生하는 것等이 곧 反易이오, 지금에 生物體에서 生生作用의 變化가 일어나서 새로운 作用을 生하는 것을 生理的變化라 하는 것은 또한 反易의 한 形態이며, 易卦의 次序中에 反易하는 形態의 卦는 모두 五十六卦이다.

     

     

     

    交易이라 함은 物의 運動過程에 그 位置가 對待物로 換易하는 形態이니, 太陽이 上에 있고 地가 下에 있어 上下의 位置가 定하여 있으되 物을 生生함에는 太陽의 陽氣가 地에 下하여 光熱로 되고 地의 水氣가 上하여 雲雨로 되는 것等이 곧 交易이오 지금에 物의 本質은 變치 아니하고 오직 相與하는 形態만 變하는 것을 物理的變化라 하는 것은 또한 交易의 한 形態이며, 易卦의 次序中에는 交易하는 形態의 卦는 없다.

     

     

     

    萬物의 生生한 次序를 보건대 最初에 無形에서 有形이 生하여 天地日月을 生한 것은, 陰陽의 相易하는 化學的變化인 變易의 理에 依하여 비로소 有形이 生한 것이오, 그 다음에는 父母가 子를 生하는 生理的變化인 反易의 理에 依하여 世世로 繼生하는 것이며, 오직 物理的變化인 交易으로서는 物이 繼生치 못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序卦에는 變易과 反易만으로써 次序를 定한 것이다. 序卦六十四卦中에 變易하는 次序는 八卦로서 全卦의 八分의 一이오 反易하는 次序는 五十六卦로서 全卦의 八分의 七이니, 이는 萬物의 生生은 八分의 一이 化學的變化인 變易의 形態로써 生生을 繼世하는 것이오, 八分의 七이 生理的變化인 反易의 形態로서 生生을 繼世하는 것이다. 宇宙創生의 初에는 無形에서 有形이 始生하는 때이므로 父傳子受하는 反易의 象이 없고 오직 無中生有하는 變易의 象이 있으므로 序卦는 變易하는 象의 乾坤으로써 首卦를 삼은 것이며, 今後에도 天地萬物의 生生에는 八分의 一이 恒常 變易의 形態인 化學的變化로써 生生하고 八分의 七이 恒常 反易의 形態인 生理的變化로써 生生하는 것이다. 이것을 物의 生生의 例로써 보면 生理的變化의 繼世는 胎生의 象이오 化學的變化의 繼世는 化生의 象이니, 植物이나 動物이 父母가 子를 生함과 같은 것은 胎生의 象이오, 先天月이 變하여 后天月이 되는 것 같은 것은 化生의 象이다.

     

     

     

    第三節 씨의 發生

     

    ■ 씨는 日月에서 生한다

     

    天地間을 流行하고 있는 生命은 自體가 生生하기 爲하여 空間的으로는 無限히 擴大하고 時間的으로는 無窮히 繼承하고 하는 作用을 行하는데, 이 作用을 行하기 爲하여는 반드시 萬物의 씨를 生하여 空間的으로는 子孫을 蕃殖하여 그 生生하는 境域을 넓혀야 하고 時間的으로는 生하고 자라고 여물고하여 世世로 이어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天地間에 無限히 擴大하고 無窮히 繼承하고 하는 作用을 가진 有形物로서 地上에 가장 큰 힘을 미치고 있는 것은 오직 太陽의 光明이니, 太陽의 光明은 地上에 下施하여 空間的으로는 비치지 아니하는 곳이 없고 時間的으로는 비치지 아니하는 때가 없으므로 萬物의 씨는 반드시 太陽에서 生한 然後에 無限無窮한 것이다.

     

     

     

    太陽의 光明속에 있는 乾元은 萬物을 創始하는 作用이 있는데 乾元은 곧 生命의 繼承作用을 가지고 있는 震子이오 震子는 또한 乾坤의 六子의 長으로서 物의 創始되는 象이 있으니 그러므로 太陽속에 있는 震子가 씨의 創始의 元이 되는 것이다. 萬物이 形을 가지고 있는 者는 그 形體에 모두 一定한 限度가 있어 消費하면 盡하는 것이로되 오직 火는 燒着할 物體만 있으면 空間的으로 얼마든지 퍼져나갈 수가 있고 時間的으로 얼마든지 繼續하여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니, 이는 火에 無限無窮한 作用이 있는 까닭이오, 火의 無限無窮한 作用은 太陽의 光明中의 震子에서 오는 것이며, 그러므로 太陽속의 震子는 繁殖하고 繼世하고 하는 作用을 行하여 씨의 元이 되는 것이다.

     

     

     

    乾坤의 生命元은 震子로써 씨의 創始의 元을 삼는데, 씨는 無限無窮히 擴大繼承하기 爲하여 반드시 陰體인 地上에 下施되는 것이니, 이는 太陽은 陽氣로서 씨를 創生하는 作用이 있고 地는 陰體로서 씨를 承受하여 기르는 作用이 있는 까닭이며, 씨의 元은 震子인 雷이오 씨를 地上에 下施하는 力은 天氣를 地上에 施行하는 磁氣인 風이니 그러므로 雷와 風은 乾坤生命元의 運行하는 氣로 되는 것이오 太陽이 또한 乾坤生命元과 雷風의 氣를 合하여 氣化의 生命體로 되는 것이며, 乾卦에는 이것을 象하여 天行健이라 하니, 天은 生命元인 乾坤이오 行은 天氣가 空間的으로 施行하는 風이오 健은 生命이 乾父를 닮아서 時間的으로 繼世作用을 行하는 震子이다. 天行健의 세 作用은 그 이름은 서로 다르나 모두 乾坤生命元이 自體가 生生하기 爲하여 運動을 일으켜서 雷風의 氣를 生하고 乾坤雷風이 統一된 作用으로써 하나의 氣化生命體를 이룬 것이니, 이 氣化生命體는 形이 생기기 以前의 天地混沌體의 象이오 또한 萬物의 생기기 以前의 無形한 氣化의 씨의 象이다. 어떠한 生命體이든지 그 生命體에는 반드시 自體運動의 作用과 空間的으로 長成하는 作用과 時間的으로 永續하는 作用과의 세 가지 作用이 있으니, 이는 三用一體의 形態이라. 天行健은 바로 이 三用一體의 組織을 말함이니, 天은 自體運動의 作用이오 行은 空間的 長成의 作用이오 健은 時間的 永續의 作用이다.

     

     

     

    氣化의 씨는 無形한 生命體로서 有形化할 것을 前提로 한 것이오, 無形에서 有形의 生하는 것이 곧 萬物의 生하는 始初인데, 萬物中에서 無形으로부터 有形을 生하여 物의 生成作用을 行하는 것은 水火의 精이다. 水火는 分散하면 氣로 化하여 無形이 되고 氣가 聚하면 精이 되어 形體를 이루는 것이니, 그러므로 水火의 精은 有形의 始가 되는 것이오, 無形한 氣化의 씨는 水火의 精을 얻어서 體를 삼아 비로소 形을 生하니 이가 곧 精化의 씨이오 繫辭에「精과 氣가 物이 된다」함은 生命元이 雷風의 氣와 水火의 精을 合하여 萬物의 形體를 이룬다 함을 말함이다. 氣化의 씨가 精化의 씨로 되는 作用은 日月에서 行하는 것이니, 太陽의 火精속에는 氣化의 씨가 있고 氣化의 씨에는 씨의 創始의 元인 乾元震子가 있으며, 달에는 坤陰의 水精속에 坤元인 兌澤이 있어 乾元震子를 承受하는 作用을 行하고 乾元震子와 달의 坤元兌澤이 合하여 精化의 씨를 作成하는 것이니 坤卦에 「至하다 坤元이여 萬物이 資하여 生한다」함은 달에서 萬物의 씨가 生함을 말함이다. 天地의 生成順序는 太陽에서 地球가 生하고 地球에서 달이 生하여, 太陽과 달은 그 根源이 同一하므로 乾元과 坤元이 또한 그 根源이 同一하고 다만 그作用이 相異할뿐이니, 作用이 相異한 까닭에 自身에게 無한 것을 相對方에게서 얻기 爲하여 二元이 相求하여 陰陽의 義가 되는 것이오, 本是 根源이 同一한 까닭에 서로 合하여 一體가되어 씨를 作成하는 것이다.

     

     

     

    달에서 精化의 씨가 生하면 이에 달 속에 있는 山澤의 形을 얻어서 形化의 씨를 이루는 것이니, 山澤은 六子中에 最後에 生한 形으로서 形質을 作成하는 作用이 있으므로 萬物의 씨는 모두 달의 山澤으로써 形質을 삼는 것이다.

     

     

     

    植物 動物 사람의 發生

     

    萬物의 씨의 發生하는 順序를 易序의 理로써보건대, 萬物의 씨의 元은 震子로서 男體에서 生하는 것이므로 씨의 發生하는 順序도 또한 三男의 順序로 되어, 먼저 長男 震의 形이 生하고 다음에 中男 坎의 形이 生하고 내종에 少男 艮의 形이 生하는 것이다. 震은 陽이 地中에서 反生하여 雷의 象이 되니 雷는 萬物의 씨의 元이오 또한 植物의 體가 土中에서 反倒하여 根이 地中에 着하고 幹이 地上에 出하는 象이니 그러므로 植物의 씨가 萬物의 씨의 元으로서 먼저 生한 것이며, 坎은 陽이 陰中에 陷하여 橫平하여 水의 象이 되고 能히 스스로 流行하니, 이것은 動物의 體가 橫平하여 自由로히 運動하는 象이오 그러므로 植物의 다음에 動物의 씨가 生한 것이다. 艮은 火의 炎上作用에 依하여 陽이 地上에 솟아서 山의 象이 되어 天을 接하니 이것은 사람이 直立하여 天地를 縱貫하는 象이오 그러므로 動物의 다음에 사람이 生한 것이다.

     

     

     

    植物 動物 사람은 그 形態와 生理는 서로 다르나 모두 그 源이 太陽과 달에서 나온 것이므로 本質은 서로 同一하여 植物體의 속에 이미 動物의 發生할 要素가 있고 動物體의 속에 이미 사람의 發生할 要素가 있는 것이다. 植物 動物 사람의 構成要素의 本質이 同一한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처음에 植物의 씨가 생길 때에 어느 한 種類의 植物만이 먼저 생기고 그 다음에 다른 種類가 잇따라 생기고 한 것이 아니라 神의 主宰하고 있는 生命體가 數多한 植物의 種類로 分身되어 有形化하는 것이오 그 數多한 植物의 種類의 作用을 綜合하면 도루 統一된 天地生命體의 作用이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物의 始生을 象한 乾元坤元에「萬物이 資始資生한다」하여 씨가 始生할 때에 萬物의 씨가 모두 創生되었음을 말한 것이오, 生命體는 神의 主宰에 屬하므로 生命體의 分身이 곧 神의 體의 分身이니, 그러므로 植物의 全種類는 모두 神의 體의 分身으로 되어 專혀 天地의 自然法則을 順從하는 것이다.

     

     

     

    植物이 이미 發生한 뒤에는 數多한 種類의 植物要素를 體로하여 數多한 種類의 動物이 發生하니, 動物은 植物보다 한 次元 더 높은 生物이라, 動物은 植物보다 그 構成要素가 增加하고 있으므로 植物에는 運動의 自由가 없고 動物은 運動의 自由가 있으며 動物의 本能生活은 植物보다 自由로이 行하고 植物의 全種類를 體로 한 까닭에 植物을 그 生養資料로 하고 있는 것이며, 動物도 어느 한 種類의 動物이 먼저 생기고 그 다음에 다른 種類의 動物이 잇따라 생긴 것이 아니다.

     

     

     

    植物이나 動物은 처음 創生當時에 各種類의 씨가 모두 따로따로 생기고 그 뒤에는 다만 各種類의 族屬이 蕃殖할 뿐이다.

     

    사람은 植物의 全種類의 要素와 動物의 全種類의 要素를 體로 하여 植物과 動物을 그 生養資料로 하고 全地球上에 單一種類로 되어 있는데, 植物과 動物은 數多한 種類로 나뉘어 있으므로 種類와 種類의 사이에는 서로 크게 差別되고 있으되 同一種類는 그 性品이 大體로 同一하며, 사람은 同一種類로 되어 있으므로 世界人類의 生理는 大體로 同一하되 各人의 個性은 서로 크게 差別되고 있으니 生理가 同一한 까닭에 世界人類는 모두 共同生活을 할 수가 있고 個性이 差別한 까닭에 人間社會의 複雜한 生活을 各其 分業하여 遂行할 수가 있는 것이다.

     

     

     

    植物 動物 사람의 發生한 要素가 무엇인가를 보건대 乾元震子와 坤元兌澤이 相交하면서 震子가 水精을 合한 水雷組織은 草木의 씨로 된 것이니 이는 雷(震子)는 씨의 元이오 水는 有形의 始이라, 씨의 元이 有形의 始와 合하는 때에 生物의 最初인 植物의 씨가 生하는 것이며 저 元素의 생길 때에 原子의 陽子數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質이 變化하여 여러 가지 種類의 元素가 생기는 것이니, 이 理에 依하여 씨의 생기는 때에도 太陽에서 氣化의 씨가 달에 下施되고 氣化의 씨의 要素의 많고 적음과 달에서 化合하는 物의 要素에 依하여 여러 가지 種類의 씨가 생기는 것이며 水雷組織은 太陽에서 氣化의 씨가 달에 下施되고 氣化의 씨의 要素가 달의 水精의 要素를 合하여 植物의 씨가 생긴 것이오 이는 精化의 씨의 始初이다. 氣化의 씨의 要素의 많고 적음에 依하여 그것이 精化하는 때에 質이 變하여 여러 種類의 草木의 씨가 生한 것이다.

     

     

     

    植物의 씨의 各種類가 이미 發生한 뒤에는 植物의 씨의 要素인 震子와 水精에 다시 土質의 要素를 合한 것이 곧 動物의 씨이니, 土는 形質의 成하는 것이므로 動物의 씨는 精化의 씨의 形化한 것이오 이는 水土組織의 禽이다. 禽이라 함은 鳥獸의 總名이니, 植物의 씨의 數多한 種類의 要素에 土質의 要素를 合하는데, 그 要素들의 많고 적음에 依하여 여러 種類의 動物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土에는 火精을 含한 山과 水精을 含한 地와의 두 가지가 있으므로 水精의 土質을 合한 씨는 冷血動物이 되고 火精의 土를 合한 씨는 溫血動物이 되는 것이다.

     

     

     

    溫血動物中에서 火精을 가장 많이 含有한 者는 虎이니 그러므로 虎는 눈에 火光을 發하고 神作用이 있는 것이며, 虎의 씨의 要素에 다시 太陽의 火精의 要素를 合한 것이 사람의 씨이다. 虎의 씨의 要素에 太陽의 火精을 合한 것이 사람의 씨이라 함은, 虎가 變하여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오 또 所謂 進化論과 같이 獸가 變하여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니 이는 獸가 한번 形體를 이루면 그 外部의 光色같은 것은 變할 수가 있으되 그 基本體인 臟腑組織이나 雌雄의 씨같은 것은 變할 수가 없는 까닭에 所謂 進化論은 成立될 수 없는 것이다. 虎의 씨는 震子와 水精에 火氣있는 土質을 合하여 構成되고 사람의 씨는 虎씨의 要素인 震子 水精 火氣의土 等을 合하여 體를 삼고 거기에 太陽의 火精 要素를 더 合하여 構成된 것이라 함이니 虎씨의 要素에 太陽의 火精을 더 合한 것이 곧 虎씨의 質이 變하여 사람의 씨로 되고 사람의 火가 天의 火를 應하여 몸이 直立하고 사람의 體中에서 火氣가 發揚하여 言語를 發宣하고 火氣의 烹湯作用에 依하여 사람의 얼굴과 몸에 털이 生치 아니하는 것이다. 天地間에 먼저 植物이 생기고 植物을 體로 하여 動物이 생기고 植物과 動物을 體로 하여 사람이 생기고 함은 바로 神의 創造事業에 屬하는 일로서 神의 計劃한 바의 自然法則이다.

     

     

     

    註 ●序卦의 生物 發生順序

     

    震子가 水精을 合한 水雷組織은 屯卦의 象이니 屯卦는 草木의 씨의 始生하는 象이오, 震子와 水精에 다시 土質을 合한 水土組織은 師卦 比卦의 象이니 師卦 比卦는 禽의 始生하는 象이다. 山澤의 氣가 密雲으로 되어 天空中에서 成形하고 그것이 乾陽의 光明을 受한 것은 履卦의 象이므로 履卦에 달의 象과 虎의 象이 있고, 虎씨의 組織에 太陽의 火를 合하면 사람의 씨로 되는 것이므로 履卦에 사람이 虎尾를 履하는 象이 있는 것이다. 同人卦는 달의 陰精이 乾陽과 太陽의 火를 承受하여 사람의 씨를 作成하는 象이 있으므로 人字로써 卦名을 삼은 것이다. 同人卦에 先號咷而後笑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 속에는 虎의 씨를 體로 하여 사람의 씨가 생겼다는 뜻이 있는 것이니, 號咷는 虎의 大號함이오, 笑는 모든 生物中에 오직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獨特한 行動이다. 이는 먼저에 虎가 생기고 그 다음에 사람이 생겼다는 뜻으로서 虎는 動物中에서 가장 사람의 體의 組織과 近似한 動物이며, 그러므로 虎字가 虍와 人으로되고, 사람에게 神과 相通한 善行이 있는 때에 虎가 와서 保護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사람의 體의 組織은 虎의 體와 近似하므로 革卦에는 大人虎變 君子豹變이라 하니, 이는 大人은 虎의 눈과 같이 火光을 發하고 君子는 豹의 文彩와 같이 光彩를 發한다 함이다.

     

     

     

    모든 生物의 體를 水火의 象으로써 보건대 動物의 體는 坎水의 橫平한 象이오 사람의 體는 艮山의 高와 火의 炎上하는 直立한 象이라 有形한 無生物中에서 스스로 動作하는 것은 水火이오 萬物의 體는 水火의 氣에 依하여 運動하는 것인데, 植物體의 組織은 水火의 氣가 모두 不足하므로 스스로 動作하는 氣가 없고 氣의 動作에 依한 精神作用도 거의 없으며, 그 씨의 組織體에 水氣는 勝하고 火氣가 不足한 者는 體가 水의 象과 같이 橫平하여 스스로 動作하는 氣가 있고 氣의 動作에 依한 精神作用이 있으니, 이것이 動物의 씨로 되는 것이며, 씨의 組織體에 水火의 氣가 調和한 者는 火의 炎上作用에 依하여 體가 直立하여 縱橫自在한 動作을 行할 수가 있고 水火通明한 精神作用이 있는 것이니, 이것이 사람의 씨로 되는 것이다. 動物의 씨가 사람의 씨보다 먼저 生하는 것은, 太初에 無形에서 有形이 生할 때에 水가 먼저 現形하여 自然數의 一이 되고 다음에 火가 現形하여 自然數의 二가 되고 한 理에 依한 것이다.

     

     

     

    植物은 反倒하고 動物은 橫平하고 사람은 直立하니, 이는 物이 처음에 天에서 下來하여 反倒한 體가 되고 그것이 地의 平面에 와서 橫平한 體가 되고 그것이 다시 天을 向하고 上升하여 直立한 體가 되고 하는 象이오, 이것이 萬物이 天에서 生하고 地에 내려와서 長하고 成한 然後에 다시 天으로 圜行한다는 理이다. 그러므로 植物 動物 사람은 生長成의 象이 되고 있으니, 植物은 意志現象이 없고 純全히 自然法則에 依하여 살고 있으므로 이는 物이 始生하여 幼穉한 生의 時運의 象이오, 動物은 意志도 있고 自由로이 行動도 하여 本能生活로써 서로 生長競爭을 行하고 있으니 이는 物이 勢力으로 相勝하는 長의 時運의 象이오, 사람은 兩足이 地를 履하고 頭가 天을 向하여 天地를 縱貫하여 直立하고 本能生活 以外에 또한 理性으로써 人類共同體生活을 營爲하니, 이는 天性이 여물어서 天으로 圜行하는 成의 時運의 象이다.

     

     

     

    男女의 分化

     

    사람의 男女分化의 理를 보건대 사람의 씨는 乾元인 震子와 坤元인 兌澤으로써 構成된 것이므로 男體와 女體가 모두 震子와 兌澤으로써 組織된 것이오 男體의 精子와 女體의 卵子도 獨陰獨陽이 아니라 元素가 모두 震子와 兌澤의 乾元坤元의 合體한 것이니, 男女의 組織原體는 조금도 相異함이 없는 것이다. 다만 男女의 相異한 바는 男體는 坤이 乾陽을 얻은 陽卦의 象으로서 陰이 體가 되고 陽이 用이 되니, 陽이 用이 된 까닭에 震子가 用이 되어, 男體는 陽性인 精子를 保有하는 것이오 女體는 乾이 坤陰을 얻은 陰卦의 象으로서 陽이 體가되고 陰이 用이 되니, 陰이 用이 된 까닭에 兌澤이 用이 되어 女體는 陰性인 卵子를 保有하는 것이다. 男女는 同一한 天行健의 씨이면서 男女의 分化가 生하는 것은 乾坤生命元의 交互作用과 八卦의 互相對待와 및 雷霆 風雨 日月 寒暑의 作用에 依하여 乾道는 男體가되고 坤道는 女體가 된 것이니, 繫辭에「剛柔가 相摩하고 八卦가 相盪하여 鼓하기를 雷霆으로써하고 潤하기를 風雨로써하고 日月이 運行하고 한번 寒하고 한번 暑하여 乾의 道는 男을 成하고 坤의 道는 女를 成한다」함은, 이 男女分化의 理를 말한 것이며, 乾道坤道의 道는 한번 陰하고 한번 陽하고 함을 말함이오, 陰陽이 均等하여 한번 陰하고 한번 陽하고 하는 對待作用의 道가 서로 調節되어 있으므로 地上의 男女數도 大體로 自然調節이 되어 있는 것이다.

     

     

     

    男體의 精子는 震子가 用이 되고 震子는 太陽에서 와서 달의 光明中에서 生成한 것이므로 精子는 太陽의 光明과 같이 恒常한 것이오 女體의 卵子는 兌澤이 用이 되고 兌澤은 달의 陰精中에서 太陽光明을 받아서 生成한 것이므로 卵子는 달의 陰精과 같이 盈虛가 있는 것이니, 卵子가 달로 더불어 盈虛하는 것은 이 까닭이며, 사람은 그 씨가 日月에서 내려온 까닭에 男女體中의 精子卵子는 不斷히 日月變化의 作用을 받고 있는 것이다. 人體는 精子와 卵子가 合體하여 構成되는 것이므로 乾元과 坤元의 二元運行으로 되어 氣와 精 精神과 肉體等의 分別이 있으며, 光明의 象인 震子는 氣로서 永遠히 存續하고 陰精의 象인 兌澤은 形質로서 生滅이 있으니, 그러므로 光明과 陰精의 合體에 依하여 組織된 人體는 一體二元의 象이 되어, 光明한 氣로써 構成된 天性은 永遠히 存續하는 것이오 陰精인 形質로써 構成된 肉體는 死生이 있는 것이다.

     

     

     

    萬物의 씨가 처음에 發生할 때에는 各其 種類대로 모두 創生된 것이오, 한번 創生된 後에는 地上에서 世世繼承과 種族蕃殖의 作用을 行할 뿐이오 다시는 創生되지 아니하는 것이니, 이는 씨가 生의 時運에만 創生되고 長의 時運에는 다만 자라기만 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易學에는 生의 時運에만 사람의 씨를 始生하는 象이 있고 그 뒤에는 地上에서 男女가 分化하여 子孫을 生하는 象만 있는 것이다.

     

     

     

    生長成의 時運

     

    時運이라 함은 어떠한 것인가 하면, 天地間 萬物은 모두 自體의 生生法則을 가지고 있어, 그 個體가 時間的으로 生하고 자라고 여물고 하는 生長成의 運動을 行하므로, 이 萬物을 統一하고 있는 天地에도 또한 生長成의 象이 있어, 時間的으로 生의時運 長의時運 成의時運等 時運의 別이 있는 것이오 萬物은 各 個體가 그 一生 동안에 生長成하면서 또한 萬物 全體가 그 時運을 따라서 함께 生長成의 運動을 行하는 것이다. 個體의 生長成과 時運의 生長成의 象을 사람의 生生의 例로써 보건대, 男女體의 精子 卵子의 組織은 生의 象이오, 男體의 精子가 女體의 卵子와 相交하여 胎兒가 生育하는 것은 長의 象이오 胎兒가 完成되어 母體에서 出産하는 것은 成의 象이니, 이것은 個人의 生長成이다. 生長成이라 함은 生에서 長으로 넘어가고 長에서 成으로 넘어갈 때에 모두 劃期的 變化가 있는 것이므로 사람의 出生以後에 幼少 靑壯 老衰같은 順序는 生長成의 象이 되지 아니하는 것이다. 人類全體가 原始時代에는 人類의 創生되는 原始人으로 되어 있으니 이는 生의 時運의 사람의 象이오 生의 時運의 末에 地上에 水의 衝激하는 變化가 生하여 神明한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이므로 原始人의 大部分은 水中에 瀆하고 神明한 사람의 씨만 이地上에 着生하여 자라고 그것이 現在의 人類가 되니, 이것은 長의 時運의 사람의 象이오, 現在의 人類는 비록 原始人에 比하여 發達하고 있으나 아직 天性이 여물지 못하여 人間本然의 姿態에 비춰보면 한 未成品이 되고 있으며, 다시 이 地上에 雷火의 變化가 일어나서 善한 사람을 여물게 하는 것이므로, 善한 사람은 天性이 여물어서 神과 相和하고 天性이 여물지 못한 사람은 火의 火熱로 因하여 쭉정이가 되어 스스로 消滅하는 것이니, 이는 成의 時運의 사람의 象이다. 萬物의 자라는 것은 水로써하고 여무는 것은 火로써 하는 것이므로 長하는 때에는 水의 變化가 있고 成하는 때에는 火의 變化가 있는 것이다.

     

     

     

    時運이 變할 때마다 地上의 人事가 變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時運이라 함은 天地가 萬物을 生成하는 行政作用이므로 時運이 變하면 먼저 地運이 變하고 地運이 變하면 萬物의 生成이 變하고 人事가 따라서 變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原始人의 살던 生의 時運의 前地運과 現在人類의 살고 있는 長의 時運의 現地運과 今後의 成의 時運의 未來地運은 비록 同一한 地球이로되 그 作用은 서로 다른 것이다. 物의 生長成의 理로써 보면 生의 時運의 前地運은 열매의 組織體와 같이 地球가 保合作用을 行하고 長의 時運의 現地運은 열매에서 싹이 나오고 줄기와 가지가 뻗음과 같이 地球가 發顯作用을 行하고 成의 時運의 未來地運은 열매가 여뭄과 같이 地球가 收斂作用을 行하는 것이다.

     

     

     

    人類의 生長成하는 時運의 年數는 어떠한가 하면 地球에는 太陽의 光明을 받아서 萬物을 生成하는 節候의 마디가 있다. 太陽은 周天의 度를 運行하면서 一晝夜에 地球를 한번씩 돌고 있으니, 이것은 地上의 一日이다. 太陽은 一日에 地球를 一周하면서 또한 春分點에서 다시 春分點으로 되돌아오고 그 되돌아오는 日數는 三百六十五日 五時間餘로서 이것은 地上의 一歲이며, 이 一歲동안에는 氣候의 寒暑 晝夜의 長短으로 因하여 四時와 萬物의 온갖 變化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春分點은 해마다 그 位置가 同一한 것이 아니라, 每年에 조금씩 東에서 西로 移動하여 約 一萬二千八百餘年 後에는 지금의 春分點이 秋分點으로되고 約 二萬五千七百餘年 後에는 다시 最初의 春分點으로 돌아와서 每攝 二萬五千七百餘年을 一週期로 하여 循環하는 것이며, 一歲동안에 四時와 같은 變化가 있으므로 이 週期 동안에 萬物의 生成에 적지 아니한 變化가 있는 것이다. 太陽이 一歲에 春分點으로 되돌아오는 期間은 四時의 形態로서 風土가 一寒一暑하면서 萬物個體의 生長成作用을 行하는 것이오 二萬五千七百餘年에 春分點으로 되돌아오는 期間은 時運의 形態로서 天地가 一闔一闢하면서 萬物統體의 生長成作用을 行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人類의 生長成하는 時運은 萬物統體의 生長成의 理에 依하여 이 二萬五千七百餘年을 마디로 하여 行하는 것이오 人類가 創生以後에 生의 時運과 長의 時運을 經過한 동안은 最少로 五萬數千年이 걸린 것이다.

     

     

     

    人類의 生長成하는 時運의 年數는 여러 萬年이 걸리고 있으므로 同一한 時運中에도 또한 生長成의 時期의 區分이 있으니, 그러므로 原始人의 生의 時運에도 生의 時期 長의 時期 및 成의 時期가 있어, 人類의 創生은 生의 時運中의 生의時期에 當하고 水中의 瀆은 生의 時運中의 成의 時期에 當하는 것이며, 現在人의 長의 時運에도 生의 時期 長의 時期 및 成의 時期가 있어 지금은 長의 時運中의 成의 時期에 當하고 있는 것이다.

     

     

     

    註 ●河圖 洛書 및 八卦圖의 時運象徵 (內容 未記述)

     

     

     

       

     

    第二章 사람의 精神作用

     

    第一節 天性의 組織

     

     

     

    ■ 生命과 天性

     

    사람은 그 씨가 日月에서 와서 乾坤生命元과 雷風의 氣와 水火의 精으로써 構成되고 그 自體가 生生하기 爲하여 반드시 生生을 營爲함에 必要한 天性을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天性은 씨로 더불어 一體二元의 組織이 되고 있는 것이오 그러므로 天性도 또한 씨와 같이 乾坤 雷風 水火로써 構成되는 것이며 다만 씨와 天性의 相異한 바는 씨는 形而下한 것이오 天性은 形而上한 것이다. 天性의 發하는 때에는 心과 情의 作用이 生하는 것인데, 지금에 精神이라는 말은 이 天性心情을 總稱한 것이다. 乾卦에는「性命」「性情」을 말하니, 이는 天性이 乾坤에 本源하고 있다 함이오, 繫辭에「한번 陰하고 한번 陽함을 道라 이르고 繼하는 者가 善이오 成하는 者가 性이라」하니 이는 乾坤生命元의 한번 陰하고 한번 陽하는 道에서 善이 繼生하고 善의 여문 것이 곧 性이므로 天性은 乾坤에 本源하여 善의 여문 것이라 함이오(易卦中에 오직 雷風恒卦의 恒字가 心으로써 構成된 것은 天性에서 生한 心이 雷風의 氣로써 運行되고 있음을 말함이니) 그러므로 사람의 天性은 사람의 씨와 같이 乾坤과 雷風을 合한「天行健」의 象이 되는 것이며, 天性과 씨는 形而上과 形而下의 相異이므로 天性은 一陰一陽하는 形而上한 道에서 繼生하는 것이오 씨는 形而下한 器의 內部에 形而上한 道를 갈무리 하고 있는 것이다.

     

     

     

    天性의 生成

     

    天性이라 함은 善이 一陰一陽하는 道에서 繼生하여 여문 것이니 善과 性은 어떻게 서로 關聯되어 있는가 하면, 乾卦에는 元을 仁이라 하고 仁에서 發하는 作用을 善이라 하는데, 萬物의 씨는 元의 象이 되므로 씨의 알맹이는 仁이 되며, 씨의 알맹이를 仁이라 하므로 씨에서 發生하는 새싹은 善이 되는 것이며, 天性과 씨는 그 組織形態가 同一하므로 天性의 알맹이는 또한 仁이 되고 仁에서 發生하는 作用은 善이 되는 것이니, 天性에 仁과 善을 말하는 것은 이 까닭이다. 仁은 天性의 알맹이이오 善은 天性의 仁에서 生하는 새싹이라, 새싹이 자라고 열매를 맺아서 여무는 때에 다시 알맹이인 仁이 생겨서 天性이 되는 것이니, 이가 곧 善이 繼生하여 여문 것이 天性이라 함이오 만일 새싹이 繼生하더라도 그것이 여물지 못하면 알맹이가 없는 쭉정이가 되어 生生이 끊어지는 것이니, 이것은 天性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天性은 반드시 善하여 새싹이 繼生하는 것이므로 天性을 善하다고 하는 것이오 사람이 萬一 肉體를 기르기에만 힘쓰고 不善을 行하면 不善은 쭉정이의 象으로서 알맹이가 없는 것이므로 그것은 天性을 이루지 못하고 本能生活만을 하는 動物性이 되고 마는 것이다.

     

     

     

    草木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花이오 花에는 色과 香과 蜜이 있는데, 色은 光이오 光은 目에 屬하여 離卦의 象이 되고 香은 臭이오 臭는 鼻에 屬하여 巽卦의 象이 되고 蜜은 味이오 味는 口에 屬하여 兌卦의 象이 되니 花의 아름다운 것은 이 三陰卦의 象을 因함이오 人體의 肉體美가 主로 面上에 있는 것은 面上에 目鼻口의 三陰卦의 花象이 있는 까닭이다. 花는 三陰卦의 形質로써 組織된 까닭에 그 아름다움이 外形에 나타나고 있으나 花의 形質은 오래 持續되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老衰하여 떨어지는 것이며, 花에 열매가 맺힌 然後에 그 열매의 美가 새로 나타나서 그것이 永遠히 繼承하는 作用을 行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花의 참다운 아름다움은 花의 形質에 있는 것이 아니라 花의 속에서 열매가 맺혀서 여무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이 理에 依하여 사람도 그 形質은 百年人生으로 되어 있으되 그 天性이 여문 것은 生死를 超越하여 永遠히 없어지지 아니하는 것이니, 形質이 비록 아름답다 하더라도 天性이 여물지 못하면 結局 쭉정이의 人間이 되고마는 것이다.

     

     

     

     天性의 組織은 씨와 같으므로 또한 씨와 같이 生하고 자라고 여물고 하는 生長成의 作用이 있는 것이오, 씨는 水火로써 體를 삼고 있는데, 水火의 精은 氣와 形의 中間性으로 되어 有形도 되고 無形도 되고하여 萬物의 體內를 流行하면서 變化無常한 聚散作用을 行하고, 萬物의 體는 精氣가 聚하면 生하고 精氣가 散하면 死하는 것이므로 萬物의 生長成의 變化는 모두 萬物의 體內를 流行하고 있는 水火의 聚散作用에 依하여 行하는 것이며 天性도 씨와 같이 水火로써 體를 삼고 있으므로 또한 生長成의 運動이 있어 仁에서 善이 繼生하여 여문 然後에 天性이 되는 것이다. 씨의 生長成하는 過程에는 나무에 水液이 오르고 내리고 枝葉이 生하고 마르고 하는 變化가 있으므로 天性의 生成하는 過程에도 또한 이러한 變化가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乾道의 躍進變化하는 理로써 보면, 天性이 자라는 것은 사람의 精神生活의 躍進이오 天性의 여무는 것은 사람의 精神生活의 變化이라, 사람의 一生中에 한번은 精神生活의 躍進이 있은 然後에 天性이 자라는 것이오, 사람의 一生中에 한번은 精神生活의 變化가 있은 然後에 天性이 여무는 것이니, 이는 자라는 때에는 반드시 下段에서 上段으로 뛰어 올라가는 躍進이 있고 여무는 때에는 반드시 外向이 內向으로 되어 光明을 갈무리하는 變化가 있고 한 까닭이다.

     

     

     

    觀察 思慮 判斷 記憶等 作用

     

    天性은 無形하여 方所도 없고 形體도 없고 한 까닭에 能히 無限한 空間을 周行하면서 萬事萬物을 接應하고 또 能히 無窮한 時間의 過去와 未來를 推想하고하여 모든 計劃을 세워서 그 生生을 營爲하고 있는 것이며, 만일 天性이 形體가 있다고 하면 이것은 一偏의 器官으로 局限되어 그 器官의 맡은 바의 任務以外에는 全혀 接應치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天性은 形而上한 道에서 繼生하여 上에 形하고 있으므로 비록 無形하되 그 氣가 반드시 어떠한 形態를 이루고 있는 것이며, 그 形態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면, 天性은 水火로써 體를 삼고 또 天性과 形質은 하나는 形而上하고 하나는 形而下하여 二元運行의 理가 있으므로 天性은 이 理에 依하여 마치 火가 物體의 頂上에 依附하여 火炎體를 이루고 光을 發하고 있음과 같이 天性의 火氣가 水精에 依附하여 無形한 火炎形態로 되어 有形한 肉體의 頭腦에 依附하여 陽光을 發하고 있는 것이니, 이는 天性은 人身中의 陰中의 陽이오 사람의 頭腦가 또한 人身의 陽氣의 總會處로서 陰中의 陽이 되어, 天性의 陽氣와 頭腦의 陽氣가 同一身의 同一陽氣이므로 天性은 火炎體의 形態로써 人身 最上部인 頭腦에 依附하여 天을 向하고 있는 것이며, 天性의 火炎體가 天을 向하고 있으므로 사람의 肉體가 또한 天을 向하여 直立하고 있는 것이다.

     

    天性은 水火로써 體를 삼고 있는데 水는 透明하고 收斂作用을 行하여 受動的으로 物을 映寫하는 作用이 있고, 火는 光明하고 發顯作用을 行하여 能動的으로 物을 照射하는 作用이 있는지라, 天性의 光明은 火의 照射作用으로써 모든 事物의 相을 觀照하고 天性의 透明은 水의 映寫作用으로써 光明의 觀照한 事物의 相을 寫來하여 한 圖像을 이루니 이 圖像에는 萬事萬物의 形態, 事物相互의 關係, 生成消長하는 動態等 그 生生하는 온갖 모양이 如實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天性이 그 光明으로써 이 圖像을 살펴보는 것은 觀察이 되는 것이오, 圖像의 모든 事物을 觀察하여 그 利害得失을 밝히는 것은 思慮가 되는 것이오, 이 觀察과 思慮를 通하여 生生의 最善한 길을 擇하는 것은 判斷이 되는 것이오, 觀察 思慮 判斷한 것과 經驗 學問한 것等을 이 圖像속에 收藏하는 것은 記憶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耳의 聰은 水의 透明作用에서 生하고 目의 明은 火의 光明作用에서 生하는 것인데, 天性의 照射映寫作用도 水火의 光明透明에서 生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天性의 聰明이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觀察 思慮 判斷 記憶等 作用은 모두 天性의 聰明에서 生하는 것이다.

     

     

     

    祈禱의 原理

     

    水火에는 또 升降作用이 있으므로 萬物의 氣가 上下로 升降作用을 行함에는 반드시 水火의 氣를 쓰는 것이오, 萬物의 生殖作用에 陽體의 精이 陰體로 넘어갈 때에도 반드시 水火의 升降作用이 生하여 兩體의 空間을 飛越하는 것이니, 이것을「水火通明이룬 곳에 絶處逢生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天地間에는 太陽의 火精속에 水가 있고 달의 水精속에 火가 있어 日月의 水火가 不斷히 大空間의 上下를 升降하면서 天地의 氣를 相通하는 것이다. 사람의 天性도 水火로써 體를 삼고 있으므로 天과 사람과의 사이에 水火가 升降하여 氣가 相通하고 있는 것이며, 天과 사람과의 氣가 相通하고 있으므로 사람이 天에 祈禱를 올리는 때에 그 祈禱가 天에 通하고 天이 사람에게 靈感의 氣를 내리는 때에 그 靈感이 또한 通하는 것이니, 이가 祈禱의 原理이다. 鼎卦에「聖人이 烹하여 써 上帝를 享하시면 大烹하여 聖賢을 養하신다」하니, 이는 聖人이 水火를 烹하여 그 氣를 神에게 올리시면 神은 그것을 받으시고 大水火의 氣를 烹하여 사람에게 내리어 써 聖賢을 養하신다는 뜻으로서 水火의 升降作用에 依하여 天人間에 祈禱와 靈感의 相通하는 理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天性은 水火로써 構成되어 天으로 더불어 氣의 升降作用을 行하고 있으므로 天性이 善하여 사람을 爲하는 일을 하면 天이 그 氣를 받고 그 사람에게 善을 내려서 善이 싸이며 天性이 不善하여 사람을 害하는 일을 하면 天이 그 氣를 받고 그 사람에게 不善을 내려서 不善이 싸이는 것이니, 이는 日常生活하는 中에 天과 사람과의 水火가 相通하는 理이오 祈禱라는 것은 特히 發願하는 일이 있는 때에 誠을 表示하는 行動이며, 祈禱하는 때에 水火를 烹치 아니하더라도 誠만 있으면 天性의 水火가 能히 升降作用을 行하는 것이다.

     

     

     

    第二節 心情의 組織

     

    ■ 心情은 天性에서 發한다

     

    人身은 精과 氣로써 構成된 것이오 精의 속에도 다시 精과 氣가 있고 氣의 속에도 다시 精과 氣가 있는 것이므로 形而上한 天性의 속에도 또한 精과 氣의 作用이 있어, 氣의 作用은 心이 되고 精의 作用은 情이 되니, 心과 情은 理性과 感情과의 關係와 같은 것으로서 天性은 사람의 生生作用을 行하기 爲하여 반드시 發生치 아니할 수 없는 精神作用이다. 心이라 함은 사람이 生生하기 爲하여 天性의 光이 發하여 空間과 時間을 비추어 萬事萬物을 接應하는 光明이니, 그러므로 復卦에는 天行하는 一陽의 光明이 陰體中을 出入하여 光明을 비추는 것을「天地之心」이라 한 것이오 情이라 함은 個體의 形質이 生生하기 爲하여 天性의 生氣가 動하여 스스로 發하고 있는 本能이니, 그러므로 易卦에는 씨의 構成要素인 震子와 兌澤이 生物의 本能을 發하는 것을「天地萬物之情」이라 한 것이다.

     

     

     

    天性에서 心과 情의 作用이 生하는 것은 天地間에서 太陽과 달의 運行하고 있는 理에 依한 것이니, 天性은 日月光明의 象이오 心은 日月光明의 運行하는 象이오 情은 日月의 震子와 兌澤의 象이며, 이는 사람이 天地間의 日月에서 出生한 까닭에 天性과 心情에 日月의 象이 있는 것이다. 天性이 日月光明의 象이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日月의 光明은 天地를 範圍하여 그 形이 圓하고 空間을 統하여 그 氣가 深하고 水火의 精을 體로 하여 그 光이 水通火明하니, 이는 日月의 光明이 圓深通明하여 天地間을 無限無窮히 照明하는 것이오 사람의 天性은 純 粹 精하니 純은 包全한 것으로서 圓의 象이 되고 粹는 聚一한 것으로서 深의 象이 되고 精은 水火의 精으로서 通明의 象이 되어 純 粹 精이 또한 圓深通明의 象이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사람의 天性이 또한 圓深通明하여 萬事萬物을 周行하여 接應하니, 이 까닭에 天性은 日月光明의 象이 되는 것이다. 元來 사람의 天性은 神에게서 稟受한 것인데 天性이 또한 日月光明의 象이 된다 함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神이라 함은 天地의 光明이 萬物을 生한다는 뜻으로서 神의 作用이 곧 光明이므로 天性은 神에게서 稟受하고 日月光明의 象이 되는 것이다.

     

     

     

    心이 日月光明의 運行하는 象이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萬物은 日月光明의 運行에 依하여 生生하고 사람의 心은 事物을 照明하여 사람의 生生을 主宰하니 復卦의 天地之心은 달의 光明이 陰質中을 出入하면서 照明한다는 뜻으로 되는 것이며, 이 까닭에 心은 日月光明의 運行하는 象이 되는 것이다.

     

     

     

    情이 日月의 震子 兌精의 象이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日月의 震子와 兌澤이 合하여 萬物의 形質을 生하고 사람의 情은 自體形體의 자람을 爲하여 發動하니, 이 까닭에 情은 日月의 震子 兌澤의 象이 되는 것이다.

     

     

     

    心의 體는 仁禮義知

     

    天性은 日月光明의 象이 되는데, 天地에는 日月의 運行에 依하여 春夏秋冬의 四時가 生하고 그것이 元亨利貞의 四道가 되는 것이므로 天性에도 또한 四道의 象과 같은 仁禮義知의 四德이 있으며, 德은 心의 體이므로 四德의 發用하는 것이 心으로 되는 것이다. 易學의 元亨利貞에는 仁禮義幹의 象을 말하고 知를 말하지 아니하였는데, 繫辭에는 人性에 仁知 또는 禮知를 말하니, 이는 四道中의 幹이 곧 四德中의 知가 된다 함이며, 四道中의 貞은 變通의 幹이 되고 四德中의 知는 心의 發生하는 源이 되고 있으므로 四道中의 貞을 그 形態로써 보면 幹이 되고 그 作用으로써 보면 知가 되는 것이다. 四時의 運行이라 함은 春에 生하고 夏에 자라고 秋에 여물고 冬에 갈무리하고 하는 生長成藏의 象을 말함이오 四德이라 함은 春에 生한 것은 元으로서 仁의 象이 되고, 夏에 자라는 것은 亨으로서 禮의 象이 되고, 秋에 여무는 것은 利로서 義의 象이 되고, 冬에 갈무리하는 것은 貞으로서 事의 幹의 象이 되는 것이다. 仁이라 함은 內로부터 外에 顯하여 善의 生하는 象이니, 天性에 이러한 作用이 있는 것을 仁이라 하는 것이오, 禮라 함은 物이 衆會하여 秩序가 바르고 아름답게 자라는 象이니, 天性에 이러한 作用이 있는 것을 禮라 하는 것이오, 義라함은 物이 다 자라서 陽氣가 內部에 들어가고 모든 對待가 調和되어 여무는 象이니, 天性에 이러한 作用이 있는 것을 義라 하는 것이오, 知라 함은 陽氣가 內部에 갈무리하여 外面은 어두우되 內部가 光明하여 仁의 發生하는 源이 되는 象이니, 天性에 이러한 作用이 있는 것을 知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四時에는 易學의 顯藏原理로 되어 있는 三顯一藏의 理가 있어, 春의 生하는 것이 發展하여 夏의 자라는 것이 되고 夏의 자라는 것이 發展하여 秋의 여무는 것이 되니, 生하고 자라고 여물고하는 세 가지는 物의 形現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三顯이라 하고 冬은 物의 갈무리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一藏이라 하는 것이다.

     

     

     

    四德에도 또한 三顯一藏의 象이 있으니, 仁이 發展하여 禮가되고 禮가 發展하여 義가되어, 仁禮義의 三德은 모두 行動의 形現한 것이므로 三顯이 되는 것이오 知는 內部에 深藏되어 外面에 나타나지 아니하되 人間의 모든 行動計劃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一藏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四德은 春顯冬藏의 象으로써 보면 仁과 知가되고 天施地育의 象으로써 보면 仁과 禮가되고 春生秋成의 象으로써 보면 仁과 義가되고 夏長秋收의 象으로써 보면 禮와 義가 되는 것이다.

     

     

     

    三顯一藏의 理는 物의 生長成藏하는 原理로 되어 現用치 아니하는 一藏이 生命의 源을 畜養하여 가장 大用하는 庫藏의 任務를 다하는 것이니, 사람은 天性이 光明하고 心의 光明이 萬事萬物에 運行하여 能히 幽深을 洞察하고 未來를 先見하고 하는 一藏의 知가 있은 然後에 仁이 生하여 三顯하는 仁禮義로 되어 天性이 여무는 것이다.

     

     

     

    註 ●三顯一藏의 理

     

    三顯一藏에 對한 原理는 邵康節의 學說에서 取하고 邵康節의 學說은 八卦의 反易의 象에서 나온 것이다.

     

    八卦中에서 乾坤坎離 四卦는 反易이 없으므로 原數대로 四가 되고 震과 艮은 反易하여 兩象一卦가 되므로 一이 되고 巽과 兌는 反易하여 兩象一卦가 되므로 一이 되어, 모두 合하여 六이 되니, 體가 八이오 用이 六이라, 八數中에서 六이 用하고 二가 不用하며 六과 二는 三과 一의 比가 되니 三用一不用이 곧 三顯一藏이다. 天의 四時에 冬이 退藏하여 歸勞하고 地의 四方에 極地가 氷結하여 萬物이 生育치 못하고 人身에 上下前後가 있는데 上下前이 모두 홀로 運動하고 있으되 오직 背는 홀로 運動치 못하니 이가 모두 三顯一藏이다. 그러나 이 一藏部는 모두 庫藏의 役을 行하고 있으니, 冬은 明春의 生育作用에 對待하여 太和한 氣를 保合하는 庫藏이오 大地의 極地는 地力의 生生作用을 爲하여 地軸의 極에 精氣를 蓄積하는 庫藏이오 背는 臟腑의 主要器官의 係屬하는 本據가 되어 一身의 生理를 主管하는 庫藏이다. 사람의 一日中의 動作과 睡眠같은 것도 대체로 四分之三을 動作하고 四分之一을 睡眠하여 精氣를 蓄養하여 다음날의 活動에 對備하고 精力의 使用같은 것도 또한 四分之一程度의 餘蓄을 두지 아니하면 用力이 過度하여 甚大한 疲勞를 느끼는 것이니, 이가 모두 三顯一藏의 理이다. 物의 生生에 一藏의 庫藏이 없으면 事物의 終하는 때에 本源이 枯渴하여 다시 始치 못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사람의 心에는 知가 一藏의 庫藏이 되는 것이다.

     

     

     

    生育 生殖 長壽의 三情은 萬物의 本能

     

    情은 日月의 震子 兌澤의 象이 되는데, 天地에는 天風山地의 空間의 四層秩序가 있으니, 天風山地라 함은 天地間에는 上에 天이 있고 下에 地가 있고 天氣의 下降한 것은 風이 되고 地氣의 上升한 것은 山이 되어, 空間의 上下秩序는 天風山地의 四層으로 되어있다 함이다. 이 空間의 사이를 太陽의 震子와 달의 兌澤이 運行하여 天風의 上層에는 震子가 行하고 山地의 下層에는 兌澤이 行하여 正大 恒久 感應 萃聚의 四情이 된 것이다.

     

     

     

    註 ●天地萬物의 情

     

    天地의 定位한 天地否卦의 本卦와 互卦가 바로 天風山地의 秩序로 되는 것이다. 天은 上에 있고 風은 天氣의 下降한 것이므로 天風은 上에 屬하며 地는 下에 있고 山은 地氣의 上行한 것이므로 山地는 下에 屬한다. 萬物의 씨의 基本組織은 震子와 兌澤인데 震子는 氣이오 兌澤은 形이라 그러므로 天風의 上層에는 氣의 象인 雷가 行하여 雷와 天이 合한 雷天大壯卦는 天地의 正大의 情이 되고, 雷와 風이 合한 雷風恒卦는 天地萬物의 恒久의 情이 된 것이며, 山地의 下層에는 形의 象인 澤이 行하여 澤과 山이 合한 澤山咸卦는 天地萬物의 感應의 情이 되고 澤과 地가 合한 澤地萃卦는 天地萬物의 萃聚의 情이 된 것이다.

     

    天地는 日月의 相交에 依하여 震子와 兌澤으로써 物을 作成하는 것이므로 天風의 震子와 山地의 兌澤에 物의 生生하는 本能인 正大 恒久 感應 萃聚의 四情이 있는 것이다.

     

     

     

     

     

     

     

    萃聚의 情이라 함은 地가 兌澤을 合한 澤地의 象으로서 母體가 陰子를 包하고 陰子가 形質을 聚하여 生育하는 것이 곧 萃聚의 情이며, 萬物은 自體의 生生을 爲하여 스스로 形質을 聚合하여 生育치 아니할 수가 없으므로 萃聚의 情은 天地萬物의 本能이 되는 것이다. 澤地는 天地秩序의 最低位에 있어 形質을 聚凝하는 作用을 行하므로 모든 生物에 있어서는 營養을 聚하여 形質을 生育하는 生育本能이 되니, 生育本能은 모든 生物이 그 體를 維持하기 爲한 가장 基本되는 情이다.

     

     

     

     

     

    感應의 情이라 함은 地勢가 上升하여 兌澤을 合한 澤山의 象으로서 山澤이 通氣하여 男女의 二氣가 相感하여 生殖作用을 行하는 것이 곧 感應의 情이며, 萬物은 自體의 生生을 爲하여 스스로 生殖作用을 行치 아니할 수가 없으므로 感應의 情은 天地萬物의 本能이 되는 것이다. 澤山은 모든 生物에 있어서는 子孫을 繁殖하는 生殖本能이 되니, 生殖本能은 비록 生育本能과 같이 形質의 欲求에 依한 것이로되 山의 一陽이 上으로 天을 接하여 光明을 받고 있으므로 心이 感치 아니하면 男女間의 情이 動치 아니하는 것이니, 이는 心이 日月光明의 運行하는 象이 되는 까닭이다.

     

     

     

    恒久의 情이라 함은 天氣가 下降하여 震子를 合한 雷風의 象으로서 雷風이 相與하여 天行健한 陽子가되고 陽子의 世世繼承하는 것이 곧 恒久의 情이며, 萬物은 自體의 生生을 爲하여 스스로 恒久히 繼承치 아니할 수가 없으므로 恒久의 情은 天地萬物의 本能이 되는 것이다. 雷風은 天氣가 地에 接하는 位에 있고 氣는 永久繼續하는 作用이 있으므로 모든 生物에 있어서는 生命을 永久히 繼續하려는 長壽本能이 되니, 長壽本能은 飮食을 取하고 氣를 呼吸하여 形質을 補强함에 힘쓰고 있는 것이나, 地에 接한 形質에는 死生이 있고 雷風의 氣는 恒久하여 神作用이 行하고 있으므로 사람의 長壽는 飮食 呼吸만으로서 되는 것이 아니오 거기에는 神作用의 힘이 가장 큰 것이다.

     

     

     

    正大의 情이라 함은 正은 完全하고 偏치 아니하다 함이오 大는 備有하고 局치 아니하다 함이니, 天이 生命의 繼承作用을 行하는 震子를 合한 雷天의 象으로서 萬物의 씨를 保有하는 源이 되는 것이 곧 正大의 情이며, 天은 自體의 生生을 爲하여 스스로 萬物의 씨를 生치 아니할 수가 없으므로 正大의 情은 天地의 本能이 되는 것이오 雷天은 大한 者가 壯한 것으로서 大哉乾元의 여무는 象이므로 萬物의 씨를 保合하는 理가 있는 것이다. 萬物은 各其 自體의 씨만을 保有하여 個體의 情만이 있는데 天地는 天地萬物의 有機的 統一的 生命體이므로 天地에는 萬物의 씨가 全部 保有되어 統體의 情이 있으니, 그러므로 正大한 統體의 情은 天地에만 있고 萬物에는 없으며, 이가 萬物이 모두 天에서 生한 所以이다.

     

     

     

    天性의 四德에 三顯一藏의 理가 있으므로 四正에 또한 三顯一藏의 理가 있으니 萃聚 感應 恒久의 三情은 天地에도 있고 萬物에도 있어 外面에 形現한 것이므로 이는 三顯의 象이 되는 것이오 正大의 情은 天에 갈무리하여 外現치 아니하는 것이므로 이는 一藏이 되는 것이니, 天에 萬物의 씨를 保有하는 一藏의 情은 萬物의 三顯하는 情의 發源이 되는 것이다.

     

     

     

    心과 情의 調和

     

    사람의 本能은 個體形質의 生生에서 生하는 것이므로 本能生活은 個體를 中心으로하여 行하고 個體以外의 社會生活에는 어두운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天性에는 心과 情의 兩面이 있어 心의 光明은 理性이 되어 萬人公共의 社會生活을 營爲하고, 情의 本能은 感情이 되어 個性特殊의 個體生活을 營爲하여 兩者가 서로 調和하는 것이다. 情의 本能이 억세면 心의 光明이 어둡고 心의 光明이 밝으면 情의 本能이 和하는 것이니 心은 光明함을 主하고 情은 氣和함을 主하는 것이다. 心과 情에는 또한 時間과 空間의 象이 있으니, 心은 仁禮義知 四德의 發用하는 것으로서 四時流行의 象이 되니, 四時는 時間이오 情은 萃聚 感應 恒久 三情의 作用으로서 天地의 上下秩序의 象이 되니, 天地의 上下는 空間이다. 時間은 過去 現在 未來를 統稱함이오 仁禮義知는 사람의 마땅히 行하는 道德인데 사람은 心의 光明으로써 過去를 돌아보고 現在를 살피고 未來를 내다보아 道德에 合하는 生活을 하는 것이 곧 四時流行하는 時間의 理에 맞는 것이다. 空間은 우리 눈앞에 보이는 現實이오 三情은 本能으로서 그때그때의 現實에 應하여 發露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사람은 情이 勝하여 空間의 現實만을 보고 時間의 過去와 未來를 보지 못하면 心의 光明이 어두워져서 動物生活에 墮落하는 것이오 이는 動物은 專혀 現實生活과 本能生活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第三章 神과 人間

     

    第一節 人間은 神의 創造

     

     

     

    ■ 神의 存在하는 原理

     

    天地間의 모든 生物은 無形에서 有形한 形質이 生하는데, 有形한 形質에는 生하고 滅함이 있으되 그 生滅의 속에는 또한 生滅의 없는 長存하는 것이 있으니, 草木의 例로써 보면 씨에서 싹이 나고 줄기가 나고 열매가 맺히고 하면 싹이나 줄기나 열매는 生滅이 있으되 그 씨의 속에 있는 世世繼承하는 作用은 永遠히 滅치 아니하여, 지금의 草木의 씨는 몇 億千萬年 前의 宇宙創生時에 發生한 씨가 傳來한 것이니, 이 形質의 生하고 滅하고 하는 것은 生命의 作用이오 永遠히 滅치 아니하는 것은 神의 作用이다. 이제 이 宇宙間에 天地萬物의 生生을 主宰하고 있는 神의 계시다는 것을 易理로써 보건대

     

     

     

    첫째로 사람은 天地의 自然法則속에서 出生하여 乾坤生命元 雷風의氣 水火의精으로써 構成되고, 이 生命 氣精으로써 構成된 生命體는 自體의 生生을 營爲하기 爲하여 반드시 天性作用을 가지는 것이므로 사람은 天性을 가지고 心情作用을 行하는 것이며, 이 生命氣精은 사람만이 獨特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出生하기 以前에 天地間에는 이미 生命氣精의 大自然이 있어 天地의 統一的 生命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니, 天地의 體와 사람의 體와는 大小의 差와 形態의 相異가 있을 뿐이오 그 本性은 全然 同一한 것이다. 그러므로 天地의 統一的 生命體는 사람의 所自出한 本源으로서 이미 사람의 天性과 같은 心情作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易卦에「天地之心」「天地之情」이라 함은 天地의 統一的 生命體의 心情作用을 말한 것이다.

     

     

     

    둘째로 사람은 自身의 生生作用을 行하기 爲하여 스스로 自身의 行動을 主宰하는 天性이 있고 이 天性은 一身의 生生에 必要한 計劃을 세우고 있는 것이며,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生物이 모두 그러하여 虫魚같은 微物도 自體의 生生을 爲하여 그 生生에 必要한 精神作用을 가지고 있고 그보다 生理가 조금 더 複雜한 高等動物은 虫魚보다 조금 더 高等한 精神作用을 가지고 있고 動物보다 次元의 越等한 生理를 가지고 있는 人間은 또한 그에 適應하는 越等한 精神作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生物이 精神作用을 가지고 있는 것은 天地萬物의 生生하는 自然法則이다. 天地는 萬物을 包有하는 統一的 生命體로 되고 있으므로 萬物의 生生이 곧 天地의 生生이라 天地는 自體의 生生作用을 行하기 爲하여 반드시 天地의 生生을 統一的으로 主宰하는 天性이 있는 것이오 이 天地의 主宰는 또한 스스로 自體의 生生에 必要한 自然法則을 만들고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天地의 主宰는 곧 天地의 天性으로서 天地의 創始와 함께 存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天地間에는 사람의 出生하기 以前에 이미 天地의 生生을 主宰하는 天性이 있어 心情作用으로써 意識的 計劃的으로 萬物을 創造한 것이오 사람의 心情作用은 이 天地의 心情作用에서 稟賦된 것이다.

     

     

     

    셋째로 天地間의 모든 生物은 반드시 生命과 精神과의 一體二元의 理로써 構成되어 同一體內에서 運動하는 힘이 곧 生命이오 運動을 일으키는 힘이 곧 精神이다. 이것을 人身의 例로써 보면 生命은 無形이 有形으로 化하여 生命體가 되는 것이므로 形而下한 器가 되는 것이오 精神은 無形그대로 있어 形化치 아니하는 것이므로 形而上한 道가 되는 것이라, 사람은 自身의 生生을 爲하여 반드시 그 生生에 適應하는 無形한 精神을 가지고 萬事萬物을 接應하여 自體의 生生하기 爲한 모든 言行動作을 主宰하고 耳目口鼻手足等 肉體에 對하여 그 任務를 命令하며, 有形한 肉體는 受動作用을 行하므로 다만 感覺器官에 依하여 얻어진 所感을 精神에 呼訴하고 精神의 設計한 生生計劃에 對하여 筋肉을 움직여서 그것을 實踐할 뿐이니, 그러므로 人身의 生生을 主宰하는 者는 有形한 肉體가 아니라 곧 無形하여 萬事萬物을 接應하는 作用을 가진 精神이다. 生命과 精神과의 理를 天地로써 보면 天地間의 萬物은 至極히 繁多하고 至極히 錯雜하되 모두 秩序整然한 運動으로써 共通한 法則속에서 그 生生을 營爲하여 하나도 生生作用으로부터 遺棄됨이 없고 또 萬物相互間에는 相互克制와 相互扶助의 두 作用이 自然스럽게 行하여 모두 調和된 狀態로써 그 生生을 完遂하고 있으니, 이는 萬物이 여기저기에서 偶然忽然히 單獨的으로 생겨서 各其 獨自的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한 系統의 法則밑에서 有機的으로 서로 關聯되고 統一되어 어느 一物도 이 有機的 系統의 圈外에서 單獨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天地間의 萬物은 空間的으로는 有機的으로 서로 連結되어 있고 時間的으로는 統一的으로 永續不絶하는 運行을 하고 있으니, 이는 天地間 萬物이 하나의 有機的 統一的 生命體를 이루고 있음이오 乾卦에「大하다 乾元이여 萬物이 資하여 始하니 이에 天을 統하도다」함은 萬物이 乾坤의 生命元에서 始生하여 하나의 統一的 生命體를 이루고 있다 함을 말함이다. 天地 生命體는 이와 같이 無限大 無窮遠하므로 그 自體의 生生을 主宰하는 精神作用도 또한 거기에 適應하여 無限大 無窮遠하여 宇宙의 大空間의 極點과 大時間의 未來를 通觀하고 天地萬物의 生生을 意識的 計劃的으로 主宰하고 있는 것이니 所謂 自然法則이라 함은 天地主宰者의 生生計劃書를 말함이다.

     

     

     

    以上 세 가지의 理에 依하여 天地에는 萬物의 生生을 主宰하는 精神作用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오 說卦에는「神이라 함은 萬物을 妙하게하여 言을 하는 者이라」하고 繫辭에는「變化의 道를 知하는 者가 神의 所爲를 知한다」하여 天地間에 物의 生生變化를 主宰하는 者를 神이라 하니, 그러므로 天地의 精神作用이 곧 神이다. 天地 生命體의 精神作用과 天地主宰인 神은 全然同一한 것으로서 이것을 自然現象의 面으로써 볼 때에는 精神作用이라 하고 天地主宰의 面으로써 볼 때에는 神이라 하는 것이다.

     

     

     

    天地間 萬物은 모두 神의 意識的作用에 依하여 計劃的으로 創造되어 生生하는 것이므로 어느 一物도 偶然忽然히 發生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至精至妙한 計劃밑에서 有機的 統一的으로 創造된 것이니, 그러므로 우리 人間도 無形한 神의 自然法則 속에서 出生하여 神의 子孫이 되고 사람의 天性도 神의 作用을 稟受한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神은 無形하여 볼 수가 없으므로 그 有無를 알 수 없다고 하는데, 이것을 人身으로써 보면 사람이 他人을 對하는 때에 그 相對人에게 精神作用이 있고 없는 것을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나 그에게 精神作用이 있는 줄은 우리의 體驗으로써 確的히 알 수 있는 것이니, 이는 사람마다 自身에게 精神作用이 있으므로 他人에게도 精神作用이 있는 줄을 아는 것이며 이 體驗을 더 推衍解釋하여 보면 人間은 반드시 사람마다 精神作用이 있고 또 그 精神作用은 모두 共通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사람마다 各其 獨自的으로 偶然忽然히 오다가다 얻은 것이 아니라 모두 同一한 源으로부터 稟受한 것임이 分明한즉 人間의 精神作用의 本原은 반드시 어느 한곳에 있는 것이오 이 精神作用의 本原은 곧 天地의 精神作用인 神이다. 그리고 神은 無形한 까닭에 能히 天地間의 萬事萬物을 創造하시는 것이니, 이는 사람의 天性이 無形한 까닭에 能히 無限無窮한 空間과 時間을 周遍하여 萬事萬物을 接應함과 같은 것이다.

     

     

     

    神이라 함은 天의 光明이 萬物을 生한다는 뜻인데 易學에는 神을 帝 또는 上帝라하고 또한 祖考라하니 上帝祖考는 그 名稱은 서로 다르되 모두 神을 말한 것으로서 다만 神과 사람과의 對稱을 달리한 것뿐이다. 上帝라 함은 天上에서 光明을 下垂하여 萬物을 生한다는 뜻으로서 上帝와 民衆과의 上下의 分을 對稱한 것이오 祖考라 함은 萬物을 始生하는 祖上父母라는 뜻으로서 祖上父母와 子孫과의 系統의 序를 對稱한 것이다.

     

     

     

    神은 萬物의 上帝 祖上으로서 萬物을 創造하신 것인즉 神은 萬物 以前에 어디에서 創造된 것인가 하면, 創造라 함은 無形에서 有形物을 造出하는 일이니 天地太初의 無形中에서 비로소 有形物의 生한 것이 곧 萬物의 創造이다. 天地間에는 天地의 생기는 처음에 乾坤生命元이 있어 無形한 中에 스스로 統一的으로 運動하여 生命이 되는 것이며, 이 生命은 形이 生치 아니하여 無形으로 되어 있으되 自體가 生生하기 爲하여 스스로 그 生生을 主宰하는 神이 있어, 生命과 神은 一體二元이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生命과 神은 先後의 別이 없고 形而上과 形而下의 두 作用이 되어 形而上한 作用은 神이 되고 形而下한 作用은 生命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萬物의 有形하기 以前에 이미 神이 存在하여 有形한 萬物을 創造하시니, 天地의 始가 곧 神의 始이오 神의 始가 곧 萬物生生의 始이다.

     

     

     

    神은 永遠無窮

     

    神이 有形한 萬物을 創造하는 順序를 氣精形의 象으로써 보면 天地間에 陽氣가 먼저 陰中에서 動하여 雷가되고 雷의 衝激作用에 依하여 火를 生하였는데, 火는 依附할곳이 없어서 形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다음에 陰氣가 受動的으로 動하여 磁氣인 風이 되고 風의 凝收作用에 依하여 水液을 生하니, 이것이 天地有形의 始이다. 有形의 始인 水가 生한 然後에 火가 水에 依附하여 光明을 發하니, 그러므로 水火는 萬物創生의 始가되고 萬物의 生生함에는 모두 水火를 體로 하는 것이며, 水火에도 形而上한 것과 形而下한 것이 있는데 形而上한 水火는 神의 體가되고 形而下한 水火는 萬物의 體가 되는 것이다. 이미 水火가 生한 뒤에는 無形한 神은 有形한 水火를 物의 體로 하여 萬物을 創造하시고 스스로 水火의 속에 갈무리하여 有形한 萬物로 나타나시는 것이니, 그러므로 天地間萬物은 모두 神이 有形으로 表現된 것으로서 萬物의 內部에는 神을 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萬物創造의 順序를 生命元 雷風 水火라고한 것은 다만 그 無形과 有形의 順序를 말함이오 實際에 있어서는 生命元과 生命도 先後의 別이 없고 生命과 神도 先後의 別이없고 生命元과 雷風 水火도 또한 先後의 別이없고 乾坤生命元이 있는 때에 그 속에 스스로 生命이 있고 神이 있고 雷風 水火가 있어 한 個의 天地生命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天地間에 包含되어 있는 萬物은 그 形質에 모두 生滅이 있고 사람도 그 形質에 死生이 있어 모두 有限有窮하며, 사람의 精神도 生前에는 天性이 되고 死後에는 鬼神이 되어 늘 變化하고 있고, 天地間에서 오직 神만이 永遠無窮하니, 이는 天地의 有機的 統一的 生命體의 精神의 象인 神은 사람의 共同生活體인 國家社會의 有機的 統一的精神作用과 同理한 까닭이다. 사람은 各個人이 自體의 生生을 爲하는 精神作用을 가지고 있는 同時에 그 여러 個人의 共同生活體인 國家社會에도 또한 여러 個人의 有機的 統一的인 精神作用이 엉키어 있어 그 國家社會의 生生을 營爲하고 있는 것이며, 各個人은 반드시 死生이 있으되 共同生活體인 國家社會는 個人들의 世代交替에 依하여 恒久히 存續하는 것이니, 우리 人類社會가 有史以來로 綿綿히 連續하는 것이 그 一例이오 그러므로 國家社會를 運營하는 有機的 統一的 精神作用도 또한 恒久하여 國家社會를 永遠한 未來까지 存續시켜 나가는 것이다. 國家社會의 有形한 行政施設은 사람의 肉體의 生存하는 作用의 象이 되고 無形한 政治計劃은 사람의 精神作用의 象이 되어 無形한 政治計劃이 不斷히 行한 然後에 有形한 行政施設이 實施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政治計劃은 永遠히 繼續되는 것이오 政治計劃의 行치 못하는 날은 그 國家社會의 敗衰하는 날이다.

     

     

     

    이 理에 依하여 天地의 有機的 統一的 生命體도 그 生物의 個個體는 生滅이 있으되 天地生命體는 永遠無窮히 繼承하고 天地生命體의 生生을 運營하는 精神作用도 또한 永遠無窮하여 天地生命體를 永遠한 未來까지 繼繼生生시켜 나가는 것이니, 이가 神의 永遠無窮하신 所以이다. 或은 생각하기를 萬物은 宇宙의 自然法則에 依하여 스스로 生成하는 것이오 神의 所爲가 아니라고 하나, 自然法則이라 함은 하나의 生生計劃書에 不過한 것이오 生生計劃書가 저절로 萬物을 生生하는 것이 아니라 能動하는 精神作用이 있어 그 計劃書대로 活用하는 때에 萬物이 生生되는 것이니 神이라 함은 이 能動하는 精神作用을 말함이오 自然法則이라 함은 神의 마련한 生生計劃書를 말함이오 生生計劃書를 活用한다함은 神이 自身의 마련한 自然法則을 自身이 能動하여 몸소 實施하는 것이다. 마치 人間社會의 모든 建設에는 建設計劃書가 있는데, 이 建設計劃書가 저절로 物을 建設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能動하는 精神作用을 가진 사람이 있어 그 計劃書대로 活用하는 때에 비로소 建設이 이루어짐과 같은 것이다.

     

     

     

    人間社會의 모든 建設이 사람의 無形한 精神作用에 依하여 이루어짐과 같이 天地間의 萬物도 또한 無形한 神의 뜻에 依하여 生生하는 것이다.

     

     

     

    天地生生의 精神作用인 神은 萬物을 生生하기 爲하여 天地의 大空間에 가득히 차 있는 萬物을 하나도 周知치 못하심이 없고 또 그들 萬物을 永遠히 繼承시키기 爲하여 萬物의 生生發展하여 나가는 天地의 大時間의 永遠無窮한 未來를 先知치 못하심이 없으니 이는 神의 知이며 神은 또 그들 萬物에게 自體의 生生法則을 賦與하시어 어느 一物도 空間的 時間的으로 그 生을 完遂치 못함이 없게 하시니 이는 神의 能이다. 繫辭에「乾은 易(이)로써 知하고 坤은 簡으로써 能하다」하니 乾의 知와 坤의 能은 乾坤生命元이 萬物을 生生하기 爲한 知能으로서 이가 곧 神의 知能이니 神은 乾知坤能으로써 天地의 生生을 主宰하고 계시는 것이다.

     

     

     

    神은 太陽에 位居

     

    天地의 神과 사람의 天性은 그 本性이 同一한 것인데, 사람의 天性이 無形하고 모든 事物에 周遍하여 一定한 居處가 없는 것이로되 또한 人身의 頭腦에 依附하여 모든 作用을 行하는 것인즉 神도 天地를 統括하여 비록 在치 아니하신 곳이 없고 行치 아니하시는 곳이 없으되 또한 반드시 位居하시는 곳이 있는 것이다. 神은 生命과 一體二元이 되니 形而上한 天行健의 象이 되고 水火의 形而上한 氣를 合하여 體를 삼는 것이오 天地間의 光明의 本源이되는 太陽이 또한 乾坤과 雷風을 合한 天行健의 象으로서 水火의 有形한 精을 合하여 有形體로 된 것이니, 無形한 神과 有形한 太陽은 그 組織의 象이 同一하므로 神은 太陽에 位居하시어 生生의 政을 行하시는 것이다.

     

     

     

    神字가 天上의 光明이 下垂하여 萬物을 伸出한다는 뜻으로 되어 있는 것도 또한 神이 太陽의 光明에 位居하시어 萬物을 生生하시는 象을 말한 것이오, 太陽의 光明을 달에 施하여 萬物의 씨를 作成한다는 것도 또한 神이 太陽의 光明에 位居하시어 萬物의 씨를 創造하시는 理를 말한 것이며, 이가 곧 神이 먼저 水火를 創造하여 光明을 發하게 하시고 그 水火를 物의 體로 하여 萬物을 創造하시고 萬物로 하여금 光明속에서 살게 하시는 理이다. 光明이라 함은 水火가 合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宇宙間의 大水火를 體로하고 있는 神은 宇宙間의 大光明이 바로 그 體로 되는 것이오 그러므로 宇宙間에서 光明을 發하고 있는 모든 恒星은 한덩어리의 光明體로서 사람의 頭腦와 같은 組織體로 되어 神의 位居하시는 곳이 되는 것이며, 太陽도 恒星의 하나이므로 太陽系의 宇宙에서는 太陽이 神의 位居하시는 곳이 되는 것이다. 神과 生命은 一體二元의 理로 되고 生命이 有形化하여 처음으로 太陽을 構成한 것이므로 神이 또한 太陽에 位居하시는 것이오 神이 萬物生生의 政을 行하시므로 萬物의 씨의 元이 또한 太陽에서 나오는 것이다.

     

     

     

    神의 位居하시는 太陽에는 水火가 있고 水火에는 聚散作用이 있어 生滅의 現象이 있는 것이나, 天地統一神은 唯一 絶對하여 統體와 個體를 超越하고 그 統一體內에 비록 聚散作用이 行하고 있으되 聚하여도 그 體內에 聚하고 散하여도 그 體內에 散하여 聚와 散을 超越하고 있으므로 天地의 神은 永遠不窮한 唯一神이 되는 것이다.

     

     

     

    神이 太初에 모든 生物을 生하실 때에 植物은 土中에 着根하여 스스로 水土의 營養을 攝取하고 살며, 動物은 天然物을 아무런 加工도 없이 그대로 먹고 몸에는 毛皮와 甲皮같은 것을 두르고 衣服을 입을 必要가 없는 것이나, 사람은 그와는 달라서 天然物을 그대로만 먹을 수가 없고 반드시 人工을 加하여 먹으며, 몸을 保護하기 爲하여는 반드시 衣服을 입어야 하며, 또 生活에 必要한 온갖 器具를 만들어야 하는 것인데, 사람이 처음으로 發生할 當時에는 人智가 열리지 못하여 自體의 智力으로써 自體의 生活을 營爲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사람을 創造하신 神은 自體를 人身으로 化하여 神人이 되어 사람들의 모든 生活을 指導하시니 이 神人은 地上에 人類의 形象이 나타난 始初이며 神이 사람을 創造하실 때에 神의 形象대로 지으셨다 하는 것도 이 神人과 人類와의 關係를 말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神人은 곧 神이오 사람이 神에서 出生하였다 함은 곧 神人에서 出生하였다 함이다. 神은 太陽에 位居하시면서 太初에 神人으로 化하여 地上에 내려와서는 어느 곳에 坐定하시는가 하면 이것을 易理로써 보건대 地의 上升한 것은 艮山이오 艮山의 一陽은 天에 接하고 있으므로 神이 地上에 내려와서 神人으로 化身하는 때는 반드시 艮山上에 坐定하시어 人類의 大始祖가 되신 것이며, 그러므로 艮이 上卦로 되는 卦의 上爻에는 모두 神과 光明의 象이 있는 것이다.

     

     

     

     

     

    第二節 死生과 鬼神

     

     

     

    ■ 萬物은 神의 分身

     

    神이 萬物을 創造하심에는 어떻게 創造하시는가 하면 그 象은 氣精形의 象에 나타나고 있다. 天行健한 雷風의 氣는 神의 象이오 雷風의 反易한 山澤의 形은 萬物의 象이니, 이는 萬物의 山澤의 形은 神의 雷風의 氣에서 生하는 까닭이며 無形한 雷風의 氣가 有形한 山澤의 形으로 化함에는 반드시 그 中間에 無形도 되고 有形도 되고 하는 水火의 精의 聚散作用에 依하여 行하는 것이다. 이 理에 依하여 無形한 神이 有形한 萬物의 個體를 創造하심에는 天地統一神이 統一體 그대로는 萬物의 個體로 形化치 못하고 반드시 水火의 聚散作用과 같은 分身作用이 行하여야 하는 것이며, 神의 分身한 것이 곧 鬼神이니, 神이라 함은 天地統一神을 말함이오, 鬼라 함은 個體의 本能의 魂을 말함이오 鬼神이라 함은 個體의 本能과 理性의 魂을 말함이다. 神의 分身作用이 鬼와 神의 두 가지로 나뉘우는 것은 사람의 天性이 發用하는 때에 스스로 心과 情의 두 가지로 나뉘움과 같은 것이니, 神은 光明한 本體인 天性의 象이오 鬼는 震子 兌精의 作用인 情 卽 本能의 象이오, 鬼神은 光明한 天性의 運行作用인 心의 象이다.

     

    神의 分身에 依하여 個體가 생기는 때에 鬼神이 生하는 것인데, 萬物個體의 씨가 달에서 生하므로 神의 分身하는 作用도 또한 달에서 行하는 것이니, 이는 太陽이 震子를 달에 發施하고 달의 兌精이 그것을 承受하여 萬物의 씨를 承受함과 同一한 理로서, 太陽에 位居하신 神이 그 陽氣를 달에 施하면 달의 陰氣는 그것을 承受하여 神의 分身인 個體의 神을 作成하여 鬼神이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萬物의 씨는 반드시 鬼神을 體로하고 鬼神은 달에 依附하여 地上萬物의 生生作用을 行하는 것이다. 萬物의 씨가 처음에 創生될 때에 오직 生의 時運에만 發生하고 長의 時運에는 그 이미 發生한 씨가 地上에서 자라서 蕃殖함과 같이 神의 分身作用에 依하여 萬物이 發生하는 것도 또한 生의 時運에만 植物의 數多한 種類, 動物의 數多한 種類가 모두 그 種類대로 생기고 사람도 生의 時運에 神의 形象대로 한 種類가 생기고, 長의 時運에는 種類가 느는 것이 아니라 各種類가 地上에 내려와서 그 種類의 族屬이 느는 것이니 그러므로 神의 分身作用은 오직 生의 時運에만 行하고 神의 全體가 모든 生物의 各種類로 分身되는 것이다.

     

     

     

    死後 鬼神의 理

     

    사람은 神의 分身作用에 依하여 鬼神을 體로 하여 生하는 것인데, 死後에는 鬼神이 어떻게 하여 生하는가 하면, 萬物에는 死生이 있고 그 死生은 生物의 씨를 組織한 氣精形의 聚散作用을 因함이다. 萬物은 無形에서 有形이 生하고 精과 氣가 聚하여 物의 形質을 이루는 것이므로 物의 死하는 때에는 聚한 것이 散하면서 形質이 消滅하여 다시 無形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物이 形質을 이루는 것은 生함이오 形質이 滅하는 것은 死함이다. 雷風의 氣는 無形하고 氣 그대로는 形質이 生치 아니하니, 처음부터 生치 아니한 者는 또한 滅할것이 없으므로 雷風의 氣는 生滅이 없이 恒存하는 것이오 水火의 精은 無形도 되고 有形도되어 聚散이 있으되 그 本體는 水火대로 恒存한 것이오, 山澤의 形은 有形한 것으로서 山은 地가 炎上하는 火를 갈무리하여 形이 生한 것이오 澤은 流下하는 水를 멈추어서 形이 生한 것이므로 山澤은 生滅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씨의 속에 있는 雷風의 氣는 死生이 없이 恒存한 것이오 씨에서 싹이 生하여 形質이 있은 然後에 死生이 있는 것이니, 이가 곧 聚한 者는 반드시 散하고 生한 者는 반드시 死한다 하는 理이다. 이것을 樹木의 열매로써 보건대 열매의 속에 있는 天行健한 씨의 氣는 恒久히 繼生하여 死滅치 아니하는 것이오 열매에서 싹이 나서 枝葉이 자라면 그 枝葉은 有形한 까닭에 生滅이 있는 것이니, 싹의 트는 것이 곧 將來에 싹의 死하는 張本이 되는 것이다. 死生의 理를 사람의 一身으로써 보면 肉體는 有形한 形質로서 열매의 싹의 象이오 天性은 無形한 氣로서 씨의 속에 있는 天行健한 氣의 象이라 그러므로 肉體에는 死生이 있으되 天性은 恒久히 繼生하여 滅치 아니하고 肉體의 死한 뒤에도 游魂이 되는 것이니 이것이 人死後에 鬼神이 存在하는 原理이다.

     

     

     

    사람은 精氣가 聚하면 生하고 精氣가 散하면 死하는 것인데, 처음에 聚하여 生할 때에 이미 天性과 肉體의 二元運行의 理가 있으므로 내종에 散하여 死하는 때에도 또한 二元分離의 理가 있는 것이오, 그러므로 人死後에는 天性이 肉體로부터 分離하여 獨自히 存在할 수 있는 것이다. 物의 聚한 者는 반드시 散하는 것이오 그 散하는 때에는 또한 그 聚한 바의 期間의 長短久速과 그 聚한바의 形體의 大小厚薄에 따라서 그 散하는 期間에도 遲速이 있는 것이니, 이는 物의 生長成原理가 그러한 것이다. 사람의 天性은 長久한 期間에 精氣가 聚하여 자라고 여문 것이므로 사람이 死하여 精氣가 分散하는 때에는 그 死하는 卽時로 아무런 形迹도 없이 消散하는 것이 아니라 水火를 體로한 火炎體는 肉體와 分離된 뒤에 어느 期間동안은 消散치 아니하고 獨自히 存在하는 것이니 이것을 游魂이라 한다.

     

     

     

     繫辭에「精과 氣가 物이 되고 魂이 游하여 變이 되는지라 그런 故로 鬼神의 情狀을 知한다」하니, 이는 水火의 精과 雷風의 氣가 聚合하여 사람의 形質이 되고 精氣의 分散하는 때에 天性이 肉體와 遊離하여 游魂이 되고 游魂이 變化를 行하는 것이 곧 鬼神의 情狀이라 함이다. 사람의 生前의 天性에 心과 情의 分別이 있으므로 死後 游魂의 變化에도 鬼神의 情狀이 있으니, 情은 鬼의 作用이오 狀은 神의 作用이라 生前의 本能인 情은 鬼의 作用으로 되고 生前의 心의 光明은 神의 作用으로된 것이다.

     

     

     

    사람의 天性에는 여물고 여물지 못하고 한 差異가 있으므로 死後의 鬼神에도 또한 이와 같은 差異가 있어, 天性이 여물면 鬼와 神의 作用이 아울러있고 天性이 여물지 못하면 生前의 情의 象인 鬼의 作用은 있으되 心의 象인 神의 作用은 없는 것이다. 死後에 鬼와 鬼神의 作用이 어떻게 서로 다른가하면 사람의 生前에 本能에서 發한 感情은 個體의 獨自한 것으로서 그 사람의 獨自한 感情에 그치는 것이오 生前에 心의 光明에서 發하는 理性은 萬人公共한 것으로서 人類共通의 理念이 되는 것인데, 生前의 感情이 死後의 鬼로 되고 生前의 理性이 死後의 鬼神으로 되는 것이므로 鬼와 鬼神의 作用은 바로 感情과 理性의 狀態로 發現되는 것이다. 死後의 鬼神作用은 人類共通의 理念과 같은 것으로서 唯一神의 作用과 相通하는 것인데, 이것을 神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鬼字를 붙여서 鬼神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사람의 死後 鬼神이라 하는 神과 唯一神은 그 作用이 同一하여 高低의 分도 없고 不合하는 分도 없고 正邪의 分도 없고 完全히 相通하고 있으나 唯一神은 天地間 統天의 神으로서 個體가 統體를 超越하고 있으나 사람의 鬼神은 個體에 붙어있던 游魂으로서 비록 神의 作用은 있으되 한편에 個體의 本能性을 지니고 있으므로 鬼의 作用인 個體性을 離脫치 못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鬼神은 人間의 大人의 格이 되어 大人으로 더불어 그 吉凶을 合하고 있으되 亦是 鬼와 神의 合體狀態를 離脫치 못하는 것이다.

     

     

     

    繫辭에「天地의 數가 五十五이니 이것이 써 變化를 成하고 鬼神을 行하는 바이라」하니 이는 天地自然數는 十에서 成하는 것이므로 一로부터 十까지를 合한 五十五數에서 天地의 變化가 이루어 萬物이 여물고 萬物의 여무는 때에 鬼神의 作用이 行한다 함이다. 이것을 樹木으로써 보면 열매가 익어서 씨가 여문 然後에 生命이 世世繼承하는 것이오 씨가 여물지 아니하면 쭉정이가 되어 그것을 심어도 싹이 나지 아니하여 生命이 끊어지는 것이며, 樹木에는 心情作用이 없으므로 死後의 鬼神은 없으나 씨의 世世繼承하는 作用이 곧 鬼神의 作用이오 그러므로 萬物은 十數에서 여물면 變化를 成하여 鬼神의 作用을 行한다 한 것이다. 이 理에 依하여 사람의 天性도 善이 繼生하여 여문 然後에 鬼神의 作用이 行하고 死後에도 鬼神이 있는 것이며, 天性이 여물지 못하면 生前에 本能生活을 하던 感情만이 남아서 鬼만 있고 鬼神이 없는 것이다. 生前의 本能인 情은 死後에도 游하여 鬼가 되는데, 動物은 純全히 本能生活을 하고 있으니, 그러므로 動物의 死後에도 반드시 鬼가 있는 것이오, 그러므로 사람과 動物이 死後에 서로 幻生하여 사람의 鬼가 動物로 태어나기도 하고 動物의 鬼가 사람으로 태어나고 하는 것이다.

     

     

     

    人間世界와 鬼神世界

     

    神의 分身作用에 依하여 사람은 鬼神을 體로 하여 生하고 그 死後에는 도루 鬼神이 되어 다시 無形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그러므로 天地間에는 無形한 鬼神作用이 行하여, 마치 人間社會에 數多한 心情作用이 行함과 같은 것이며, 이 까닭에 天上에는 無形한 神世界가 있어 地上의 人間世界와 類似한 組織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易經에「况於人乎况於鬼神乎」아 하여 每每사람과 鬼神을 倂稱한 것은 有形한 人間世界와 無形한 神世界가 이 天地間에 倂存하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天上의 神世界와 地上의 人間世界가 그 組織이 類似하고 그 禍福도 또한 類似하므로 謙卦에는「鬼神 害盈而福謙 人道惡盈而好謙」이라 하니 이는 鬼神과 사람의 두 世界가 서로 通하여 共通한 生理를 가지고 그 미워하고 좋아하고 함이 相同하다 함을 말함이다. 또 사람의 死後의 鬼神은 生前에 天性의 여문 사람이라, 그러므로 死後의 鬼神이 天命을 받들어 施命作用을 行하고 人間世界에 對하여 害와 福의 權能을 行使하는 것이니, 人間社會에서 古來로 驕盈한 者가 亡하고 謙讓한 者가 興하는 것은 모두 鬼神의 害福作用에 依한 것이다.

     

     

     

    天上의 神世界組織은 人間社會와 같은 高下階級이 있는데, 人間社會의 長의 時運에는 그 高下階級이 人格의 高下로써되지 아니하고 主로 生長競爭에 依한 勢力强弱으로써 決定되는 것이나, 神世界에는 生長競爭이라는 것이 없고 唯一神의 至嚴하신 主宰下에 專혀 善惡의 程度로써 그 階級의 高下가 決定되는 것이다. 宗敎를 創設하신 釋迦 孔子 예수 같은 聖人은 神道로써 敎를 設하시고 生長成의 時運에 맞춰서 民衆을 가르쳐서 唯一神의 事業을 直接 代行하였으므로 이는 바로 唯一神의 體의 一部로 되어 있는 것이오 鬼神이 아니며 그러므로 三聖人같은 이는 달에 居하시는 것이 아니라 神의 位居하시는 太陽을 中心으로하여 圜行하고 있는 어느 至近한 별에 居하시는 것이며, 그 外의 賢哲들은 鬼神이 되어 달에 依附하는 것이오, 生前에 惡을 行한 者는 鬼로 되어 地上에 依附하지 못하고 地下에 있으니, 地下는 火山의 갈무리하여 있는 곳이라 이가 곧 宗敎에서 말하는 바의 熱火가 끓는 地獄이오, 그 外의 平凡한 者는 또한 鬼性이 勝하여 地上에 依附하는 것이다. 이 四層의 階級은 空間의 天風山地의 階層과 비슷한 것이오, 人間의 禍福을 主管하는 者는 달에 依附하고 있는 鬼神이오, 人間社會에서 平凡한 사람들과 相接하는 者는 主로 地上의 鬼이니 繫辭에 人謀鬼謀라든가 旣濟未濟卦에 伐鬼方이라든가 하는 것은 모두 地上의 鬼를 말한 것이다.

     

     

     

    鬼神의 盈虛消長

     

    사람의 씨는 日月에서 生하는데 日月에는 盈虛하는 理가 있고, 사람의 天性은 水火로써 體를 삼는데, 水火에는 聚散의 理가 있으니, 그러므로 사람의 天性에 日月水火의 盈虛聚散하는 理가 있고 사람으로 더불어 本性이 同一한 鬼神에 또한 盈虛聚散하는 理가 있는 것이다. 豐卦에「日이 中한즉 昃하고 月이 盈한즉 食하나니 天地의 盈虛도 時로 더불어 消하고 食하고 하건대 하물며 사람이며 하물며 鬼神이라오」하니 이는 天地日月도 그 時를 따라서 盈虛消息이 있는 것인데 사람이나 鬼神이 어찌 盈虛消息하는 時가 없으리오 함이다. 消息이라 함은 終하고 새로 生한다 함이라, 사람은 生死하는 것이 곧 消息이오 鬼神은 聚散하는 것이 곧 消息이다.

     

     

     

    사람과 鬼神은 日月에서 生하는 것인데, 日月에 運行하는 度가 있어 晝夜 晦望의 盈虛消息이 있으므로 사람의 生長成에도 度가 있고 鬼神의 聚散에도 時가 있어, 사람과 鬼神이 時로 더불어 消息하는 것이다. 사람과 鬼神의 消息이라 함은 사람이 죽어서 鬼神이 되고 鬼神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고 하는 것이 곧 消息인데 이 消息에는 幻生과 長存의 두 가지 形態가 있는 것이다.

     

    天地가 盈虛하여 日月의 光明이 消息하면서 晝夜晦望이 循環하니, 이것은 光明의 幻生하는 象이오, 光明은 비록 消息하되 光明의 本體는 恒常하여 生滅이 없으니, 이것은 光明의 長存하는 象이다. 日月의 光明에 幻生과 長存의 象이 있으므로 日月에서 生한 사람과 鬼神에도 또한 幻生과 長存의 象이 있으니, 鬼神은 달에서 사람의 씨의 體로 되고 사람의 死後에 다시 鬼神이 되어 鬼神에 消息이 있는 것은 鬼神의 幻生하는 象이오 鬼神의 形態에는 消息이 있으되 鬼神의 本源은 恒存하여 生滅이 없는 것은 鬼神의 長存하는 象이다. 鬼神의 幻生과 長存의 象은 사람의 生長成하는 形態에도 나타나고 있으니, 사람이 無形한 鬼神에서 生하여 有形으로 化하는 것은 곧 鬼神이 無形으로부터 有形으로 化한 것이므로 사람의 出生하는 것은 鬼神幻生의 象이 되는 것이오 사람의 天性이 여물어서 鬼神의 作用이 生하는 것은 곧 鬼神이 有形中에 갈무리하여 恒存하는 것이므로 사람의 여무는 것은 鬼神長存의 象이 되는 것이다.

     

     

     

    사람과 鬼神은 그 本源이 同一하며 다만 肉體의 死生과 形의 顯藏이 있을 뿐이니, 그러므로 死의 속에 生의 原이 있고 生의 속에 死의 本이 있는 것이다. 사람의 生하는 것은 鬼神幻生의 象이오 사람의 여무는 것은 鬼神長存의 象인데, 사람의 자라는 것은 生과 成의 中間에 있어 鬼神의 作用을 內部에 包含하고 形質이 外面에 나타나서 有形한 形質을 기르기 爲하여 物質生活을 하는 것이다. 사람은 生하면 반드시 자라야하고 또 사람이 여물기 爲하여는 반드시 자라야 하는 것이니, 이 자라는 期間中에 잘 자라면 天性이 여물어서 有形속에 鬼神의 作用이 生하여 그 死後에도 鬼神이 長存하는 것이다.

     

     

     

     

     

    第四章 사람의 生生

     

    第一節 生生의 圜運動

     

     

     

    ■ 宇宙는 圓狀組織

     

    萬物의 生生에는 終하고 始함이 있어, 終하는데서 다시 始하여 循環하는 것이오, 循環하여 끝이 없은 然後에 그 生生이 永遠하여 窮치 아니하는 것이니, 이것을 圜運動이라하며, 天地는 自體가 永遠不窮히 生生하기 爲하여 반드시 圜運動을 行하는 것이오「乾은 圜이 된다」함은 天地의 圜運動을 말한 것이다.

     

     

     

    圜運動에는 空間運動과 時間運動의 두 가지 形態가 있다. 天地의 空間은 한 光明體로 되어 光明의 비치는 範圍안이 곧 天地의 空間인데, 光明은 日暈 月暈과 같이 圓狀으로 되어 있으므로 空間도 또한 圓狀으로 되어 있고, 空間이 圓狀으로 되어 있는 까닭에 空間을 돌고있는 地球와 달도 모두 圜轉하는 圜運動을 行하는 것이다. 空間과 時間은 天地太一體의 兩作用으로서 時間의 推移하는 區間이 곧 空間이오 空間을 歷行하는 期間이 곧 時間이다. 空間에 圜運動이 있으므로 時間에도 또한 圜運動이 있어 地球와 달의 空間的 圜運動은 또한 晝夜 四時 晦望과 같은 時間的 圜運動으로 되는 것이오 따라서 天地間에 生生하고 있는 모든 生物의 生生에도 반드시 空間과 時間의 圜運動이 있어, 끝없는 生生을 繼續하는 것이니, 草木의 열매에서 싹이 나고 싹이 줄기로 되고 줄기에 다시 열매가 맺히며 虫類의 卵에서 幼虫이 나고 幼虫이 成虫으로되고 成虫이 다시 卵을 生하며, 鳥類가 卵을 生하고 卵에서 다시 鳥가 生하고 함과 같은 것은, 모두 空間的 圜運動과 時間的 圜運動의 兩象을 兼하여 世世로 繼承하여 窮치 아니하는 것이다. 天地가 萬物을 生生함에는 天地와 生物과의 사이에 또한 圜運動이 있어야하고, 萬一 圜運動이 없으면 直線運動이 되고 直線運動은 어느때든가 또는 어느곳에서든가 반드시 끝나는데가 있고, 끝나는데가 있으면 窮함이 있어 永遠치 못한 것이다.

     

     

     

    天地의 生生運動은 모두 圜運動을 行하고 있으므로 萬物의 構造도 모두 圓狀으로 되어 있으니, 저 日月 地球의 形態가 圓狀을 띠고 있음은 勿論이오, 地上에서 우리 人間을 비롯하여 鳥獸 虫魚 植物等의 構造가 모두 圓狀으로 되어 圓柱狀의 體幹 肢屬 莖葉等과 平圓狀의 顔面 木葉等과 圓球狀의 眼球 子卵 果實等과 圓孔狀의 耳孔 鼻孔 口腔等 無數한 圓狀物이 羅列되어 있고 甚至於 우리의 周圍를 둘러싼 山峰이 모두 圓狀이오 草木의 葉上에 맺힌 水滴도 圓球狀이오 水銀이나 鐵屬의 鎔液을 散布하면 또한 圓球狀이 되니, 이는 天地의 運動이 모두 圓空中을 圜行하여 暫時도 쉬지 아니하는 까닭에 萬物이 모두 그 作用을 받아서 圓狀을 띠지 아니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天에서 씨를 地에 下施하면 그 씨는 生物이 되어 어떠한 形態로든지 다시 天으로 圜行하는 것이오, 生物이 天으로 圜行한다 함은 父母가 子를 生하고 子가 父母를 닮아서 世世繼承하는 것이 곧 空間的 圜運動과 時間的 圜運動을 通하여 天으로 圜行하는 象이다. 萬物은 神에서 生하여 神을 父母로 하므로 萬物이 長成하여 神을 닮는 것이 곧 神과 萬物의 圜運動인데 神은 無形하니, 萬物이 어떻게 神을 닮을 수가 있는가 하면 神이라 함은 宇宙生命體의 精神이라 萬物의 精神이 神의 形像과 一致하는 것이 곧 神을 닮는 것이며 地上에 出生한 生物中에서 植物과 動物은 비록 神을 父母로하고 있으되 그 精神作用이 神을 닮을 수가 없으므로 世世繼承하는 子가 되지 못하는 것이오 오직 사람은 神의 子孫으로서 그 天性이 神을 닮아서, 天性에 神作用이 있고 死後에 다시 鬼神이 되는 것이므로 神과 사람과의 사이에는 空間的 時間的으로 圜運動이 行하고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天地의 神은 自體가 永遠히 生生하시기 爲하여 사람을 生하여 함께 圜運動을 行하는 것이오, 여기에 사람의 靈貴性이 있는 것이다.

     

     

     

     

     

    動植物과 사람의 差異

     

    動物에도 精神作用이 없는 것은 아니나, 動物의 精神은 神을 닮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사람과 動物은 모두 그 씨의 發生當時에 이미 그 體의 組織이 全然 相異하고 있는 까닭이다. 生物의 組織은 모두 水火로써 體를 삼고 있는데, 사람의 體는 水火의 調和된 胎宮에서 胎育되므로 寒熱이 調節되어 頭部는 寒하고 寒한 部分에는 털이 生하며, 얼굴이나 몸같은 것은 水火의 烹湯作用에 依하여 熱하고 熱한 部分에는 털이 生치 아니하여 革이 되는 것이니, 胎宮 革卦의「水火相息」과「革面」은 이 뜻을 말한 것으로서, 水火相息이라 함은 烹湯作用이 行함이오 革面이라 함은 動物의 面上에는 털이 있어 毛皮가 되고 사람의 面上에는 털이 없어서 革이 된다 함이다. 사람은 몸에 陽氣가 盛하여 火氣가 炎上하므로 身體는 火의 炎上體와 같이 三角形으로 直立하여 天地를 貫通하고 天性이 또한 火炎體로 되어 頭腦에 依附하여 天을 向하며 天性은 水火가 調和되어 水는 透明하고 火는 光明하므로 透明作用과 光明作用으로써 事物을 接應하여 神作用이 行하며 火의 陽氣의 發揚作用으로 因하여 言語를 發宣하며, 身體가 直立한 까닭에 手指를 써서 器物을 工作하며, 言語와 手工이 있는 까닭에 文字를 發明하여 師傅의 敎가 行하니, 師傅의 敎는 神道이라 사람이 神道를 行하는 것이 곧 神을 닮는 所以이다.

     

     

     

    動物은 그 씨의 發生하는 때에 이미 水氣가 勝하고 火氣가 적어서 火炎과 같은 炎上體가 되지 못하므로 그 胎宮에 水火의 烹湯作用이 行치 못하여, 소위 高等動物들도 얼굴이나 全身에 털이 生하여 毛皮에 싸여 있으며 水의 形은 水平으로 되어 地面을 橫平으로 흐르고 있으므로 水氣가 勝하고 있는 動物의 體는 모두 橫平하여 背를 하늘로 하고 腹을 땅으로 하여 天地를 直立치 못하며 사람은 그 體가 直立하므로 그 家族系統도 위의 祖上父母로부터 아래의 子孫에 이름과 같은 縱系와 夫婦 兄弟와 같은 橫系와의 兩系가 同居하여 水火의 調和를 이루고 있는데, 動物은 그 體가 平橫하므로 그 새끼를 乳養하는 期間 以外에는 縱系族屬이라는 것이 없고 오직 雌雄相從하는 橫系만이 있는 것이오, 사람이 天地의 神을 祖考로 모시는 것도 또한 縱系의 理에 依한 것이다. 動物은 火氣가 不足하여 火의 光明이 弱하므로 精神作用이 어두우며, 陽氣가 적어서 發宣하는 힘이 없으므로 言語를 發치 못하는 것이다. 또 사람의 食物은 大槪 水火로써 加工하여 그 精을 攝取하고, 飮用水는 到處에 있는 것이로되 오직 生命體인 土中에서 솟아 나오는 물이 生命水로 되어 물의 最精한 것이므로 飮用水는 井泉을 파서 마시는 것인데, 動物의 食料는 水土에서 生하는 天然物을 加工함이 없이 그대로 粗食하고 있으니, 動物은 火氣가 적어서 光明치 못하고 水氣가 비록 勝하되 水가 濁하여 透明치 못하고 한 까닭에 精神作用이 어둡고 濁하여 神을 닮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天地는 永遠不窮한 圜運動을 行하고 生生을 世世繼承하기 爲하여 먼저 植物을 生하고 그 植物을 生養資料로 하여 한 次元의 높은 動物을 生하고, 다시 植物과 動物을 生養資料로 하여 더 한 次元의 높은 사람을 生하고 사람의 天性으로 하여금 神을 닮게 하여 神과 사람이 함께 圜運動을 行하고 있으니, 이것이 天地가 사람을 生한 所以이오, 사람은 天地의 永遠한 生生作用의 一役을 맡기 爲하여 이 世上에 出生한 것이다. 動物이 植物을 生養資料로하고 사람이 動植物을 生養資料로하는 것은 萬物의 자라는 때에 相生과 相克의 作用을 어울러 行하는 天地의 自然法則이니 이는 動物과 植物은 陽氣가 不足하고 形質이 勝하고 天性이 여물지 못하여 神을 닮지못하는 것이므로 植物은 自體의 形質을 犧牲하여 神에게 바쳐서 윗 次元의 動物의 形質로 化하고, 動物이 또한 自體의 形質을 犧牲하여 神에게 바쳐서 윗 次元의 사람의 形質로 化하는 것으로서 모든 生物이 一聯이 되어 相生과 相克으로써 神을 닮는 作用을 行하는 運動이다.

     

     

     

    植物 動物 사람의 一聯의 關係는 天地의 創造될때에 이미 定하여진 것이니, 이것을 生長成의 象으로써 보건대, 神이 처음으로 生物을 創造할 때에 生物의 基本組織인 形質을 먼저 만들고 純全히 神의 뜻인 自然法則을 따르게 하고 行動의 自由를 주지 아니하니, 이는 生物의 基本組織이 行動의 自由를 가지고 있으면 神의 自然法則을 어겨서 스스로 自體의 組織을 破壞하는 일이 있는 까닭이오, 生物의 基本組織은「生」의 象인데, 基本組織을 破壞하는 것은 곧 自體의 生을 破壞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生物의 基本組織에는 自由가 없고 오직 自然法則을 順從할뿐이며, 이것이 最初로 創造된 植物이다.

     

     

     

    萬物의 生生에는 모두 組織과 運行의 兩象이 있는데 植物은 行動의 自由가 없으므로 그 運行이라고는 土中에 着根하여 周圍에 있는 營養을 取하고 他力에 依하여 生殖作用을 行하는等의 本能生活을 營爲할뿐이니 이는 物이 다만 組織體를 가지고 살고만 있는 生의 象으로써 自然法則을 어기는 일이 없이 神의 뜻을 順從하고 있으나 行動의 自由가 없는 까닭에 또한 神에게로 圜行하는 作用도 없는 것이다. 植物에는 草木의 數多한 種類가 있어 그 數를 헤아릴 수 없을 만치 繁雜하니, 이는 植物이 各其 神의 體의 作用을 一部分씩을 나누어 받아서 그 個體를 삼는 까닭에 神의 體의 全體가 모두 部分으로 나뉘어서 數多한 植物種類가 생긴 것이오, 이 植物의 全種類의 作用을 하나로 綜合하여 놓으면 또한 神의 體의 全體作用을 이루는 것이니 그러므로 植物의 全種類는 곧 神의 體의 全體로서 地上의 모든 生物의 基本組織이 되는 것이다.

     

     

     

    植物의 다음에는 植物의 基本組織인 形質을 바탕으로 하여 그 形質에는 亦是 組織을 變改할만한 行動의 自由가 없고 神의 自然法則을 따라서 生하고 자라고 老하고 죽고하면서 다만 그 形質을 움직여서 生育 生殖 長壽의 세 本能을 遂行할 수 있는 行動의 自由를 가지는 한 生物이 創造되니, 이가 곧 動物이다. 그러므로 動物은 植物의 形質을 그 體의 基本組織으로하여 自然法則을 順應하고 거기에 本能生活을 遂行할 수 있는 行動의 自由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本能生活의 自由는 生物이 자라기 爲하여는 가장 基本되는 自由인데, 動物은「長」의 象이되므로 자라는 동안의 本能生活을 營爲하기 爲하여 行動의 自由가 있는 것이다. 다만 動物에는 天性中의 本能인 情만 있고 天性의 여무는 作用이 없으므로 神에게로 圜行하는 作用이 없으며, 動物에도 數多한 種類가 있는 것은 動物이 各其 神의 情의 一部分씩을 나누어 받아서 그 本能을 삼는 까닭에 神의 情의 全體가 나뉘어서 數多한 動物種類가 생긴 것이오, 이 動物의 全種類의 本能을 하나로 綜合하여 놓으면 또한 神의 情의 全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動物의 全種類의 本能은 곧 神의 情의 全體로서 이것이 모든 生物의 本能의 源이 되는 것이다.

     

     

     

    動物의 다음에는 植物의 形質을「生」의 基本組織으로하여 自然法則을 따르고 動物의 本能을「자라는 作用」으로하여 自由로이 行動하고 그 위에 神에게로 圜行하기 爲하여 그 形象은 神의 形象을 닮고 言語의 自由를 가지는 한 生物이 創造되니, 이가 곧 사람이다. 사람은 天地唯一神의 形像대로 되어 있으므로 世界人類가 單一種類로 되고 言語는 天性의 여무는 作用을 가진 者만이 使用할 수 있는 것인데, 說卦에「神이라 함은 萬物을 妙하게하고 言을 하는 者이라」하여 神이 萬物을 創造하고 사람에게 言語를 주어 서로 酬酌한다 함을 말함이니 이는 사람은「成」의 象으로서 植物의 形質과 動物의 本能을 合하고 또 神의 言語를 배워서 天性의 여무는 作用을 行한다 함이며, 사람이 言語를 通하여 神으로 더불어 酬酌할 수 있는 것이 곧 能히 神에게로 圜行하는 所以이다.

     

     

     

    世人中에는 흔히 사람을 動物의 一種類로 보는 일도 있으나 사람과 動物은 그 生生하는 次元이 全然다르다. 사람은 植物의 形質로써 肉體의 組織을 삼고 그것이「生」의 象이 되는 것이므로 사람의 肉體는 植物과 같이 神의 自然法則을 따라서 生長老死하고 있으니, 人體中에 自然法則을 順從하는 것은 오직 이 肉體이며, 人體가 植物의 要素를 가지고 自然法則을 따라서 生하고 있으므로 사람은 반드시 植物을 取하여 自體生養의 資料를 삼는 것이며, 사람은 動物의 自由行動하는 本能으로써 生活의 本能을 삼고 그것이「長」의 象이 되는 것이므로 사람의 肉體는 動物과 같이 本能을 따라서 行動하고 있으니 이 까닭에 人間의 本能生活은 모두 動物的이며, 人體가 動物의 要素를 가지고 本能生活을하여 자라고 있으므로 動物을 取하여 自體生養의 資料를 삼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生活이 本能生活에 그친다고 하면 이는 動物과 別로 差別이 없다고 할 것이나 사람은 그 形像이 神을 닮고 言語를 通하여 神으로 더불어 酬酌할 수가 있으므로 사람의 肉體中에 動物의 要素가 들어 있을 뿐이오 動物의 一種類는 아니다. 사람과 動物의 生長成하는 象을 比較하여 보더라도 天地自然數에 陽數의 終인 九數는 자라는 極數가되고 陰數의 終인 十數는 여무는 極數가 되는데, 사람은 男體는 九竅가 열리고 女體는 十竅가 열려서 陰陽長成의 極數를 가지고, 男女가 모두 女體의 十竅에서 九合朔을 지낸 十朔만에 出生하므로 自然數 五十五가 具全하여 陰陽이 調節되고 神의 作用이 行하는 것이며, 動物은 비록 高等動物이라 하더라도 九竅만이 열리고 十竅가 되지 못하므로 肉體만 자라고 天性이 여물지 못하는 것이니, 이가 사람이 動物보다. 한 次元 높은 位에 있는 所以이며, 이 까닭에 動物은 自體를 犧牲하여 사람을 生養하는 資料가 되는 것이 自體의 形質을 한 次元 높은 사람의 形質로 化하여 神에게로 한 次元 接近하는 所以이다. 神은 사람으로 더불어 圜行하기 爲하여 사람을 生하고 사람을 기르기 爲하여 動植物을 犧牲하고 있으므로 사람은 반드시 天性이 여물어서 神을 닮는 修養을 쌓은 然後에, 自體를 犧牲하여 사람을 生養하고 있는 動植物에 對하여 그 恩德을 報答함이 되는 것이오, 만일 사람이 그 天性을 여물게 하지 못하고 한갓 자기 肉體가 살찌기 爲하여 다른 生物만을 犧牲하여 없애면 이는 無故殺生이 되어 天地生生의 大德에 어그러지는 것이다

     

     

     

    神과 사람의 相祐

     

    天地는 永遠不窮히 生生하기 爲하여 사람을 生하고 사람은 神을 닮아서 世世繼承한 然後에 生生의 任務를 다하는 것이니, 사람이 神의 法則을 본받아서 神의 事業을 祐하는 것이 곧 神을 닮는 일이다. 祐라함은 天佑神助라는 뜻으로서 사람이 神을 돕고 神이 사람을 돕고 함을 祐라 하는 것이니, 繫辭에「可히 더불어 神을 祐한다」함은 사람이 神을 祐함을 말함이오 大有卦에「天으로부터 祐한다」함은 神이 사람을 祐함을 말함이다. 사람이 神을 祐한다 함은 神의 事業을 祐함이오 神의 事業이라 함은 神이 天地의 永遠한 生生作用을 行하기 爲하여 사람을 生養하여 사람으로 더불어 圜運動을 行하는 것이 곧 神의 事業이다. 그러므로 天地間에는 사람을 生養하는 일보다 더 큰 事業이 없고 萬物中에는 사람이 가장 靈貴한 것이며, 人間社會의 生生事業은 모두 神이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으로서 政治 學術같은 것도 비록 그것이 사람의 自由意志에 依하여 營爲되고 있으되 그 事業은 神의 計劃에 依한 事業으로서 사람들이 神의 뜻을 받들어서 行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自由意志가 있어서 神의 事業을 祐할 수도 있고 또 害할 수도 있는지라, 사람이 神의 뜻을 받들어서 神의 事業을 祐하는 것은 天을 順하는 것이오 天을 順하는 者는 天의 祐를 받는 것이며, 神의 뜻을 받들지 아니하고 不善을 行하여 도리어 사람의 生生을 害하는 것은 天을 逆하는 일이오 天을 逆하는 者는 天의 祐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神의 子孫으로서 神으로 더불어 圜運動을 行하고 神의 事業을 祐하는 것이 곧 神을 닮는 것이니, 圜함과 祐함과 닮음과는 同一한 일에 對한 表現을 달리한 것으로서, 이것을 生生運動하는 面으로써 보면 圜運動이 되고, 世世繼承하는 面으로써 보면 神을 닮음이 되고, 事業을 行하는 面으로써 보면 神을 祐함이 되는 것이다. 乾文言에「大人은 鬼神으로 더불어 그 吉凶을 合한다」하니 이는 大人이 吉하다 하는 것을 鬼神도 吉하다하고 大人이 凶하다하는 것을 鬼神도 凶하다 한다는 뜻으로서 大人이 神을 닮아서 그 天性에 神作用이 있으므로 大人과 鬼神이 完全히 合致한다 함이다.

     

     

     

    사람은 그 日常生活에 쓰고 있는 物資와 器具는 天然物을 그대로 쓰는 것은 거의 없고 반드시 人工을 加하여 쓰며, 사람의 共同生活에 必要한 모든 制度는 天然物로는 全然 存在하지 아니한 것이므로 사람이 自然法則을 본받아서 새로 制定하는 것이니, 이는 사람이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을 行하기 爲하여 天地의 未成한 天工을 代行하고 天工은 사람을 待하여 完成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繫辭에는 天地人을 三才라하니 才라함은 物을 創生하는 才能을 말함이라, 天은 萬物의 씨를 創生하여 地에 施하고 地는 天의 下施한 씨를 承受하여 形質을 創生하고 사람은 天然物에 人工을 加하여 그 所用하는 物資를 生産하니 이는 天地人이 모두 物을 創生하는 才能이 있으므로 이것을 三才라 하는 것이오 그러므로 이 地上에는 天地가 創生한 天然物과 사람이 加工한 人工物이 全域을 차지하고 그 以外에는 鳥類의 巢 蜂蟻의 집 거미의 그물 같은 것이 있을 뿐이며, 사람이 三才의 位에 있는 것이 곧 天地로 더불어 圜行하는 地位에 있는 所以이다.

     

     

     

    人工物의 創製와 制度의 制定같은 것은 空間에 屬하는 일이오 時間의 運行에도 또한 天工과 人工과의 關係가 있으니, 이는 곧 사람이 天時를 順하는 일이다. 天時라 함은 一年의 四時나 生長成의 時運과 같은 것이니, 例컨대 봄이 오면 萬物은 發生하는 것이로되 百穀같은 것은 人工으로써 土壤을 耕起하고 씨를 심은 然後에 그 發育이 正常한 것이오 가을이 되면 百穀은 成熟하는 것이로되 여름에 人工으로써 培養한 然後에 가을의 結實이 完全한 것이니, 이가 人工으로써 天時를 順함이다. 天地의 時의 變化에는 時運이 있는데, 時運이 變할 때마다 사람은 그 時運에 맞춰서 制度를 새로 만들고 生活樣式을 變改한 然後에 各其 適宜함을 得하는 것이니, 生의 時運인 原始社會의 人間生活과 지금의 長의 時運의 人間生活의 相異한 것은 이 까닭이다. 그러므로 時運이 變할 때마다 반드시 先覺者가 나와서 새 時運에 맞는 새 生活을 指導 하는 것이니, 이는 비록 봄이 되어도 人工으로써 百穀을 심지 아니하면 가을에 完全한 結實을 얻을 수 없음과 같이 비록 時運의 變하는 때라 하더라도 사람이 人工으로써 그 時運에 맞는 事業을 行치 아니하면 그 時運에 맞는 天祐를 받지 못하는 까닭이다. 時運의 變化는 天工이오 時運에 맞는 事業을 行하는 것은 人工이니 時運의 變化하는 때에 先覺者가 나와서 다음 時運을 豫見하고 그 時運에 맞는 事業을 人工으로써 創設하는 것이 또한 物을 創生하는 三才의 일이며 時運의 變하는 때가 오면 天工은 또한 반드시 人工으로써 天工을 代成할 수 있는 先覺者를 이 世上에 보내는 것이다.

     

     

     

     

     

    第二節 自由意志와 善惡

     

    ■ 善惡이 모두 自由

     

    사람의 天性이 發用함에는 自由가 있어 그것이 自由意志가 되는 것이니. 이는 사람은 各其 居住를 달리하고 그 居住하는 곳의 地宜 氣候 食物等이 同一치 아니하므로 自體가 生生하기 爲하여 自體의 生生을 適宜히 裁成할 수 있는 自由意志를 가지지 아니할 수가 없고, 또 사람은 神을 祐하여 모든 生活資料를 生産하고 共同生活에 必要한 制度를 만들어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을 行하고 함에는 그 計劃을 세우고 才能을 發揮하여 人工을 行할 수 있는 自由意志를 가지지 아니할 수가 없고 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自由意志는 그 出生하는 때에 天地로부터 稟受한 天賦의 自由이니 繫辭에「天下가 무엇을 思하며 무엇을 慮하리오 天下가 同歸하되 길은 다르고 一致하되 慮는 百이라」하니 同歸一致라함은 神에게로 歸一함을 말함이오 길이 다르고 慮가 百이라 함은 各自의 天性에 自由가 있다 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天性의 自由는 自體가 生生하고 또 사람을 生養하기 爲하여 天으로부터 받은 바의 自由로서 이것은 神을 祐하는 自由이오 天工을 代行하는 自由이다.

     

     

     

    사람은 自由意志와 生을 營爲하는 知能이 있고 또 사람의 天性은 善의 繼生하여 여문 것이므로 天性은 善한 것인데 사람에게 惡이 있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먼저 善惡이라는 것을 易理로써 보면 天性은 씨의 組織과 같은 것으로서 씨에서 싹이 나오는 것이 곧 善인즉 씨가 여물지 아니하고 쭉정이로 되어 싹이 나오지 아니하는 것은 善을 害함이 있는 까닭이오, 善을 害하는 것이 곧 惡이니, 이는 生生하여 發育함은 善이 되고 生生을 害하는 것은 惡이 된다함이며, 그러므로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을 돕는 것은 善한 일이오, 生養事業을 害하는 것은 惡한 일이니, 이가 善惡을 判別하는 標準이 되는 것이다.

     

     

     

    或은 말하기를 神이 사람을 創造하실 때에 무엇 때문에 사람에게 自由意志와 知能을 주어서 惡을 行하게하고 또 그 惡을 防止치 아니하는가 하는데, 神이 萬物을 創造하실 때에 먼저 植物을 지어서 行動의 自由와 知能을 주시지 아니하고, 다음에 動物을 創造하심에 行動의 自由만을 주시고 知能을 주시지 아니하며, 그 다음에 사람을 創造하심에 天地唯一神의 形像대로 짓고 神 自身이 가지고 있는 自由意志와 知能을 그대로 주시고 神의 말하는 言語를 주어서 神과 사람이 서로 酬酌하게 하시어 사람으로 하여금 자라고 여물어서 神에게로 圜行하도록 하시었으므로, 사람은 人工으로써 天工의 未成함을 代成하고 天性이 여물어서 神作用이 生하여 天으로 圜行하는 것이니, 사람의 自由는 사람의 자라는 동안 아무런 制限을 받지 아니하는 天賦의 自由이다. 神과 生命은 一體二元의 理로 되는데 神은 永遠한 生生을 主宰하므로 萬物의 씨를 創造하심에 모두 永遠性을 賦與하여 世世로 繼承케 하시니, 그러므로 萬物의 生長成運動에 있어서, 生의 象인 씨의 創造와 成의 象인 열매의 여무는 것은 神이 直接主宰하시고 씨에서 싹이 나와서 열매를 맺기까지의 形質의 자라는 동안은 有形을 主宰하는 生命體가 그 任務를 맡고 있는 것이며, 物의 有形하는 동안에는 神은 形質中에 갈무리하여 다만 그를 따라 가실 뿐이다. 이것을 사람의 生生으로써 보면 사람의 씨의 始生하는 일과 사람의 天性이 여물어서 神에게로 圜行하는 일은 神이 主宰하시고, 사람의 出生以後에 肉體를 生養하고 精神을 修鍊하는 等 자라는 동안의 일은 하나의 獨立된 生命體로 되어있는 사람 自身의 任務로 되는 것이다.

     

     

     

    神이 사람을 創造하실 때에 神의 形像대로 지은 까닭에 神에게 自由意志와 知能이 있음과 같이 사람에게도 自由意志와 知能을 賦與하신것인데, 사람은 자라는 동안에 그 自由意志와 知能을 마음껏 行使하여 善할 수도 있고 惡할 수도 있으며, 神은 다만 사람의 行爲의 結果에 대하여 害福을 주실 뿐이다. 害福이라 함은 사람이 자라는 동안에 善을 行하든지 惡을 行하든지 그것은 모두 사람의 自由이오 善이 쌓이면 사람의 天性이 여물어서 神을 닮아 알맹이가 되고 惡이 쌓이면 天性에 神作用이 없어서 쭉정이가 되는 것이니, 이가 곧 害福이오 이것을 自然法則面으로써 보면 應報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自己의 自由意志대로 行한 行爲에 對하여 그 自身이 責任을 지는 것이다.

     

     

     

    사람은 自身이 자라는 自由를 가지고 있으므로 남을 자라게 하는 能力의 自由도 있어 能히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을 行할 수가 있는 것이오 여무는 일은 그렇지 아니하여 自身의 여무는 것도 神의 主宰에 屬하는 것이므로 남을 여물게 할 수는 없으며, 다만 師傅가 弟子의 天性을 여물게 하는 것은 師傅自身의 自由能力이 아니라 聖人이 設하여 놓은 神道의 敎로써 가르치는 까닭이니 그러므로 사람은 神作用에 依하여서만 天性이 여물수가 있는 것이다.

     

     

     

    自由의 本質

     

    사람에게는 자라는 동안에 自由意志가 있고 또 자라는 동안에 生長競爭이 있으므로 사람의 자라는 동안에는 各人으로부터 生長競爭의 自由가 發動하여 온 人類世界는 모두 競爭이오 모두 自由이니, 그러므로 이 世上에는 自己의 生存作用을 行하는것도 發揮하는것도 自由이오, 남의 生存作用을 侵害하는것도 自由이오, 勢力을 가진 者가 民衆을 抑壓하여 政權을 行使하는것도 自由이오 民衆들이 自體의 利益을 護衛하기 爲하여 政權에 對抗하는것도 自由이다. 過去의 資本主義 社會의 弱小民族侵略도 資本主義들의 自由이었고 지금의 共産主義者들이 民衆을 奴隸化하고 自體가 勞動貴族化하는 것도 共産主義者들의 自由이다. 自由라는 것은 本質이 이러한 것이다. 만일 이러한 自由에 對하여 所謂 사람의 自由를 尊重하여 이러한 自由도 尊重하고, 저러한 自由도 尊重한다면, 이 世上에는 强者만이 살고 弱者는 살 수 없어서 이 世上에는 自由라는 것이 全然抹殺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自由를 行使하는 行爲에는 스스로 남의 生을 爲하는 行爲와 남의 生을 害하는 行爲가 있고 남의 生을 爲하는 行爲는 善이 되고 남의 生을 害하는 行爲는 惡이 되는 것이다.

     

     

     

    善惡의 標準

     

    善惡이라는 것을 人體로써 보면 健康은 善이오 疾病은 惡이니 이는 健康은 사람을 生하게하므로 善이 되고 疾病은 사람의 生을 害하므로 惡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獨立한 個體로 되어 있어 그 모든 行爲는 徹頭徹尾 自己個體의 生을 爲하기로 되어 있는 것이오, 決코 남을 爲하는 것이 아니니, 사람의 行爲가 어떻게 남의 生을 爲할 것인가 하면, 사람의 自由行爲에는 體와 用이 있다. 사람은 個體로 되어 있어 그 行爲는 반드시 個體의 生을 爲하는 것이므로 個體의 生을 爲하는 行爲는 自由行爲의 體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반드시 共同生活을 營爲하기로 되어 있는 까닭에 自己가 自己個體의 生을 爲하는 方法은 두 가지 길이 있으니 卽 自己가 남을 爲하지 아니하고 오직 自己個體만을 徹底히 爲하는 個人主義를 通하는 길과 自己가 남을 爲하고 그 남들로 하여금 또한 나를 爲하게 하는 共同體를 通하는 길이 있다. 自己가 남을 爲치 아니하고 오직 自己個體만을 徹底히 爲하는 個人主義의 길은 結局 이 넓은 社會안에서 自己를 爲하는 사람은 自己 혼자 뿐이며, 自己가 남을 爲하고 그 남들이 또한 나를 爲하는 共同體의 길은 結局 이 넓은 社會가 모두 나를 爲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니, 넓은 社會가 모두 서로 爲하고 서로 돕고 하는 것이 人類社會의 本然의 姿勢이오 사람이 남을 爲하는 行爲가 곧 自己의 生을 爲하는 行爲이며, 그러므로 사람이 남을 爲하는 行爲는 自由行爲의 用이 되는 것이다.

     

     

     

    이 體와 用의 理를 要約하면 사람의 自由行爲의 體는 自身이 直接으로 自己個體의 生을 爲하는 것이오 自由行爲의 用은 남을 爲하여 間接으로 自己個體의 生을 爲하는 것이니, 사람의 自由行爲에 이 體와 用이 具備한 然後에 能히 그 生을 完遂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일 體만 있고 用이 없으면 제 自身 혼자만이 自身을 爲하는 사람이 되고 이 世上에서 남과 相接할 수 없는 孤身隻影이 되고 易理에는 이러한 사람을 器局의 좁은 小人이라 하고 惡을 犯하는 者는 남의 生을 爲할 줄을 알지 못하는 이러한 小人들이라고 한 것이다.

     

     

     

    器局의 좁은 小人들은 그 眼界가 적으므로 그 個體의 生을 營爲할 때에 저 혼자가 제 生을 爲하드래도 社會에 큰 害가 없는 것이나, 만일 그러한 小人들이 社會의 支配權을 가지는 때는 社會로 하여금 自己의 個體를 奉養케 하여 드디어 큰 惡에 빠지는 것이다.

     

     

     

    지금의 人間은 자라는 過程에 있는 未成品

     

    사람의 天性은 善한 것인데 지금에 人間社會에서 惡이 자주 發生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면, 사람의 天性이 善하다 함은 天性의 여문 것을 말함이오 사람의 자라는 過程에는 아직 天性이 여물지 못하여 온전한 善이 되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자라는 過程에 있는 사람은 하나의 未成品으로 되어 있는 까닭이다. 지금은 長의 時運에 當하여 사람들이 모두 未成品으로 되어있어, 사람들의 天性이 또한 未成品으로 되어 있으므로 善이 되지 못하고 惡이 發生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

     

     

     

    모든 生物은 個體를 가지고 生育하는 本能이 있으므로 個體의 자라는 때에는 반드시 生長競爭을 行하여 他를 克制하는 것이오 特히 長의 時運中에 있어서는 그 生長競爭의 結果가 惡에 까지 發展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樹木의 例로써 보건대 樹木은 아무 意識이 없으되 또한 生長競爭作用을 가지고 서로 排斥하면서 自體의 生長을 期하고 將且 열매를 맺고 여물어서 世世繼承하여 永遠不窮히 生生하려 하는 것이며, 만일 生長競爭에 敗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면 世世繼承의 作用이 끊어지는 것이므로 樹木은 열매를 맺기 爲하여 生長競爭을 行하는 것이다. 그러나 樹木에는 自由意志가 없고 全혀 自然法則을 順하여 神의 生生事業을 害하는 일이 없으므로 惡은 發生치 아니하는 것이다. 動物같은 것은 自由意志를 가지고 生長競爭을 行하고 있으나 그 것은 相互間의 衝突에 不過하고 意識的 計劃的으로 神의 生生事業을 害하는 것이 아니므로 또한 惡이 되지 아니하는 것이다. 오직 사람은 生長競爭을 行하는 때에 意識的 計劃的으로 他를 克하여 神의 生生事業을 害하는 일이 있으므로 生長競爭의 激甚한 長의 時運에 惡이 發生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惡의 生하는 것을 人體의 組織으로써 보건대 사람의 精神과 肉體는 一體二元의 理로 되는데, 精神에는 神作用이 있어 萬人公共한 것이므로 거기에는 理性이 있고 惡이 없으며, 肉體는 個人마다 各各 私有한 個體로서 거기에는 本能의 感情이 있고 感情에는 彼我의 區別이 强하고 個體의 私가 生하는 까닭에 흔히 理性이 밝지 못하고 和氣를 傷하여 惡이 生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善을 쌓으면 天性이 여물어서 알맹이가 되고 惡을 쌓으면 天性이 여물지 못하여 쭉정이가 되어 스스로 消滅하는 것인데, 惡이 쭉정이로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神은 사람의 自由로운 生生을 爲하여 또 自由로이 자라게 하기 爲하여 사람의 자라는 동안에 사람에게 自由意志를 賦與하고 사람은 自由意志에 依하여 모든 所願을 成就하는 것이므로 神은 사람이 自由意志를 行使하는 동안은 善惡間에 사람의 行爲를 그대로 許하고 사람의 所願하는대로 따라가시는 것이니 이는 사람에게 自由意志가 있은 然後에 充分히 자랄 수 있는 까닭이며, 사람의 言行은 天地圜行의 理에 의하여 善惡間에 모두 神에게로 올라가고 神은 그것을 받으시는 대로 모두 그 사람에게 돌려주시어 그 사람의 所願을 成就시키시는 것이다.

     

     

     

     卽 사람은 善을 行하면 善이 쌓여서 자라고 惡을 行하면 惡이 쌓여서 자라는 것이며, 善의 자란 것은 열매가 여물어서 永遠한 씨가 되는 것이오 惡의 자란 것은 쭉정이가 되어 生生이 끊어지는 것이니, 사람이 善을 行하는 者는 열매가 되기를 願하는 者이오 惡을 行하는 者는 쭉정이가 되기를 願하는 者이라, 自身의 自由意志로써 善惡을 行하여 열매가되고 쭉정이가 되고 하는 것은 모두 그 所願을 成就하는 일이다.

     

     

     

    坤卦에「積善之家必有餘慶 積不善之家必有餘殃」이라 하니 이는 사람이 自由意志로써 善惡을 積하여 그 所願하는 慶殃을 받음을 말함이며, 여기에도 또한 圜運動의 象이 있으니, 自家에서 善함이 나가면 반드시 善의 應報가 돌아오고, 自家에서 不善함이 나가면 반드시 不善의 應報가 돌아오는 것인데, 自家에서 나가서 自家에 돌아오는 것은 空間的 圜運動이오, 지금에 나가서 後日에 돌아오는 것은 時間的 圜運動이다. 여름에 草木의 자랄 때에는 어느 열매가 알맹이로 되고 어느 열매가 쭉정이로 되고 할 것을 分別할 수가 없는 것이나, 가을이 되면 알맹이와 쭉정이가 스스로 選別되어 알맹이만 남고 쭉정이는 消滅되는 것이니, 이는 天地의 生生法則이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라는 때에 自由意志의 길을 바르게 向하여 充實히 자라면 알맹이가 또한 充實히 여무는 것이오 充實히 자라지 못하면 비록 成의 時運이 到來하더라도 充實한 알맹이가 되지 못하는 것이며, 지금의 人間은 長의 時運에 處하여 아직 여물지 못한 未成品이 되고 있으므로 惡을 行하는 일이 있어 쭉정이로 되는 者가 적지 아니한 것이다. 人體로써 보면 健康은 사람의 生命을 完全히 하는 것이므로 善하여 알맹이의 象이 되고 疾病은 사람의 生을 害하여 死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惡하여 쭉정이의 象이 되는 것이다.

     

     

     

    人間社會안에 사람의 生을 害하는 惡人이 있는 것은 사람의 身體에 疾病이 있음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身體의 疾病을 治療하여 그 生을 完全하게 하는 것은 비록 疾病治療中에 그 사람에게 苦痛을 주고 身體一部를 手術하는 일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善이 되고 惡이 되지 아니하는 것이며, 이 理에 依하여 社會안의 惡人의 自由를 拘束하고 嚴刑을 加하고 하는 것은 社會의 疾病을 治療하여 그 社會의 生을 完遂하기 爲함이니, 그러므로 이것은 善이 되고 惡이 되지 아니하는 것이며, 革卦에「湯武革命順乎天而應乎人」이라 함은 天時와 人心에 順應하여 社會안의 惡政治를 除去하고 社會의 生을 完遂하는 事業을 行함을 革命이라 한 것이다. 여기에 革命이라 함은 順天應人하는 革命을 말하는 것이므로 革命은 善한 것이며, 長의 時運에 勢力의 强弱으로써 서로 政權을 爭奪하는 것은 비록 政權을 奪取하되 그것은 社會를 生生하는 運動이 아니므로 革命이라고 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性惡說

     

    사람의 天性을 惡하다고하는 性惡說이 있는데, 天性은 사람의 모든 行爲를 主宰하여 人體의 健康함과 같은 것이므로 天性은 반드시 善한 것이며, 저 所謂 性惡說은 마치 世間에 疾病에 걸린 사람이 많음을 보고 사람의 몸은 疾病으로서 組織되었다 함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몸은 健康으로서 組織되고 疾病 같은 것은 一時的 不健康 現象에 不過한 것이니, 그러므로 사람의 天性은 善한 것이오 저 惡같은 것은 生長競爭의 過程에서 天性이 疾病에 걸려서 一時的으로 發生하는 것이오 天性에는 惡이 없는 것이다.

     

     

     

    天命은 一生의 使命

     

    사람에게는 自由意志가 있어 神의 自然法則을 어기고 惡의 發生하는 일이 있으므로 사람은 그 出生하는 때에 自體의 生生을 營爲함에 必要한 天性을 天으로부터 稟受하는 同時에 또한 世上에 出生하여 어떠한 일을 한다는 使命을 天으로부터 아울러 稟受하니, 이가 天命이오, 乾卦에 「乾道가 變化하여 各各 性命을 正한다」함은 物이 天性과 天命을 바르게 行한다 함을 말함이다. 天性은 圓深通明하여 空間의 象이 되고 天命은 사람의 一生동안에 遂行할 바의 使命이므로 時間의 象이 되는데, 空間은 사람의 自由意志에 依하여 그 一部를 變改할 수가 있으므로 天性에는 自由가 있어 能히 空間의 自然物에 對하여 人工을 加할 수가 있는 것이오 時間은 사람의 힘의 全然 미치지 못하는 境域이므로 스스로 旣定된 使命이 있어 사람은 天時를 奉行하면서 그 使命을 다하지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生物이 無形에서 有形으로 化하여 이 世上에 生한 者는 반드시 天命을 받고 있는 것이니, 이는 모든 生物이 世上에 나올 때에 다만 偶然忽然히 되는대로 오다가다 나온 것이 아니라 모두 神의 體의 一部分을 나눠 받고 나온 까닭이다. 植物이나 動物은 數多한 種類로 나뉘어서 生하고 있는데, 이들은 形質을 主로 하고 있으므로 그 所謂 天命이라는 것은 그 種類의 形質의 生生繼承하는 일이니 그 一例로는 楊木은 楊木으로 生하여 楊木의 씨를 保有하는 것이 그의 天命이오, 桑木은 桑木으로 生하여 桑木의 씨를 保有하는 것이 그의 天命이오, 牛는 牛로 生하여 牛의 씨를 保存하는 것이 그의 天命이오 馬는 馬로 生하여 馬의 씨를 保存하는 것이 그의 天命이다.

     

    그러므로 楊桑牛馬는 모두 그 種類대로 共通한 個性을 가지고 同一한 任務를 遂行하여 모두 自然스럽게 그 天命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單一種類로 되어 共同生活의 社會를 組織하고 사람의 生活은 極히 複雜하여 반드시 分業協業이 있는 것이므로 사람은 그 種類는 單一하고 있으되 그 性格 知識 技能 같은 個性은 實로 千差萬別한 것이니, 사람의 個性의 千萬가지 差異는 動植物의 千萬가지 種類의 差異와 匹敵하는 것이며, 사람의 自由意志에 依한 分業協業으로써 神의 事業을 祐하기 爲하여 各其 獨殊한 性格 知識 技能等 個性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곧 天命이다. 사람은 獨殊한 個性을 가지고 神의 事業을 祐하는 것으로써 一生의 使命을 삼고 있으므로 사람은 動植物과 같이 自體의 形質이 자라고 子孫을 繁殖하고 하는 것으로는 天命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動植物은 數多한 種類로 나뉘어 있으므로 그 種族保存이 한 使命으로 되어 있으나, 사람은 世界人類가 모두 單一種類로 되고 있으므로 그 種族의 保存은 天命이 되지 아니하고 人類全體의 生生을 爲하는 事業이 天命으로 되는 까닭이며, 사람이 자라는 동안에 自由意志로써 그 使命을 다하는 것은 天命을 順함이되고 使命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天命을 逆함이 되는 것이다.

     

     

     

    天命인 使命은 사람의 一生동안에 遂行하는 일이므로 어느 一面으로는 運命도 되는 것이니. 마치 動植物의 楊桑牛馬는 一生을 楊桑牛馬로 될 수밖에 없는 까닭에 完全히 運命으로 되어 있음과 같은 것이다. 이런 面으로 볼 때에는 사람의 天命도 또한 運命이 되는 것이오, 또 사람의 살고 있는 時運도 時間에 屬하여 있으므로 또한 運命이 되는 것이니, 사람은 時運이라는 運命의 속에서 살면서 그 稟受한 바의 使命을 다하고 있으므로 그 一生의 活動은 스스로 運命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時間속의 人間의 實生活은 空間에 屬하니, 空間에 屬하는 일은 人工으로써 善하게 할 수도 있고 惡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비록 어떠한 時運이 到來하더라도 사람은 그 時運에만 依存하는 것이 아니오 空間에 屬하는 일은 最善의 人工을 加하여 人間生活에 利用하고 人工으로써 할 수 있는 人事를 다한 然後에 時運을 待하는 것이 곧 天命을 順함이다.

     

     

     

    天性과 天命은 하나는 自由이오 하나는 運命으로서 서로 對立하고 있는듯하나, 두가지가 모두 天으로부터 稟受한 것으로서 그 本源이 同一하므로 사람은 그 自由意志로써 天性의 至善을 다하고 天命을 順하여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을 行하는 때에 天性의 自由와 天命의 運命이 스스로 一致하는 것이니, 說卦에「理를 窮하고 性을 盡하여 써 命에 至한다」함은 天性과 天命의 一致한 境地를 말함이오 天性과 天命의 一致한 者는 天性의 여문 者이다.

     

    그러나 사람은 自身의 稟受한 天命이 무엇인지를 알기가 어렵고, 天命을 알지 못하고서 자기가 이 世上에 태어난 使命을 다하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비록 天命을 알지 못하고 있으되 人間으로 神을 祐하는 일을 行하면 또한 스스로 使命을 다하는 일이 되는 것이니, 이는 人類의 共同生活에는 여러 가지의 分業協業이 있으되 그 歸着하는 곳은 모두 神을 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第三節 孝 忠 義는 三大倫

     

    ■ 孝忠義는 神道이다

     

    사람의 行動하는 倫理로서 神과 相通하는 三大倫이 있으니, 三大倫이라 함은 父子道의 孝와 國民道의 忠과 夫婦道의 義를 말함이다. 孝忠義의 三大倫은 神의 垂示하신 天倫인데, 長의 時運의 사람들은 자라는 過程에 있어 生長競爭을 行하여 自己의 自由意志를 主張하고 神의 뜻을 알지못하여 이 天倫을 바르게 쓰지 못하고 도리어 當時의 君主와 貴族들에게 잘못 利用된 일도 있는 것이며, 成의 時運에는 이것이 人間社會의 最大 倫理로 되는 것이다. 三大倫은 남만을 爲하는 것이 아니라 結果的으로는 自身의 生生을 爲하는 일이 되는 것이며, 또한 天地가 圜運動을 하여 自身에서 나간 善不善이 다시 自身에게로 돌아온다는 原理도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三大倫은 人間社會의 모든 道德의 發源이 되는 것이다.

     

     

     

    孝의 原理

     

    孝는 天地의 生生原理의 中心이 되고 있는 것이니, 사람이 生하고 자라고 함에는 神으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祖上父母의 天命의 줄을 通하여 天命을 받는 것이므로 天命의 줄을 連繼하는 것이 곧 孝이다.

     

     

     

    註 ●孝의 理

     

    萃卦에「王假有廟致孝享也」라 하여 子孫이 廟를 세워서 父母의 神을 奉享하는 것을 孝라 하고 그 다음에「用大牲順天命」이라하여 母가 子의 出生을 爲하여 自身은 犧牲하는 것을 天命이라 하니 이는 父母가 終하고 子가 父母를 繼承하여 天命을 잇는 것이 곧 孝라 한 것이다.

     

     

     

    사람의 살고 있는 이 地球는 太陽을 中心으로하여 公轉하고 神이 또한 太陽에 位居하심으로 사람은 地球와 함께 太陽을 公轉하면서 또한 神을 中心으로하여 圜行하는 것이오, 太陽과 地球와의 사이에 電氣와 磁氣를 因한 引力의 줄이 있으므로 神과 사람과의 사이에도 또한 天行健의 雷風의 氣를 因한 天命의 줄이 있어 祖孫系統의 줄이 되고 있는 것이다. 圜運動은 遠心運動과 向心運動으로 되어 있는지라, 사람이 無形한 天祖神에서 出生하여 有形으로 되어 子子孫孫이 한 世代씩 늘어 나가는 것은 中心에서 멀어지는 遠心運動이오 사람의 遠心運動은 各人마다 그 位置가 다르고 世代마다 그 軌道가 늘어나서 同一한 位置 同一한 軌道를 걷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그러므로 사람은 얼굴이나 性質의 全然 同一한 者는 한 사람도 없는 것이오, 사람의 出生한 以後에 그 向하여 나가는 길은 有形으로부터 다시 無形으로 되어 天祖神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니, 이는 中心을 찾아가는 向心運動이며, 그러므로 사람은 그 出生하는 날부터 一生동안의 걸어가는 行路는 神의 계신 곳으로 向하여가는 것이다.

     

     

     

    사람은 神을 中心으로하여 間斷없이 遠心運動과 向心運動을 아울러 行하고 있으니, 遠心運動을 行하는 것은 空間的으로 無限히 擴大하기 爲하여 無形에서 有形이 生하여 中心에서 멀어지는 것이며, 이는 사람의 形質의 자라는 運動이오, 向心運動을 行하는 것은 時間的으로 無窮히 繼承하기 爲하여 遠心의 終點에서 未來의 始點을 찾아서 無形한 中心을 向하여가는 것이며, 이는 사람의 天性의 여무는 運動이다. 天地의 生生運動은 모두 圜運動으로 되고 直線運動은 없는지라, 사람이 祖上으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것은 그것이 生生運動이므로 반드시 圜運動이오 直線運動이 아니며, 圜運動에 連結되어 繼續하는 生生運動은 또한 圜運動이므로 사람이 向하여가는 길도 또한 直線이 아니오 반드시 圜運動이니, 그러므로 사람이 圜運動을 行하여가는 길은 그것의 圓形이거나 螺旋形이거나를 勿論하고 반드시 始發하는 中心을 向하여 圜行하는 것이다.

     

     

     

    사람이 神을 中心으로한 遠心運動과 向心運動은 스스로 神과 사람과의 사이에 連繼되어있는 줄을 通하여 行하는 것이오 이 줄은 사람의 祖上이 神에서 出生하여 世世로 繼承하여 내려오는 줄이므로 이것은 天命의 줄이 되는 것이다. 地球와 太陽과의 引力의 줄은 遠心運動의 줄과 向心運動의 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相反되는 두 運動을 한 줄로써 行하고 있음과 같이, 神과 사람과의 天命의 줄도 또한 한줄로 되어 있어 祖上으로부터 世世連續하는 遠心運動의 줄이 곧 사람이 神에게로 圜行하는 向心運動의 줄이 되어, 사람이 神에게로 돌아감에는 반드시 祖上父母의 내려오신 줄을 도로 걸어 올라가는 것이다. 神과 사람과의 天命의 줄에는 祖上父母의 位도 있어 神을 向하는 向心運動은 반드시 同一한 줄에 位하신 여러 祖上父母의 마디를 거쳐서 올라가는 것이므로 神을 向하는 마음이 곧 祖上父母를 向하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神의 事業을 祐하는 때에 비로소 天命의 줄이 連繼되어 神에 對한 孝가 되는 것이오, 神을 向하는 마음이 곧 祖上父母를 向하는 마음이므로 神에 대한 孝가 바로 祖上父母에 對한 孝가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神에 對한 孝가 없이는 祖上父母에도 孝가 되지 못하며, 또 祖上父母에 對한 孝가 없이는 神에도 孝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神에 對한 孝라함은 사람이 神의 事業을 祐하는 일이라, 사람이 神을 祐하면 神은 圜運動의 理에 依하여 사람의 祐를 받으시는 대로 天惠를 내리어 사람을 祐하시는 것이니, 이는 사람이 神을 祐하는 일이 또한 自身이 神의 祐를 받는 結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神에게 孝하는 것은 또한 自身의 生生을 爲하는 일이오 神이 天惠를 내리어 사람을 祐하시는 것은 또한 그 子孫을 生養하여 永遠한 生生事業을 行하시기 爲함이니 이와 같이 神과 사람이 相祐하여 天地가 永遠不窮히 生生하는 것이 孝의 原理로 되는 것이다.

     

     

     

    孝의 原理로써 보면 子孫이 祖上父母를 爲하는 것은 곧 自身의 生生을 爲하여 自身과 神과의 天命의 줄을 連繼하는 일이오 祖上父母가 子孫을 愛育하는 것은 또한 自身의 世世繼承하는 生生을 爲하여 自己子孫과 神과의 天命의 줄을 連繼하는 일이다. 子孫이 祖上父母를 爲하고 祖上父母가 子孫을 愛育하고 하는 것은 모두 自己의 生生을 爲하는 일이면서 또한 子孫은 祖上父母의 功德을 報答하고 祖上父母는 神의 子孫을 生養하여 神의 事業을 祐하는 것이니 祖上父母와 子孫과의 사이는 自와 他를 超越하여 同一한 天命의 줄위에서 生生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孝라는 것은 다만 生存한 父母를 爲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天性을 여물게하고 神의 사업을 祐하여 神을 向하는 마음과 이미 作故하신 祖上父母를 向하는 마음이 一致하고 아울러 手下의 子孫들에게 善言善行을 垂範하여 祖上父母와 手下子孫들과의 사이에 天命의 줄이 連繼되게하는 것이 곧 作故하신 祖上父母에 對한 孝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祖上神에서 出生하여 時間的 繼承으로는 祖上과 子孫의 繼世하는 系統이 되고 空間的 擴大로는 世界人類의 連枝하는 兄弟의 誼가 되는데, 사람이 神의 事業을 祐하여 사람을 生養한다 함은 別다른 남이 아니오 곧 자기의 世界兄弟를 生養하는 것이다. 世界人類는 비록 皮膚色이 서로 다르고 言語風俗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 하더라도 모두 同一神에서 出生하여 同一祖上을 모시고 있는 兄弟이오 비록 寸數의 늘고 밭고 한 差異는 있다 하더라도 各自 分離된 남남이 아니며 소위 同民族과 異民族의 差異라는 것은 다만 寸數의 늘고 밭고 함과 婚姻을 通하고 通치 아니하고 한 差異 밖에는 되지 아니하는 것이다. 사람이 有形한 肉體로써 서로 接觸하는 것은 極히 局限되어 있으되 無形한 天性에는 神의 作用이 있어 全人類가 모두 共通한 것이니, 易卦에는 달에서 사람의 씨의 生함을 象한 卦名을「同人」이라 하고 거기에 또「天下의 志를 通한다」고한 것은, 人類의 씨가 모두 달에서 出生하여 그 本源이 同一하고 天下사람의 志가 서로 通한다 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世界人類가 兄弟의 誼로써 서로돕고 서로 親和하는 것은 神의 生生事業을 祐하는 것이므로 그것이 곧 神에 對한 孝가 되는 것이다.

     

     

     

     

     

    忠의 原理

     

    忠은 사람은 自體가 生生하기 爲하여 心의 體인 德을 光明케하여 自體가 所屬하여 있는 社會의 生生을 돕고 事業을 修하는 것이 곧 忠이다.

     

     

     

    註 ●忠의 理

     

    乾文言에「忠과 信이 써 德을 進하는 바이라」한바 德이라 함은 사람이 物을 生養하는 마음의 體를 말함이니, 忠은 中心으로부터 物을 愛育하는 마음이 솟아나옴을 말함이오 마음이 忠하면 能히 物을 生養한다 함이다.

     

    사람은 國家社會의 共同生活體의 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그 共同體의 生生을 爲하여 中心에서 나오는 共同生活 精神이 곧 忠이다. 사람은 그 社會에 出生하는 날에 스스로 그 國家社會의 一員이 되어, 國家社會의 生生이 곧 自身의 生生과 直結되는 것이므로 國民은 國家의 生生을 爲하여 忠하는 것이 곧 自身의 生生을 爲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自身의 生生을 爲하여 各其職務를 通하여 自己를 利하고 아울러 社會를 利하여 사람을 生養하는 일에 參與하는 것은 國家社會의 生生을 爲하는 忠이 되는 同時에 또한 神의 事業을 祐하여 神에 對한 忠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生活에는 形質로된 肉體의 生活과 天性作用인 精神의 生活과의 二元作用이 있는데, 肉體는 有形한 個體로 되어 個個人의 獨自한 것이므로 肉體生活은 個體를 中心으로하여 行하는 것이니, 이가 곧 本能生活이오 精神은 無形한 氣로서 人類共通한 것이므로 精神生活은 全人類의 所自出한 神을 中心으로 하여 行하는 것이니, 이가 곧 理性生活이다. 사람의 精神은 神을 中心으로하여 生活하고 있으므로 祖上父母에 對한 孝가 또한 神에 對한 孝가되고 國家社會에 대한 忠이 또한 神에 對한 忠이 되는 것이며 同一히 神을 祐하는 일에 孝와 忠의 分別이 있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이것을 繼繼生生하는 祖孫傳承關係로써 볼 때에는 孝가되고 共同生活하는 上下組織關係로써 볼 때에는 忠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植物의 形質을「生」의 基本組織으로하여 自然法則을 따르고, 動物의 本能을「자라는 作用」으로하여 自由로이 行動하며, 또 이들 植物과 動物을 生活資料로 하여 生生하고 있으므로 사람의 生生法則이 植物動物과 同一하고 사람의 忠孝의 理도 또한 植物動物의 生理와 相通하는 것이다. 草木이 뿌리로부터 漸次로 生長하여 本末의 次序가 있는 것은 사람이 祖上으로부터 代代로 繼承하는 形態와 같고 草木의 生長에 節이 있는 것은 사람의 祖孫傳承하는 寸數의 形態와 같으니 根本은 祖上父母의 象이오 枝葉은 子孫의 象이라 草木의 枝葉은 그 所自出한 根本을 庇護하기 爲하여 枝葉을 뿌리의 伸張한 範圍만치 伸張시켜 뿌리가 日光에 乾燥됨을 防止하고 뿌리는 水分과 營養을 吸收하여 枝葉에 傳達하여 根本과 枝葉이 모두 그 自體의 生生을 爲하여 서로 庇護하고 서로 養育하니 이는 사람의 祖上父母와 子孫이 서로 그 自體의 生生을 爲하여 天命의 줄을 連繼함과 같은 것이며, 草木의 枝葉이 그 根本을 爲하는 것은 孝의 象이 되므로 사람이 祖上父母를 爲하는 孝는 草木의 孝의 理와 相通하는 것이다.

     

     

     

    動物體의 各器官은 順次的으로 生長分岐하는 草木과는 달라서 그 出生하는 때에 統體가 이미 組織되고 있는 것은 사람이 出生하면서 스스로 그 所屬한 共同生活體의 一員이 됨과 같고 動物體의 各器官이 그 自體의 生生을 爲하여 共同으로 그 統體의 生生을 營爲하는 것은 사람이 自體의 生生을 爲하여 그 所屬한 國家社會의 生生을 돕고 있음과 같은 것이며, 動物體의 各器官이 그 統體를 爲하는 것은 忠의 象이 되므로 사람이 國家社會를 爲하는 忠은 動物體의 忠의 理와 相通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天地間의 모든 生物의 生生은 모두 孝忠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序卦에「有夫婦然後有父子 有父子然後有君臣 有君臣然後有上下 有上下然後禮義有所錯」이라 하니 父子는 植物體의 象이오 君臣의 權力組織인 國家道는 動物體의 象이오 上下道는 自然秩序인 禮義의 錯하는 人道의 象이니, 이는 植物이 있은 然後에 動物이 있고 動物이 있은 然後에 사람이 있다하는 象이다. 父子道는 父母가 全力을 다하여 子女를 生養하여 國家社會에 바치는 것으로서 이는 植物이 自體를 犧牲하여 動物體를 生養하는 象이오 國家道는 國家가 全力을 다하여 사람을 生養하여 그 天性을 여물게 하는 것으로서, 이는 動物이 自體를 犧牲하여 사람을 生養하는 象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自體를 生養하여주는 植物動物의 恩德을 잊지 아니하는 것은 바로 自體를 生養하여주는 父母 國家의 恩德을 잊지 아니하는 行爲와 相通하는 것이오 이 自體를 生養하여주는 恩德을 잊지 아니하는 것이 곧 孝忠의 길이다.

     

     

     

    義의 原理

     

    義는 義라함은 陰陽兩物이 서로 和合하여 하나의 새로운 合同體를 이루는 것이오 그러므로 一夫一婦의 配合하는 것을 天地의 大義라 한 것이다

     

     

     

    ●義의 理

     

    家人卦에「男女正天地之大義」라 하고 歸妹卦에「天地之大義」라 하니 이는 夫婦의 陰陽和合을 義라 한 것이다.

     

    사람의 社會生活은 家庭을 基本單位로 하여 行하는 것이므로 家人卦에는「家를 正하매 天下가 定한다」하여, 各個의 家庭이 社會組織의 基本이 되고 있음을 말하고, 또 「男이 外에 正位하고 女가 內에 正位하여 男女가 正함은 天地의 大義」라 하여 夫婦라 함은 一男一女가 서로 和合하고 各其 內外의 位가되어 한 家庭을 이루는 것이므로 一夫一婦가 相配하는 것이 곧 大義라 함을 말하고, 損卦에는「三人이 行하면 一人을 損하고 一人이 行하면 그 友를 得한다」하여, 二人相配하는 一夫一婦制가 天地의 道라 함을 말한 것이다. 天下의 衆男衆女中에서 오직 一男一女가 相合하여 夫婦가되니 그 夫婦의 義가 大한 것이오 夫婦가 된 然後에는 一生동안에 夫는 一婦를 爲하고 婦는 一夫를 爲하여 함께 살고 있으니, 그 夫婦의 義가 和한 것이며, 男女가 一夫一婦의 義를 지키는 것은 서로 그 相對便을 爲하는 일인 同時에 또한 서로 그 自身의 生生을 爲하는 일이다.

     

     

     

    易卦에는 男女의 婚姻 夫婦의 家庭 童蒙의 出生의 세곳에 모두 神道를 말하니, 이 세 가지는 家庭生活의 主要한 일이오 그 中에서도 家庭의 秩序를 세우는 夫婦의 義가 그 中心이 되고 있어 家道를 正한 然後에 國家社會의 生生事業도 行할 수가 있고 孝忠한 子孫도 이러한 家庭에서 出生할 수가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夫婦間에 義의 和한 家庭은 또한 사람을 生養하는 神의 事業을 祐하여 神道가 行하는 것이다.

     

     

     

    生活의 體用

     

    世間에는 個人主義思想을 가지고 自己의 個體의 生만을 爲하고 他人의 生을 不顧하는 일이 許多한데 이것은 生活의 體用을 알지못하는 까닭이다. 自體의 生을 爲하는 것은 生活의 體이오 他人의 生을 爲하는 것은 生活의 用이니, 사람은 내가 남을 爲하는 때에 남이 또한 나를 爲하여 비로소 共同生活을 營爲하는 것이라, 사람이 自體의 生만을 爲하고 남의 生을 爲하지 아니하면 이는 生活의 體만있고 生活의 用이 없는 것이므로 그 사람은 남으로 더불어 共同生活을 營爲하지 못하고 孤立 獨存한 生活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오 人間은 孤立獨存으로서 生活할 수는 없는 것이다. 忠孝義의 原理도 實은 生活의 體用에서 生한 것이다.

     

     

     

     

     

     

     

     

     

    第五章 未來의 成의 時運

     

    第一節 世上의 變化

     

     

     

    ■ 先天과 后天의 時運

     

    지금 이 時點은 萬物의 자라고 있는 長의 時運이오, 物의 자라는 者는 반드시 여물어서 成하는 것이므로 앞으로 오는 未來時運은 成의 時運이다. 옛적에 生의 時運으로부터 長의 時運으로 넘어올 때에는 生의 時運을 先天이라 하고 長의 時運을 后天이라 하였는데 지금에는 長의 時運으로부터 장차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서 先世 乾坤으로부터 次世代의 乾坤이 生하는 것이므로 生과 長의 두 時運을 合하여 모두 先天이라 하고 成의 時運을 后天이라 한다. 后字는 後라는 뜻과 女王이라는 뜻과 先世를 繼體한다는 뜻과의 세 가지 뜻이 있으므로 長하는 陽運의 後에 成하는 陰運이 繼하고 陰運은 女의 象이라 하여 未來의 成의 時運을 后天이라 한 것이다.

     

     

     

    時運의 長과 成의 象을 樹木의 生生으로써 보면 여름에 樹木의 陽氣가 內部로부터 外部에 發宣하고 水液이 뿌리로부터 위로 逆上하고 無形에서 有形한 줄기 가지 잎사귀가 나와서 여러 갈래로 나뉘우고 하는 것은長의 時運의 象이오, 가을에 外部의 陽氣가 樹木의 內部에 들어가서 收斂하고 水液이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와서 뿌리로 돌아가고 열매가 여물어서 次世代의 씨로 되고하는 것은 成의 時運의 象이다. 지금의 長의 時運의 일을 옛적의 生의 時運의 일에 比하여 보면 人間界의 일만으로써 보더라도 無形에서 有形이 生한 것과 少에서 多가 生한 것이 그 大部分이니, 옛적보다 人文이 發達하고 人口가 膨脹한 것도 長의 象이오 사람들의 各種 生活資料와 여러 가지 器物이 새로 發明된 것도 또한 長의 象이다. 그런데 生의 時運에서 長의 時運으로 넘어올 때에는 一年으로치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오는 때와 같아서 無形에서 有形이 生하는 것이지만, 앞으로 長의 時運에서 成의 時運으로 넘어갈 때에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때와 같아서 生長하던 것이 모두 收斂으로 變하고 이제까지 茂盛하던 잎사귀가 서리를 맞아서 떨어지고 여문 열매와 쭉정이가 分別되는 것이다.

     

     

     

    地球 달 사람의 變化

     

    宇宙의 天體는 그 組織이 陰陽의 二元作用으로 되어 收斂作用과 發散作用이 있으므로 그 生生하는 過程에는 스스로 한번 陰하고 한번 陽하고 하여 收斂하는 時運과 發散하는 時運이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太陽系의 宇宙도 時運의 變化가 있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地球도 不斷히 變化하고 있는 것이다. 地球는 發生하는 當時에 單番에 完成된 것이 아니오 거기에도 生長成의 象이 있어 生의 時運에 生하고 長의 時運에 자라며 지금에는 長의 時運에서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는 때이다. 地球가 長의 時運에는 樹木生成의 理와같이 內部에 있는 陽氣가 外部로 發宣放出되어 陰陽이 調和치 못하므로 氣候의 極寒과 極暑가 있고 南北極의 地가 凍結하는 것이오 成의 時運에는 陽氣가 外部로부터 內部에 入하여 地熱이 높아지고 極寒과 極暑가없어 氣候가 溫和하고 南北極地方의 얼음이 풀리는 것이니 지금에 南北極의 얼음이 조금씩 풀리고 있는 것은 地球가 長의 時運에서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는 徵兆이다.

     

     

     

    地球에 어떠한 變化가 生하면 地球의 胎宮으로 되어있는 달에도 또한 變化가 生하는 것이다. 달의 組織은 艮山과 兌澤으로되고 艮兌는 乾坤의 六子中에 最少하므로 母體의 胎宮中에서 자라고 있는 胎兒의 象이 되는데, 胎中의 胎兒는 반드시 여물어서 母腹外로 出産하는 것이라 成의 時運이되면 胎中에 있는 달도 또한 여물어서 變化하고 달이 變化하면 그 軌道가 또한 變化하는 것이다. 달의 變化하는 象을 生成의 理로써 보건대, 사람의 胎兒가 母腹中에 있을 때는 母體와 逆行하여 倒生의 象이 되는 것인데 胎兒가 出産하면 母體와 같이 頭가 天을 向하고 足이 地를 밟는 것이니, 이 理에 依하여 지금에는 달의 表面이 地球를 向하고 裏面은 늘 裏面대로 있는 것인데 달이 여물어서 軌道가 變化하면 月體가 뒤집혀서 지금의 表面이 안으로 숨어버리고 지금의 裏面이 地球를 向하게 되는 것이다. 달의 消하는 그믐에는 달이 太陽의 앞에 있고 달의 始生하는 初生에는 달이 太陽의 뒤에 있는 것이니 이 理에 依하여 成의 時運에 달이 出生하는 때는 달이 太陽의 앞에서 太陽의 뒤로 돌아가는 象이 되어 日月地球의 軌道의 相互關係가 모두 變하는 것이다.

     

     

     

    달의 軌道는 어떻게 變化하는가 하면 易學에는 乾坤의 正策數가 三百六十으로 되어 있어 이것이 周天의 正度數 三百六十度와 一歲의 正日數 三百六十日을 象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周天度數는 三百六十五度餘가 되고 一歲의 日數는 三百六十五日餘가 되어 度數는 正度數보다 五度餘가 더 많고 日數는 正日數보다 五日餘가 더 많으니 이 五日餘는 正日數보다 늘어나는 閏日이다. 閏이라 함은 懷妊生殖하여 數가 늘어난다는 뜻이라, 지금은 長의 時運이므로 天時에도 每歲 五日餘의 閏日이 生하는 것이며 每歲에 五日餘의 閏日이 生하는 까닭에 日月의 運行을 標準한 太陰曆에는 五歲에 約 兩次의 閏日을 두고 閏月이 드는 해는 十三月이 되어 이것을 閏歲라하고 閏歲의 總日數는 平均 三百八十四日인데 이것은 一歲의 正日數 三百六十日보다 二十四日이 더 많으니, 그러므로 二十四日은 閏日數의 象이 되는 것이다.

     

     

     

    母胎中의 胎兒는 閏生의 象이므로 胎兒의 數는 二十四로 되고 지금의 地球가 約 二十四度를 傾斜하고 있는 것도 또한 母胎中에 胎兒의 閏數 二十四가 보태어 있는 까닭이다. 胎中에서 자라고 있는 胎兒는 자람이 끝나면 반드시 여물어서 母腹外로 出産하는 것이오, 胎兒가 出産하면 胎兒의 閏數 二十四가 줄어서 母體는 三百六十의 正數가 되는 것이므로 地球의 胎宮에서 달이 여물어서 軌道가 變하면서 出産하면 地球에서 二十四의 閏數가 줄고 正數 三百六十이 되어 地球의 傾斜가 바로 서는 것이니, 이가 地球와 달의 變化하는 때이다. 地球가 바로 서고 달의 軌道가 變하면 海洋과 潮汐에 큰 變化가 일어나서 水가 北地에서 汐하고 南天에서 潮하고 또 水가 萬折하여 東으로 向하는 것이니, 이가 成의 時運의 始로서 閏없는 三百六十日曆이 나오는 때이다.

     

     

     

    註 ●胎宮 二十四數

     

    易卦數는 六十四卦인데 六十卦는 父母數이오 四卦는 胎宮數이니 一卦 六爻로써 計算하면 六十卦는 三百六十으로서 正數가되고 四卦는 二十四로서 閏數가 되는 것이다. 易卦 六十四卦의 總爻數는 三百八十四數로 되어 閏歲 三百八十四日數와 同一하고 乾坤正策數 三百六十보다 二十四가 더 많으니 이 二十四는 胎宮 四卦의 爻數로서 그것이 胎宮에서 자라고 있는 胎兒의 閏數이다. 易經의 上經은 百八十爻이오 下經은 二百四爻로서 上下 傾斜의 象이 되는 것은 下經속에 胎宮 二十四爻가 들어 있는 까닭이니, 地球의 傾斜 約 二十四度도 이 理에 依한 것이다.

     

     

     

    天地의 時運이 變化하면 사람의 生理에도 또한 變化가 生하는 것이니, 長의 時運에는 사람의 心氣가 主로 外向하여 權勢 財利 名譽等 外的 生活에 置重하고 生長競爭이 甚하며, 또 時運의 象을 生物로써 보면 長의 時運은 動物의 象이오 動物은 專혀 本能生活을하고 거의 全部가 個體生活을 하는 것이므로 사람도 長의 時運에는 本能生活과 個體主義生活이 主生活로 되고 極端的으로는 動物生活에 墮落하는 者도 없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나 成의 時運이되면 사람들의 生理가 一轉하여 天性이 여물고 神作用이 生하여 能히 空間의 幽深과 時間의 未來를 通觀할 수가 있고 個體主義가 變하여 天下가 同人하고 世界人類는 모두 한 家庭을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長의 時運에는 天地自然數가 九數까지만 자라고 十數의 자리가 열리지 아니하여 暗黑속에 싸여 있으므로 사람마다 그 뱃속에 獨自한 秘密을 감추고 있어 사람과 사람사이에 서로 信賴할 수가 없고 서로 利害關係로서 다투고 있어 이 世上은 公明할 날이 없는 것이다. 長의 時運에서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면 十數가 열려서 自然數가 具全하여 神의 作用이 行하고 사람들의 天性에 神의 作用이 行하면 이 世上에는 秘密이라는 것이 存在할 수도 없고 또 사람들의 마음이 光明하여 惡을 行하는 秘密을 뱃속에 두지도 아니하여 이 世上은 光華한 神世界를 이루는 것이다.

     

     

     

     

     

    物質文明의 沒落과 精神文明의 發達

     

    사람의 生理가 時運을 따라서 變化하므로 사람의 學問의 傾向도 또한 時運을 따라서 變化하는 것이다. 萬物의 生生에는 모두 生命과 神의 二元이 있는데, 生命의 運動은 無形에서 有形한 形質이 生하여 物質이 되고, 神은 無形하여 有形한 物質속에 갈무리하여 있고 사람의 天性 心情等 精神은 形質속에 갈무리하여 있는 神作用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形質이 자라기는 物質로써 하고 精神이 여물기는 神作用으로써하며, 또 사람은 자라는 일만을 自由意志에 依하여 行하고 生하고 여무는 일은 神作用에 依하여 行하는 것이므로 그 形質이 자라기 爲하여 物質生活을 營爲함에는 사람마다 그 個體의 自由에 依하여 行하는 것이다. 動物들은 天然物에 對하여 아무런 加工도 없이 그대로 먹고살지만 사람은 반드시 天然物에 人工을 加하여 그 所用하는 物資를 創製하는 것이니 이가 人工이 天工을 代成함이오 이는 사람에게 物을 創製하는 才能과 自由가 있는 까닭이다.

     

     

     

    지금은 長의 時運이오 長의 時運은 形質의 자라는 때이므로 사람들은 自體가 자라기 爲하여 形質의 자라는 原理를 硏究하기에 心力을 다하고 있는데, 長의 時運의 初期에는 사람들의 生活이 單純하고 그 精神作用이 또한 어리므로 그 生活에 必要한 事物에 대한 硏究가 部分的으로는 進步와 發明이 깊지 아니하였으나 그 原理를 體系的으로 짜 놓은 學問은 없었으며, 사람들의 精神이 漸次 자람을 따라서 비로소 事物을 硏究하는 여러 가지 方法이 案出되고 그中에서도 特히 分析과 實驗에 依하여 形質의 자라는 原理를 찾아내는 學問이 생기니 이가 곧 科學이다. 科學이라 함은 分析과 實驗에 依하여 物質의 組織運行되는 原理를 證明하는 學問이오 分析이라 함은 草木의 자랄 때에 枝葉이 漸漸 나뉘움과 같은 것이니 科字도 草木이 자라서 가지가 나뉘운다는 뜻이며, 그러므로 科學은 長의 時運에 사람들이 自體가 자라기 爲하여 形質의 자라는 原理를 案出하여 系統的으로 그 原理의 體系를 세운 學問이다. 長의 時運의 初期에는 비록 科學이라는 學問은 없었으나 사람들이 人工으로써 天工을 代行하여 그 生活資料를 創製하여 살아온 것이오 이들 創製物은 賢哲한 先知者들이 나와서 發明發見한 것이니 이는 科學以前의 人工이나 그 以後의 人工이나가 모두 그 때와 環境에 따라서 사람의 精神에서 案出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에 온 世人이 科學의 偉大함을 敬歎하여 科學萬能時代가 되고 있으나 이것은 決코 科學의 偉大함이 아니라 오로지 사람의 精神發達의 偉大함에 基因한 것이다. 사람의 精神에는 生하고 자라고 여물고 하는 發展이 있고 長의 時運의 사람의 精神은 時運과 함께 자라고 있으므로 사람의 自由意志에 依하여 能히 事物을 分析 實驗하여 形質의 자라는 原理인 科學이라는 學問을 發見한 것이니 그러므로 科學은 사람의 精神의 자라는 過程에 形質의 자라는 原理를 硏究하는 方法으로서 案出된 産物에 不過한 것이오 이는 사람의 精神이 偉大하여 그 자라는 때에 物質文明을 建設하기 爲하여 科學이라는 한 用具를 쓴 것이다.

     

    그러므로 科學은 長의 時運의 人類社會에 燦爛한 物質文明을 建設한 功績은 적지 아니하나 거기에는 스스로 一定한 限度가 있고 그 限度에 達하면 그 以上 더 자라지 못하고 도리어 病的症狀이 나타나는 것이다.

     

     

     

    萬物에는 物質과 精神의 兩面이 있어 生長成의 運動을 行하고 있는데 사람은 精神이 善하기만 하면 無限性을 가지고 生하고 자라고 여물어서 神과 相通하는 것이지만 物質로 된 形質은 자라기만하고 여물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形質이 자람을 極하면 여무는 것이 아니라 老衰하여 消滅하는 길로 向하는 까닭이다. 이것을 草木으로써 보면 여름에 草木의 枝葉이 繁盛하여 靑綠이 滿地하면 그 榮華한 景致는 可謂 絶勝이다. 그러나 여름과 가을의 交代하는 어느 하루아침에 이르러 氣候의 變化로 因하여 秋風이 일어나면 이제까지 繁榮을 極하던 枝葉의 榮華는 一時에 枯落하고 여문 열매만이 가지의 사이에 남게 되는 것이니, 枝葉의 榮華는 사람의 形質의 象이오 여문 열매는 사람의 여문 精神의 象이다. 人類社會는 宇宙의 時運에 應하여 長의 時運과 成의 時運이 있으므로 長의 時運에서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는 때에는 이제까지의 物質文明은 사람의 形質과 같이 또한 草木의 枝葉과 같이 반드시 자람을 停止하고 老衰枯落하는 것이오 그 뒤에는 사람의 여문 精神이 神作用을 行함과 같이 또한 草木의 열매가 여물어서 世世繼承하는 作用을 行함과 같이 반드시 한 次元 더 높은 神作用의 文明이 發生하는 것이다.

     

     

     

    그러면 科學은 그 자람을 極하고 한 次元 높은 새 文明을 낳을 수가 없는가 하면, 科學은 分析實驗하는 方法을 通하여 形質의 자라는 原理를 찾아내는 學問이니 形而下學的인 物質의 面은 이러한 方法으로써 硏究할 수가 있으나 分析實驗의 領域外에 있는 形而上的 事物 例컨대 萬物의 씨는 처음에 어떻게 생기고 또 어떻게 여물어서 宇宙創造 當時에 생겨난 씨가 지금까지 世世繼承하여 傳來하는가 하는 原理라든가 萬物에는 그 生長成하는 自然法則과 整然不亂한 秩序가 어떻게 생겨서 各自가 獨立的으로 生成하면서 또한 全體가 有機的으로 함께 生成하고 있는가 하는 作用이라든가에 對하여는 一言半句의 答案도 내리지 못하고 있으니 이는 科學은 사람이 形質의 자라는 原理를 찾기 爲하여 案出된 學問이므로 科學으로서는 物質의 자라는 原理밖에는 硏究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形質의 자라는 동안에만 自由意志를 行使하고 科學은 사람의 自由意志에 依하여 案出된 學問이오 사람의 精神의 여무는 것은 神作用에 依하여 行하는 것이므로 科學으로써 事物을 硏究함에는 오직 形質의 자라는 範圍에 그치고 그 以上의 여무는 領域에 對하여는 거의 無知에 가까운 것이다.

     

     

     

    더욱이 萬物은 모두 宇宙神에서 創造되고 神을 中心으로하여 그자라는 때는 遠心運動을 行하여 形質이 자라고, 그 여무는 때는 向心運動을 行하여 精神이 여물면서 神에게로 돌아가는 것인데, 科學은 形質의 자라는 原理를 찾는 物質學으로서 遠心運動을 行하고 있으며, 遠心運動을 行하는 者는 神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므로 科學은 發達하면 發達할수록 神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고 내종에는 全然 神을 忘却하게 되는 것이니, 이 遠心運動에서 向心運動으로 넘어가는 轉換點이 곧 科學으로서는 넘을 수 없는 限度로서 한次元 더 높은 文明을 誕生할 수 없는 所以이다.

     

     

     

    萬物에는 生長成의 運動이 있어 자라면 반드시 여물기로 되어 있으되 形質과 같은 것은 자람이 極하면 老衰하여 消滅의 길로 向하는데 이消滅의 길로 걸어가는 過程에 病的症狀이 일어나는 것이니, 老人들의 老衰가 곧 이 病의 症狀이다. 科學文明은 物質文明으로서 人間社會의 道德이나 善惡같은 것은 全然關涉하지 아니하고 오직 物質生活의 一層向上을 爲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人類生活의 向上을 爲하여 案出한 科學이 지금에 와서는 도리어 原子武器를 만들어 가지고 瞬息間에 이 地球도 破壞할 수 있을만치 橫暴하여 人類의 生存을 威脅하고 있으니, 이는 科學이 老衰病에 걸린 症狀이다.

     

     

     

    人口의 生産은 사람의 形質의 자라는 象이오 人類의 生生運動은 반드시 한번 陰하고 한번 陽하여 陰陽이 調和한 然後에 過度한 것도 없고 不及한 것도 없고 適當히 生하고 適當히 자라는 것인데, 長의 時運에 사람들의 氣가 모두 外向하고 그 崇尙하는 學問인 科學이 또한 자라는 方面으로 突進하여 發散하는 것만을 알고 內收할 줄을 알지 못하므로 形質이 過度히 자라서 人口의 生産이 急激히 膨脹하여 도리어 人類自體의 生活을 威脅하고 있으니, 이는 形質이 너무 자라서 老衰病에 걸린 症狀이다. 原子武器의 橫暴와 人口生産의 過剩은 科學이 形質의 자라는 일에만 偏向하고 여무는 原理를 알지 못하는 所致로 생긴 病的症狀이며, 이 病은 科學속에는 아무런 治療方法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精神에는 生長成의 發展이 있는지라, 長의 時運에는 形質의 자라는 原理의 學問인 科學을 發明하여 燦爛한 物質文明을 建設한 것이오 科學에는 자라는 原理만 있고 여무는 原理가 없으므로 老衰하여 病的症狀이 생기고 있지만, 사람의 精神은 長의 時運에서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는 때에는 여물기 爲하여 자라기를 求하지 아니하므로 時運으로 더불어 함께 여물려고 하는 人類에게는 科學은 쓸 곳이 없는 묵은 學問이 되는 것이오 또 여문다는 일은 자라는 原理의 學問인 科學에게는 全然 想像조차 不到하는 未知의 境域이다. 그러므로 여물기를 求하는 사람에게는 여무는 原理의 學問이 必要한 것이오 이 學問은 곧 精神을 여물게 하는 神作用의 原理인 神學이다. 成의 時運에는 오직 神學만이 사람의 精神을 여물게 하여 過度히 자란 科學의 病的症狀을 克服하고 陰陽의 調和作用으로써 自然스럽게 人口의 生産을 調節하여 人類社會에 物質文明보다 한 次元 더 높은 精神文明을 建設하는 것이다.

     

     

     

    神學에 依하여 精神文明이 建設되면 사람들은 精神이 여물어서 지난날에 形質의 자람을 爲主하던 物質文明을 다시 追求하는 者가 없어서, 物質文明은 秋風이 일어난 뒤의 枝葉과 같이 枯落하고 神學에 依한 精神文明이 枯落한 枝葉사이의 열매와 같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神學이라 함은 어떠한 것인가 하면 佛敎의佛經 儒敎의易學 基督敎의聖經과 같이 宇宙神과 사람과의 關係를 말한 學問이 곧 神學이오 神學에 依한 精神文明이라 함은 從來의 科學은 사람의 精神이 모두 外向하여 外的知識을 求하므로써 事物에 對한 知識은 廣汎하게 얻을 수가 있었으나 自身의 精神은 昏暗하여 靈的으로는 하나의 無知한 人間이 되고 있는 것인데, 神學은 精神이 內向하여 스스로 內明하므로 神作用이 生하고 神과 相和하여 肉眼으로 볼 수 없는 事物도 能히 靈眼으로써 볼 수가 있고, 肉耳로써 들을 수 없는 일도 能히 靈耳로써 들을 수가 있고 未來의 事物을 豫觀할 수도 있는 것이니, 이가 神學에 依한 精神文明이다.

     

     

     

    長의 時運에는 사람들이 自由意志로써 形質의 자람을 爲하여 生長競爭을 行하고 그 까닭에 形質의 자라는 原理의 學問인 科學을 至上 學問으로 삼고 있으므로 사람들의 精神의 光明이 모두 形質에 掩蔽되어 昏暗하게 된 것이오, 成의 時運에는 사람들이 神으로부터 善惡에 對한 審判을 받고 비로소 精神이 內向하여 스스로 그 마음을 昭明하게 하는 것이므로 사람들의 靈이 通明하는 것이며, 이 長과 成의 時運이 바뀌우는 때에 지금까지 繁榮을 자랑하던 科學文明이 물러가고 한 次元더 높은 神學文明이 오는 것이다. 이것을 易理로써 보면 人類의 科學時代의 生活은 蠱의 幼虫生活과 같고 神學時代의 生活은 蠱의 幼虫이 成虫인 蝶으로 化한 生活과 같은 것이다.

     

     

     

     

     

    第二節 새 宗敎의 出現

     

    ■ 宗敎는 神道의 敎

     

    宗敎라 함은 무엇인가, 易經에「聖人이 神道로써 敎를 設하매 天下가 服한다」한 것이 宗敎의 本旨를 말한 것이다. 神道라 함은 易經에「觀天之神道而四時不忒」이라 한바와 같이 神이 한번 陰하고 한번 陽하고 하는 道로써 物을 生하고 자라게 하고 여물게 하고 하는 四時의 生長成作用을 行함을 말함이니 宇宙間의 萬物은 모두 神道에 依한 生長成의 作用으로써 生하고 자라고 여물고 하며, 사람도 이 生長成의 作用에 依하여 無形한 神으로부터 有形한 形質을 받아서 生하고 生한 然後에 自由意志로써 人工을 行하여 자라고 자란 然後에 天性이 여물어서 다시 神에게로 圜行하는 것이다. 聖人은 이 神道의 生長成하는 作用을 본받아서 사람이 바르게 生하고 바르게 자라고 바르게 여물고 하는 敎理를 삼고 그것으로써 敎를 設하여 사람을 가르치시니 이에 天下의 사람이 모두 이 敎理에 服從하여 神道의 속에서 生活하게 된 것이오, 이 神道의 敎理로써 사람을 가르치는 敎育이 곧 宗敎이다.

     

     

     

    神은 宇宙生成의 主宰로서 唯一無二하여 宇宙生命體를 統率하고 있으므로 宇宙의 生命體組織이 곧 神의 體이며 그러므로 宇宙生命體가 萬物을 生生함에, 無形에서 有形한 形質을 造出하는 生의 作用과 陽氣가 發動하여 物을 자라게 하는 長의 作用과 陰氣가 收斂하여 物을 여물게 하는 成의 作用이 있음과 같이 神의 體에도 또한 이 生長成의 세 가지 作用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唯一神이 生長成의 어느 한 作用만을 行하신다고 하면 이는 한 個體의 作用이 되고마는 것이며, 統體는 個體의 作用을 行할 수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聖人을 이 世上에 내시어 各其 神의 體의 一部分씩을 맡게 하고 聖人은 神의 計劃한 自然法則에 依하여 生長成의 理로써 敎를 設하여 사람들을 가르치신 것이며 自然法則의 生長成作用에는 스스로 時運의 區別이 있으므로 神道의 敎에도 또한 生에 對한 敎理, 長에 對한 敎理, 成에 對한 敎理의 區分이 있는 것이니, 이가 宗敎가 各立하여 그 敎理를 달리하는 所以이다.

     

    神의 體가 生長成作用을 行하는 象을 天地日月로써 보면 太陽속의 有形한 陰質은 宇宙無形中에서 始生한 有形體로서 生의 象이 되는데, 太陽의 組織은 陽氣인 天과 陰氣인 地와 電氣인 雷와 磁氣인 風과 및 水火의 精으로써 構成되고, 그 中에서 地風水火의 陰質이 太陽에서 分離하여 地球가 된 것이니, 그러므로 太陽속의 陰質과 地球는 同質의 有形體로서 生의 象이 되고 있는 것이다.

     

     

     

    萬物은 形質이 있으면 스스로 生生作用을 行하기 爲하여 반드시 陽性과 陰性의 兩性이 있고 이 兩性의 交互作用에 依하여 生長成의 作用을 行하는 것인데 太陽에서 나오는 光明은 陽性으로서 陽氣의 發施作用을 行하고 陽氣는 長의 象이되며, 地球에 屬하여 있는 달은 地球의 胎宮인 陰性으로서 陰氣의 收斂作用을 行하여 太陽에서 오는 陽氣를 承受하여 物을 여물게 하고 陰氣는 成의 象이 되는 것이다. 또 神의 體의 生長成作用을 人身으로써 보면 사람의 形質은 無形에서 有形이 生하여 마치 太陽속의 陰質과 같은 것이므로 이것은 生의 象이 되고 男體의 陽氣는 자라서 發施作用을 行하여 마치 太陽의 陽氣가 地球와 달의 陰質에 發施됨과 같은 것이므로 이것은 長의 象이 되고 女體의 胎宮에서 胎兒가 長成하여 母腹外로 出産하는 것은 마치 달이 太陽의 陽氣를 承受하여 物을 여물게 함과 같은 것이므로 이것은 成의 象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生이라 함은 無形에서 有形한 形質의 始生함을 象함이오 長이라 함은 陽氣가 運行하여 物을 始하여 形體가 자람을 象함이오 成이라 함은 陰精이 陽氣를 包含하고 義가 和하여 次世代를 作成함을 象함이다.

     

     

     

    宇宙의 主宰인 神의 體에는 이와 같은 세 가지 作用이 있고 이 세 가지 作用은 各其 生長成의 세 가지 時運과 合致하는 것이므로 聖人의 敎도 또한 세 가지 作用을 區分하여 세 가지 時運에 合致하는 敎를 設하신 것이니, 그러므로 처음에 나온 佛敎는 神의 體의 生하는 作用과 生하는 時運을 象하고, 다음에 나온 儒敎는 神의 體의 長하는 作用과 長하는 時運을 象하고, 내종에 나온 基督敎는 神의 體의 成하는 作用과 成하는 時運을 象한 것이다. 世間에는 여러 가지 形態의 宗敎가 있으나 이 神道의 세 가지 作用中에서 어느 한 作用을 敎理로 한 然後에 聖人의 敎가 되는 것이오 그렇지 못한 者는 聖人의 敎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佛敎의 敎理

     

    佛敎가 神의 體의 生하는 作用이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天地間에서 最初로 無形에서 有形이 生한 것은 太陽속에 있는 地風水火의 陰質인데, 佛敎는 地水火風의 四大로써 形質組織의 要素를 삼으니 이는 佛敎가 形質의 始生함을 象하여 生의 象이 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佛敎는 色이 그대로 空이오 空이 그대로 色이라 하여 萬物의 自性은 生도 없고 滅도 없다하니, 이는 萬物의 形質이 空에서 生하여 色은 空을 떠나지 아니하고 空은 色을 떠나지 아니한다는 뜻으로서, 無形에서 有形한 形質의 生하는 象을 말한 것이다.

     

     

     

    地水火風의 陰質이 太陽의 속에 있을 때에는 늘 太陽의 光을 받아서 光明을 發하고 있으나 그것이 太陽에서 分離하여 地球로 되는 때에는 陰質이 陽光을 가리워서 光明을 發치 못하는 것이며, 사람은 地水火風의 陰質과의 因緣에 依하여 地上에서 生하고 자라는 것이니, 이 陰質은 我도 아니오 我의 것도 아닌 것인데, 사람의 陰質이 자라는 때는 스스로 光明을 가리워서 無明이 되는 것이오 無明이 되면「我」「我의 것」이라는 主觀的 執着이 生하여 貪嗔癡라는 三毒作用이 일어나서 一生을 煩惱와 苦의 속에서 헤매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佛敎의 修行에 依하여 我라든가 我의 것이라든가 하는 主觀的 執着을 없이하면 비록 形質은 있으되 形質의 生이 生 그대로 있고 자라지 아니하여, 마치 太陽속에 있는 陰質이 陰質그대로 있으면서 光明을 發揚함과 같은 것이오 形質이 光明을 發하면 스스로 貪嗔癡의 모든 煩惱를 解脫하고 生老病死의 苦가 없는 것이니, 이것을 草木으로써 보면 草木의 씨의 組織이 자라지 아니하고 組織된 그대로 있는 象이며 組織된 그대로 있는 者는 內部에 光明을 갈무리하고 그 作用이 寂然히 靜하므로 佛敎는 그 修行의 極致를 光明과 寂靜에 두는 것이니, 이가 佛敎의 根本敎理이다.

     

     

     

    太陽속의 陰質과 地球의 陰質과는 모두 地水火風으로 되어 그 本質이 同一하고 사람의 씨는 太陽의 光明에서 오고 있으되 그 陰質은 또한 地水火風으로 되어 地上의 陰質에서 자라고 있으므로 佛敎에서는 사람의 生前에 잘 修行하여 天性이 씨의 組織과 같이 組織그대로 있고 자라지 아니하면, 死後의 鬼神이 天上의 光明한 곳에서 生한다 하고 이 光明한 곳을 極樂世界라 한다.

     

    極樂世界는 光明이 燦爛하여 아름답고 깨끗하며 나무와 宮殿이 모두 七寶로 되어 있다 하니 七寶라 함은 燦爛한 七色光明으로서 이것이 바로 太陽光明의 七色의 象이다. 天上의 光明體는 太陽과 달이오 달은 地球에서 分離하여 달의 陰質과 太陽속의 陰質은 그 本質이 同一하고 太陽의 光明과 달의 光明이 또한 그 本質이 同一한 것인데, 太陽은 陽性이므로 發散作用을 行하여 生함을 主하고 달은 陰性이므로 收斂作用을 行하여 여무는 것을 主하니 그러므로 사람의 死後鬼神은 發散作用을 行하는 太陽에는 가지 못하고 收斂作用을 行하는 달로 가는 것이며, 이 까닭에 太陽의 光을 받아서 光明을 發하고 있는 달이 곧 極樂世界이오 이는 鬼神이 달에 依附한다는 理에 依한 것이다. 地球의 陰質과 달의 陰質은 그 本質이 同一하므로 사람은 地上에도 生하고 天上의 달에도 生하여 死後에 極樂世界로 갈 수가 있는 것이다.

     

     

     

    佛敎는 生을 象하여 자라지 아니하는 修行을 쌓기 爲하여 「我」「我의것」이라는 執着을 없애는 同時에 또한 사람의 主要한 本能을 抑制하고 있으니, 그 敎人들이 生産業을 營爲치 아니하고 乞食을 하는 것은 飮食本能을 抑制함이오 婚姻을 하지 아니하여 家庭을 두지 아니하는 것은 生殖本能을 抑制함이다. 사람의 本能에는 飮食本能 生殖本能 및 長壽本能의 세 가지가 있는데, 我 我의것에 執着치 아니하고 自身의 形質을 私有치 아니하여 精神的으로 長壽本能을 抑制하고 또 肉體的으로 飮食本能과 生殖本能을 抑制하니, 이는 徹底히 자라지 아니하는 修行이다. 그러나 宇宙의 時運變化는 人力의 미치지 못하는 곳이므로 佛敎에도 時運變化에 順應하는 일이 있으니, 釋迦가 前生의 善慧菩薩로부터 人世에 出生할 때에 「모든 사람이 佛法에 들어올 根性이 익었는가, 人間界에서 부처될 때가 되었는가」하는 것을 觀察하고 人間에 태어난 것인즉 釋迦 以前의 사람들은 아직 佛法에 들어올 根性이 익지 못하여 비록 修行을 하더라도 人間에서 부처가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오, 이가 時運變化의 證據이다.

     

     

     

    佛敎는 神의 體의 生하는 作用을 象한 것인데, 그 敎理에 宇宙 唯一神을 말하지 아니하고 數多한 天神을 말하니 이는 形質의 始生함을 象한 까닭이다. 物의 形質이 生하는 者는 모두 個體로 되어 空間에 布列하는 狀態로 되고 始生한 童蒙과 같아서 能動的인 統一運行이 行치 못하니 統一運行은 唯一神의 作用인데, 形質의 始生을 象한 佛敎에는 統一運行이 없으므로 唯一神을 말하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나 佛敎에도 唯一神이 없는 것은 아니다. 儒敎에서는 唯一神을 上帝라하고 基督敎에서는 唯一神을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世界人類는 모두 唯一神의 子孫, 唯一神의 百姓으로서 서로 兄弟가 되고 있으며 神의 最大事業은 그 子孫인 世界人類를 生養하는 일이오 따라서 사람의 最大事業과 最大道德이 또한 自身의 兄弟인 世界人類를 生養하는 일이니, 이 까닭에 儒敎에서는 仁을 行하여 百姓을 사랑하라 하고 基督敎에서는 博愛로써 네몸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는 것이며 佛敎에서는 慈悲로써 衆生을 濟度하라하니 衆生을 濟度하는 것이 곧 儒敎 基督敎와 같이 自身의 世界兄弟를 生養한다는 原理에서 나온 일이오 世界人類를 自身의 兄弟로 생각하는 것이 곧 宇宙唯一神을 모시고 있는 證據이다.

     

     

     

     

     

    儒敎의 敎理

     

    儒敎가 神의 體의 長하는 作用이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儒敎의 原文은 易經이오 易經에는 太陽에서 오는 陽子인 震子가 자라서 달의 陰精과 相交하는 象을 말하고 있으므로 長의 時運을 象한 敎理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易經序卦의 初頭에는 天地의 創生하는 때의 日月의 生하는 原理를 말하고 中間에는 달의 자라는 原理를 말하고 終端에는 달이 여물어서 變化하는 原理를 말한 것이며 易經은 日月의 變化로써 時運의 生長成하는 原理를 말한 까닭에 易經이라는 易字가 日月로 되고 거기에 變易 遷易한다는 뜻을 寓한 것이다.

     

     

     

    易經에 말한 日月相交는 太陽의 震雷와 달의 兌澤이 陰陽作用으로써 相交하는 것인데 震은 長男이오 兌는 少女이며 易理에 二長二少의 相合을 正이라 하고 長과 少의 相合을 不正이라 하는 것이므로 震長男과 兌少女의 相交는 不正의 象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長의 時運에는 사람이 自由意志를 가지고 相克을 主하여 반드시 陰陽이 正치 못하고 서로 生長競爭을 行하여 惡이 發生하는 것이며, 이 까닭에 易經에는 人類가 始生한 곳에 惡을 막고 善을 揚함을 말한 것이며 惡을 막고 善을 揚하는 것이 儒敎의 根本敎理이다. 物의 자라는 것은 將且 여물기 爲함이오 物이 여물면 內部에 神作用을 包含하는 것이므로 儒敎에는 佛敎나 基督敎와 같은 死後의 極樂 天堂의 理를 말하지 아니하고 다만 이 地上에 人類世界가 있고 天上에 神世界가 있고 사람의 天性이 여물어서 神에게로 圜行한다는 原理를 말한 것이다.

     

     

     

    ■基督敎의 敎理

     

    基督敎가 神의 體의 成하는 作用이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太陽에서 오는 震子는 달의 陰精中에 入한 然後에 萬物의 形質을 作成하여 여무는 것이오, 震子가 달에 入하면 마치 사람의 生殖作用에서 男體의 精子가 女體의 卵子를 決하여 入하고 卵子는 自體를 犧牲하고 그 血이 精子를 包하여 精子와 卵子의 相交하는 때에 萬物을 妙하게 하는 神作用을 받고 있음과 같이 달의 陰精도 震子를 承受하는 때에 陰精이 決하고 血이 違去하는 理가 있는 것이며, 예수가 十字架에서 몸을 犧牲하고 保血의 作用으로써 그 弟子들를 包하고 聖靈을 내려서 弟子들의 天性을 여물게 하여 死後에 天堂으로 가게 하는 것은 바로 달의 陰精이 震子를 育成함과 같은 것이니, 이 保血로써 弟子들의 天性을 여물게 하여 神에게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基督敎의 根本敎理이다.

     

     

     

    예수는 무슨까닭에 自身을 犧牲하여 弟子들을 育成하는가 하면 예수는 宇宙神의 自然法則을 따라서 自體의 生成을 爲하여 그 弟子들의 天性을 여물게 하는 것이니, 이는 예수는 神의 體의 成하는 作用을 行하는 象으로서 神의 子孫들을 여물게 하는 任務를 맡고 있으므로 自體를 犧牲하고 그 保血로써 弟子들을 育成하는 것이 곧 神의 生成作用을 代行하는 同時에 또한 自體의 生成을 完遂하는 길이 되는 까닭이다. 陰精이 陽氣를 受하여 胎育함에는 반드시 陰精의 犧牲과 血去作用이 行하는 것이므로 예수의 十字架犧牲과 保血은 바로 이 任務를 遂行하여 神의 自然法則을 完成한 것이다.

     

     

     

    萬物의 生長한 者는 반드시 死하고 物의 死하는 것은 罪를 짓고 死刑을 當하는 象이니, 그러므로 生長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出生하면서부터 原罪를 짓고 있는 것이며, 사람이 死하지 아니하고 永生하게되면 이는 原罪를 贖하는 象이다. 聖經에는 世界人類가 모두 아담 해와의 子孫으로 되어 있는데 아담 해와가 善惡果를 따먹고 生長한 까닭에 老死하는 罪를 짓고 그 子孫들은 모두 반드시 자라서 죽는다는 原罪를 지은 것이오, 예수의 弟子들은 예수의 保血에 依하여 聖靈을 받고 救援을 받아서 永生하게 되는데 永生하는 것은 原罪를 免한다는 뜻이라, 이는 예수가 그 保血로써 弟子들의 原罪를 贖한 象이 되는 것이다.

     

     

     

    달의 陰精이 太陽의 震子를 承受하여 物을 作成하는 것은 樹木의 接木하는 理인데, 예수의 弟子가 예수의 안에 들어가서 예수를 믿고 그 保血作用에 依하여 聖靈을 받는 것은 또한 接木의 象이 되므로 聖經에는 이것을 葡萄나무에 가지를 接함과 같다고 한 것이니 이는 예수가 달의 象이 되고 있는 까닭이다. 달이 처음에 出生한 것은 宇宙父母의 相交에 依하여 出生한 것이 아니라 그 母體인 地球에서 自然發生하여 分離하여 나온 것이오 地球는 달의 母體의 象이니 이는 달이 母體에서 童貞女誕生한 것이며 예수가 母胎中에서 童貞女誕生한 것은 달이 그 母體인 地球에서 自然發生한 것과 같은 것이다. 聖經에는 예수의 出生에 對하여 말하기를「하나님의 말씀이 肉身이 되었다」고하니, 이것을 易理로써 보면 말씀은 澤精의 象이오 澤精은 또한 달의 象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 함은 太陽에서 分出한 달이라는 뜻이오 하나님의 말씀이 肉身이 되었다 함은 달의 澤精이 예수의 肉身이 되었다는 뜻이니 달이 예수의 肉身으로 된 것이 곧 예수의 童貞女誕生의 理이다.

     

     

     

    예수는 달의 象으로서 陰體의 作用을 行하므로 男子이면서 妻를 聚하지 아니하고 남의 子女인 弟子를 包容하여 接木作用을 行한 것이다. 예수의 弟子들은 天性이 여물어서 死後에 天堂으로 가는데 死後의 鬼神은 반드시 收斂作用을 行하는 달로 들어가는 것인즉 天堂도 또한 달을 말함이니 이는 佛敎의 極樂과 基督敎의 天堂이 모두 달을 말한 것이다. 佛敎 儒敎 基督敎의 세 宗敎는 神의 體의 세作用中에서 各其 한 作用을 取하여 敎理를 삼아서 人類를 敎化한 것이므로 세 宗敎는 모두 唯一神의 一部分씩을 象하고 設敎의 目的이 또한 모두 사람이 神을 닮는데에 있는 것이니, 이제 그 敎理의 異同한 바를 例擧하여 본다.

     

     

     

    三敎 敎理의 相互關聯

     

    佛敎는 太陽속의 陰質을 象하고 儒敎는 太陽의 陽氣가 地球와 달의 陰精을 相交함을 象하고 基督敎는 달을 象하며 佛敎는 生함을 象하고 儒敎는 長함을 象하고 基督敎는 成함을 象한 것이 그 相異한 바이다.

     

    이 生長成을 易理로써 보면 佛敎는 伏義八卦圖의 象이오 儒敎는 文王八卦圖의 象이오 基督敎는 正易八卦圖의 象이다.

     

    佛敎의 生死解脫의 理는 聖經의 아담 해와의 理와 相通하니 佛敎는 生을 象한 宗敎이오 씨의 生한 것이 生 그대로 있어 자라지 아니하고 모든 感覺에서 生하는 貪嗔癡의 煩惱를 끊으면 苦에서 解脫되어 天上에서 生하고 다시 人間世上으로 오지 아니하는 것이니 이는 天上에서 永生하는 理이며, 基督敎의 創世記에는 아담 해와가 비로소 有形한 人間으로 出生하여 生命나무의 열매만 먹고 善惡을 아는 善惡果를 먹지 아니하면 天上에서 永生하는 것인데 蛇의 誘惑을 받아서 善惡果를 따먹은 까닭에 에덴 동산에서 몰려나고 마침내 生活의苦 死의苦 孕胎의苦가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을 서로 比較하여 보면 佛敎가 貪嗔癡의 마음을 끊는다 함은 자라지 아니한다는 뜻이오 基督敎가 善惡을 모른다 함은 또한 자라지 아니한다는 뜻인데 蛇의 誘惑을 받고 善惡果를 따먹은 것은 곧 자라기 始作한 象이다. 그러므로 만일 아담 해와가 善惡果(生長成)를 따먹지 아니하고 자라지 아니하여 天上에서 永生하면 이는 바로 佛敎의 敎理가 되는 것이며, 아담 해와가 蛇의 誘惑을 받은 까닭에 자라고 또 여물어서 基督敎의 敎理가 生한 것이다.

     

     

     

    蛇는 陰氣의 자라는 象이니 이것을 易理로써 보면 易學은 長을 象한 學問이오 上經은 陽의 長함을 말하고 下經은 陰의 長함을 말한 것인데, 上經 首卦의 陽에 龍의 象이 있고 下經 首卦의 陰陽相交에 龍蛇의 象이 있으니, 이는 陽의 長하는 象을 龍이라 하고 陰의 長하는 象을 蛇라 한 것이며 해와가 蛇의 誘惑을 받았다 함은 해와는 女體로서 陰精의 자라는 衝動을 받고 있는 象이다. 지금 基督敎의 一派에서 神父 修女의 獨身制度가 있는데, 이것은 아담 해와가 善惡果를 따먹기 以前의 象으로서 佛敎의 獨身出家의 理와 相通하는 것이다.

     

     

     

    佛敎는 사람의 生前에 煩惱의 마음을 끊지 못하면 몇生동안 人間에 幻生하여 마음을 닦는 것이니, 이가 輪廻의 理이며, 만일 生前에 煩惱를 끊으면 天上에 나서 다시 이 世上에 오지 아니하는 것이며, 基督敎에서는 天性이 여물어서 天堂에 가면 天堂에서 永生한다 하니, 이것도 兩敎의 永生敎理가 相同한 것이다. 다만 佛敎는 生을 象하므로 몇生동안 天上과 人世를 往來하여 다시 人世에 와서 修行하고 修行이 되지 아니한 者는 畜生地獄과 人世를 輪廻하지만 基督敎는 成을 象하므로 長에서 成으로 넘어갈 때에 審判을 받고 永生과 쭉정이가 決定되어 있으므로 다시 畜生地獄等으로 輪廻하는 일은 없고 다만 天上과 人世를 往來하는 것이다. 地獄은 佛敎와 基督敎가 同一히 地中을 말한 것이니 地中은 熱湯이 끓고 있는 곳인데 罪를 지은 사람의 鬼는 이 地中熱湯속에 居하는 것이니 地獄은 달의 極樂天堂과 對照되는 것이다. 佛敎에서는 天上에 난 사람이 그 所願에 따라서 이 世上에 幻生하여 衆生을 濟度하는 일이 있고 基督敎에서도 엘리아가 요한으로 幻生하였으니, 이것이 또한 天上 人世를 往來하는 한 形態이다.

     

    佛敎는 神의 體의 形質의 始生함을 象한 것이므로 神의 體에서 發揚하는 陽氣의 作用과 收斂하는 陰氣의 作用이 모두 그 속에 包含되어 있어 한편에서는 不斷히 發揚하고 한편에서는 不斷히 收斂하여 遠心運動과 向心運動이 倂行하고 鬼神과 사람이 서로 循環生生하여 人世에도 나고 天上의 極樂에도 나고 畜生地獄에서도 나는 것이다.

     

     

     

    儒敎의 原文인 易學은 神의 體의 陽氣가 發揚하여 物의 長함을 象한 것이오 物의 長하는 者는 遠心運動을 行하여 神에서 漸漸 멀어지는데, 遠心運動을 行하는 物은 비록 神과 相離하지는 못하되 또한 神과 相和하지도 못하여, 自由意志로써 自身을 行動하고 있으니, 그러므로 사람의 自由意志의 善惡이라는 것은 그 長하는 동안에 遠心運動을 行하는 때에만 있는 것이오, 이 自由意志에 依한 行爲의 善惡에 따라서 天性이 여물기도하고 쭉정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天性이 여무는 것은 神으로부터 福을 받는 象이오 쭉정이가 되는 것은 神으로부터 害를 받는 象이니, 이가 自身의 行爲에 對하여 自身이 責任을 지고있는 原理이다. 사람이 長하는 동안은 生과 成의 中間에 있어 死와 關聯되지 아니하고 있으므로 易學에는 極樂地獄의 理가 없고 다만 害福의 理가 있는 것인데 그 實은 害가 地獄으로 가는 길이오 福이 極樂으로 가는 길이다.

     

     

     

    基督敎는 神의 體의 陰氣가 收斂하여 物의 成함을 象한 것이오 物의 成하는 者는 向心運動을 行하여 神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며, 사람이 向心運動을 行하면 天性이 여물어서 神에게로 돌아가고 向心運動을 行치 아니하면 天性이 여물지 못하여 神에게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神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그 鬼神이 消滅치 아니하고 永生하는 것이니 이가 基督敎의 永生의 理로서 天堂으로 간다는 것이다.

     

     

     

    儒敎와 基督敎는 神의 體內의 陰陽關係로서 한번 陰하고 한번 陽하고 하는 道이므로 儒敎의 易學과 基督敎의 聖經은 一神의 兩面으로 되어 두 글이 모두 神의 啓示로 되어있는 것이다. 易學은 聖人이 河圖와 洛書를 則하고 蓍法을 用하여 지은 글인데, 河圖는 伏羲氏때에 龍馬가 圖를 등에 지고 河水에서 나온 것이오 洛書는 堯舜때에 龜가 書를 등에 지고 洛水에서 나온 것으로서 모두 神의 啓示하신 그림이오 蓍法은 聖人이 神明을 幽贊하여 生한 것이며, 聖經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記錄한 글로서 神의 啓示에 依하여 이루어진 것이니 이는 長의 時運에서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는 때에 天地日月의 變化가 있으므로 神은 그 子孫들의 向할바의 길을 가르치시는 同時에 또한 그 時運에 處할바의 方法을 알리시기 爲하여 學問으로된 易學과 信仰으로된 聖經을 啓示로써 이 世上에 내리신 것이다. 佛敎의 經典에 神의 啓示가 없는 것은 佛敎는 唯一神을 말하지 아니하고 또 生을 象하여 童蒙의 象이 되는데 童蒙은 神의 啓示를 알지못하고 童蒙의 敎育에는 스승의 말이 가장 有效한 것이므로 그 글은 主로 스승인 부처의 敎訓으로 된 것이다.

     

     

     

    易經과 聖經은 모두 神의 啓示로 된 글로서 서로 表裏가 되고 있으므로 易經序卦의 初頭와 聖經創世記의 初頭는 서로 깊이 通하고 있는 것이다. 序卦 初頭의 乾坤卦는 天地의 始로서 創世記 初頭의「太初에 하나님이 天地를 創造하심」이오 序卦의 屯蒙卦는 水가 始生하고 昏昧의 속에서 光明이 始發하는 것으로서 創世記 첫날의「神이 水面에 運行하시고 晝夜가 나뉘움」이오 序卦의 需訟卦는 天이 水中에 있다가 天과 水가 나뉘우는 것으로서 創世記 둘째 날의「穹蒼이 생기고 穹蒼아래의 물과 穹蒼위의 물로 나뉘움」이오 序卦의 師比卦는 水土가 合하여 땅이 始成하는 것으로서 創世記 셋째날의「天下의 물이 한곳으로 모여서 땅과 바다가 되고 草木이 生함」이오 序卦의 小畜履卦는 달이 비로소 생겨서 日月의 光明이 地上을 비치는 것으로서 創世記 넷째날의「두 큰 光明이 생기어 큰 光明은 낮을 主管하고 작은 光明은 밤을 主管함」이오 序卦의 泰否卦는 위의 天과 下의 地가 相交하여 萬物이 通하는 것으로서 創世記의 다섯째날의「물과 땅위에 生物이 蕃盛함」이오 序卦의 同人大有卦는 人類가 始生하여 天으로부터 天佑神助를 받는 것으로서 創世記 여섯째 날의 「하나님의 形狀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地上 空中 물속의 모든 生物을 다스리게 하심」이오 序卦의 謙豫卦는 달에서 發生한 사람의 씨가 비로소 地上에 내려와서 有形한 人間이 되는 것으로서 創世記 일곱째날의「天地와 萬物이 다 이루어짐」이다. 그런데 序卦에는 謙豫卦의 다음인 隨蠱卦에 山澤의 水土氣가 合하여 사람의 形質이 생기고 거기에 風을 넣어서 蠱를 生하고 이에 男女가 分化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聖經도 일곱째날의 創造完成은 天上에서 사람의 씨를 完成함이오 地上에서 有形한 人間形質을 完成한 것은 아니며, 그러므로 일곱째날이 지난 뒤에 비로소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生命을 불어넣어 아담을 創造한 것이오 사람은 男女가 모두 男體속의 精子에서 出生한다는 理에 依하여 아담의 몸의 一部를 떼어서 해와를 創造하였다고 한 것이다.

     

     

     

    易經에는 生의 時運으로부터 長의 時運으로 넘어갈 때에는 原始人의 大部分이 水中에 瀆하고 오직 最初로 出生한 震子가 天地 雷風 水火 山澤의 八象을 具하여 着生하여 瀆치 아니하고 비로소 上帝가 人類의 祖上임을 알 것인대 聖經에 노아 洪水는 또한 生의 時運으로부터 長의 時運으로 넘어가는 때로서 오직 當代의 義人이라하는 노아 家族 八人만이 살고 그 外의 사람은 全部 水瀆하였으니 이가 두 글이 서로 表裏가되는 곳이오 노아 家族의 父母 三男 三婦의 八人은 바로 易經의 父母 三男 三女의 八卦의 象이다.

     

     

     

    易學의 陰陽二元은 一體二元의 理인데, 基督敎에서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生命을 불어넣었다 하는 것도 또한 一體二元이며 佛敎의 因緣도 모두 相對性을 띄어 一體二元의 象이 되니 佛 儒 基督의 三敎는 神의 體의 象인 日月地球의 組織原理에서 나온 것이므로 모두 一體二元의 理로 되는 것이다.

     

     

     

    三敎一體의 새 宗敎

     

    사람은 神의 子孫으로서 世上에 태어나서 바르게 生하고 바르게 자라고 바르게 여물고 한 然後에 다시 神에게로 돌아가서 神을 祐하여 宇宙의 生成事業을 行하는 것이니, 이가 사람이 世上에 태어난 目的이다. 그러나 사람의 자라는 동안에는 그 自由意志에 依하여 善惡間에 마음대로 行하고 神을 믿고 믿지아니하는 것도 또한 그 사람의 自由意志에 屬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神은 그 子孫되는 世界人類에게 바르게 生하고 바르게 자라고 바르게 여물고하는 길을 가르치시기 爲하여 聖人을 世上에 보내어 神道로써 生長成의 原理를 가르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佛敎는 生의 原理를 가르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비록 形質을 가지고 있으되 太陽 속의 陰質과 같이 生 그대로의 狀態로 있어 光明을 잃지 아니하고 어둠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는 것을 敎理로 한 것이오, 儒敎는 長의 原理를 가르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形質은 비록 자라고 있으되 太陽의 光明이 陰質에 掩蔽되지 아니하고 그 性情이 光明을 發揚하는 것을 敎理로 한 것이오 基督敎는 成의 原理를 가르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에서 보낸 聖靈을 받고 天堂으로 올라가는 것을 敎理로 한 것이니, 이 세 宗敎는 神의 세 가지 作用으로서 셋이면서 하나이다.

     

     

     

    釋迦 孔子 예수 세 聖人은 비록 그 敎理는 生長成의 세 가지를 各其分擔하여 設하고 있으되 모두 長의 時運에 出生하고 있으므로 그 敎理에는 長의 時運의 사람들을 가르치는 原理가 共通으로 들어 있으니, 이는 佛敎의 慈悲와 儒敎의 仁과 基督敎의 博愛이다. 萬物의 자라는 것은 將且 열매를 맺아서 씨가 永遠히 繼繼生生하기 爲함이오 사람의 자라는 것도 또한 天性이 여물어서 알맹이가 생겨서 神作用을 行하기 爲함인데 알맹이는 仁의 象이오 사람의 天性에 仁이 있은 然後에 善이 發育하여 天性이 여무는 것이니, 儒敎는 자람을 象한 것이므로 알맹이가 되는 仁을 말한 것은 當然한 일이오 佛敎의 慈悲와 基督敎의 博愛도 모두 仁이라는 뜻이며, 이는 세 聖人이 모두 長의 時運에 出生하고 그 時運의 사람들이 모두 자라는 過程에 있으므로 그 사람들로 하여금 天性이 仁을 行하여 자라면서 여물게 하기 爲하여 仁과 慈悲와 博愛를 根本敎理로 한 것이다.

     

     

     

    지금은 長의 時運에서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는 때이므로 사람들은 스스로 向心運動으로써 神에게로 돌아가는 때이며, 神에게로 돌아가면 스스로 神의 體의 陰氣의 收斂하는 속에 들어가는 것이오, 神의 收斂하는 속은 곧 예수의 안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지금에 예수를 믿지 아니하고 佛敎를 믿든지 儒敎를 믿든지 其他 어떠한 宗敎를 믿든지를 勿論하고, 宇宙唯一神을 믿고 神의 事業을 祐하는 者는 모두 예수의 안으로 들어가서 結果的으로 基督敎를 믿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聖經의 아담 하와 記錄에 生의 時運을 象한 佛敎의 敎理가 있고 노아方舟記錄에 長의 時運을 象한 儒敎의 敎理가 있고 또 三敎의 經典中에는 오직 聖經에 宇宙唯一神인 하느님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바르게 여물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바르게 生하여야하고 또 반드시 바르게 자라야 하는 것이므로 宇宙唯一神의 生長成의 세 作用을 法하여 佛敎의 敎理대로 生하고 儒敎의 敎理대로 자라고 基督敎의 敎理대로 여문 然後에 能히 神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오 后天의 새 宗敎는 이러한 原理에서 出發하는 것이다.

     

     

     

     

     

    第三節 未來의 政治

     

    ■ 師傅政治

     

    長의 時運은 遠心運動의 形態로서 사람이 神으로부터 점점 멀어져서 神作用이 行치 못하고 사람들의 自由意志에 依하여 政治를 行하므로 生長競爭이 激甚하여 善惡이 뒤섞여 있고 勢力의 强한 者가 勢力의 弱한 者를 壓制하고 政權을 잡고 民衆의 위에 臨하고 있으므로 政治形態가 君主政治이든지 資本主義의 政治이든지 또는 民主政治이든지를 不問하고 모두 權力政治로 되어 權力으로써 民衆을 支配하는 것이니, 이가 長의 時運에 行하는 政治의 特徵이다. 權力政治의 制度下에서는 스스로 權力을 잡은 者가 權力없는 民衆을 支配하게되어 옛적의 君主政治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近世의 所謂 民主政治라는 것도 實際에 있어서는 權力이 民衆을 支配하는 政治이오 民衆을 國家의 主權者로 모시는 政治가 아니니, 이는 長의 時運의 人間들은 자라는 過程에 있는 한 未成品으로 되어 있으므로 사람의 生生事業을 遂行한다는 생각보다 그 權力을 自由意志대로 行使하고 싶어하는 생각이 앞서는 까닭이다.

     

     

     

    近世 所謂 共産主義라는 政治가 나와서 資本主義 打破를 標榜하고 資本主義下의 植民地를 解放시킴에는 一助가 되고 있었으나, 宇宙의 唯一神을 알지못하고 唯物思想에 빠져서 階級獨裁로써 民衆을 奴隸化하는 政治를 行하니 이 政治는 人間社會에 絶對로 容納할 수 없는 虐政이다.

     

     

     

    政治라 함은 國家最大의 生生事業이오 어느 執權者의 私利를 爲하는 일이 아니니, 그러므로 爲政者는 民衆의 飢寒하는 것을 自己家族의 飢寒함과 같이 여기고 民衆의 病苦하는 것을 自己家族의 病苦함과 같이 여긴 然後에 國家의 生生事業이 完遂되는 것이니, 이것은 蜂蟻社會의 例로써 알 수 있는 일이다. 蜂蟻社會는 그 多數한 群衆이 自然스럽게 和合하고 各自가 모두 그 職務에 忠實하여 秩序가 自然스럽게 維持되고 있으니, 이는 그 社會의 統率者가 바로 父母이오 社會의 構成員이 모두 子息으로서, 父母와 子息의 한 家族이 한 集團을 이루어, 社會員이 곧 한 家族인 까닭이다. 人間社會는 그렇지 아니하여 數多한 家族으로써 構成되고 있으므로 그 統率者는 自己의 家族과 他人의 家族을 差別하여 民衆을 自己의 家族과 같이 생각치 아니하고 權力으로써 支配하며, 그 民衆이 또한 그 統率者를 自家의 尊長과 같이 생각치 아니하고 하나의 權力支配者로 여겨서, 이에 蜂蟻社會와 같은 自然스러운 秩序가 서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神은 萬物의 創造主로서 사람의 始祖가 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모두 神을 모시고 神의 뜻에 合하는 나라를 세우면, 神은 비록 無形하되 스스로 그 나라의 天祖가 되고 世界人類는 모두 天祖一神의 밑에서 一祖의 子孫이 되어 한 家族을 이루게 되는 것이니, 이는 바로 蜂蟻社會의 形態이다. 그러나 神은 無形하므로 사람들이 神을 모시는 것은 精神의 面을 말함이오 政治는 아니며, 成의 時運에 實際 政治를 行함에 있어서는 神의 뜻을 받들어 行하는 師傅制度가 行하는 것이다.

     

     

     

    師傅制度라 함은 師傅가 政治의 任에 當하여 神道로써 사람을 가르쳐서 知識을 열고 天性을 여물게 하고 國家의 政治機關은 權力機關이 아니라 한 敎場으로 되어 있고 國家機關에 從事하는 官員은 모두 師傅의 일을 行하고 民衆들은 權力에 支配되는 것이 아니라 師傅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制度이다. 萬物中에서 言語와 文字를 使用하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니, 사람은 言語로써 複雜한 意思를 表示하고 온갖 事物의 狀態를 說明하며, 文字는 모든 言語를 記錄하여 空間과 時間을 超越하여 遠隔地에서도 서로 意思를 傳達할 수가 있고 몇 千百年前의 일이라도 文字의 記錄에 依하여 그것을 알수 있는 것이며, 사람에게 言語와 文字가 있는 까닭에 師傅의 道가 行하여 人間의 오랜동안의 經驗과 硏究를 弟子에게 傳達하여 能히 그 天性을 여물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師傅와 弟子와의 關係는 비록 他人과 他人의 사이라 하더라도 그 恩誼가 父母子息間의 사이와 같아서 師傅는 그 弟子를 子息과 같이 생각하고 弟子는 그 師傅를 父母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니, 師傅制度下의 政治는 蜂蟻社會의 形態와 거의 同一한 作用을 行할 수가 있는 것이오, 비록 蜂蟻社會와 同一치 아니하다 하드래도, 저 長의 時運의 權力支配의 社會와 같이 師傅가 弟子를 欺瞞하거나 搾取하거나 陰害하거나 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易理에는 成의 時運에 師傅政治가 行하기로 되어있는 것이다. 지금의 先天時代에도 사람을 敎育하는 師傅의 道가 없는 것은 아니나 先天의 敎育은 長의 時運에 處하여 사람들의 心氣가 外向하여 外的知識의 獲得에 專力하고 있으므로 사람을 자라게 하기는 하되 사람을 여물게 하지는 못하여, 비록 敎育을 받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天性에 쭉정이가 많고 알맹이가 적은 것이다. 成의 時運에 神道가 行하는 師傅政治의 行하는 社會에서는 唯一神을 大始祖로 모시고 國家의 統率者인 師傅는 神과 相通하여 父母의 格이 되고 全社會가 한 家族으로 되어 和平한 生活을 享有하는 것이다.

     

     

     

     

     

    註 ●易學의 父子 國家 師傅의 道

     

    天地自然數로써 構成된 河圖洛書 및 正易數에 父子의道 國家의道 師傅의道 가 있으니, 河圖의 數는 五行이 相生으로 되어 父傳子受의 象이 되므로 父子의 道가 되는 것이오, 洛書의 數는 五行이 相克으로 되어 勢力으로써 相勝하는 象이 되므로 勢力으로써 權力을 爭奪하는 國家의 道가 되는 것이오, 正易의 數는 五行이 克成으로 되어 師傅가 弟子의 天性을 여물게 하는 象이 되므로 師傅의 道가 되는 것이다.

     

     

     

    五行의 相克과 克成은 그 象이 同一하면서 그 運行은 判然히 相異하니, 相克이라 함은 長의 時運에 自身이 자라기 爲하여 他를 克하여 自身의 자라는 資料를 삼고 自身이 被克者의 世代繼承者가 되는 것이오, 克成이라 함은 成의 時運에 他를 克하여 그 天性을 여물게하고 他로 하여금 克者의 世代를 繼承하는 者로 삼는 것이니, 이는 長의 時運에는 사람이 自由意志를 가지고 生長競爭을 行하여 他를 克하고 克者의 生長을 圖하는 것이오, 成의 時運에는 神이 사람의 天性을 여물게 하는 때이므로 그 克이라는 것은 克者의 生長을 爲함이 아니라 他를 克制하여 그 天性의 속에 神作用을 갈무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河圖五行의 相生하는 生의 時運에는 父子의 道가 行하고, 洛書五行의 相克하는 長의 時運에는 國家의 道가 行하고 正易五行의 克成하는 成의 時運에는 師傅의 道가 行하는 것이다. 또 互卦에도 父子 國家 師傅의 道의 象이 있으니 互卦라함은 卦中의 人位를 相互하여 卦를 지은 것이다. 三劃卦는 中劃이 人의 象이오 六劃卦는 三爻와 四爻가 人의 象이니 그러므로 六劃卦에서는 三爻四爻와 中劃인 二爻五爻가 모두 人의 象이오 이 人象의 爻를 모두 中爻라 한다. 中爻의 四劃을 相互하여 三四五로써 上卦를 삼고 二三四로써 下卦를 삼아서 六劃卦를 만든 것이 곧 互卦이니, 그러므로 互卦는 天地間에 人類가 生生하고 있음을 象한 것이며 互卦에 父子의道 國家의道 師傅의道 가 있는 것은 趙柯汀의 學說에서 取한 것이다. 序卦의 首에 있는 乾卦의 互卦는 亦是乾卦이오 坤卦의 互卦는 亦是 坤卦이니 이는 第一世 乾坤이 第二世 乾坤을 生하는 것으로서, 父母가 子女를 生하여 世世生生하는 父子傳承의 道가 되는 것이다. 序卦의 終에 있는 旣濟卦의 互卦는 未濟卦이오 未濟卦의 互卦는 旣濟卦이니 이는 第一世 旣濟가 第二世 未濟를 生하고 第一世 未濟가 第二世 旣濟를 生하는 것으로서, 서로 그 子를 바꿔서 他子로써 자기의 繼承者인 子를 삼아 「子를 바꿔서 가르친다」는 師傅傳承의 道가 되는 것이다. 乾 坤 旣濟 未濟의 四卦를 除하면 그 나머지의 六十卦는 모두 父子가 隱藏하고 子女가 홀로 出現하니 이는 子女가 父母를 離脫하여 國家社會로 進出하는 것으로서 國家社會의 世世傳承하는 道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生長成은 生하기를 父子의 道로써하여 父傳子受하는 相生으로써 繼承하는 것이오, 자라기를 國家의 道로써하여 勢力의 相勝하는 相克으로써 繼承하는 것이오 여물기를 師傅의 道로써하여 스승이 弟子를 敎育하는 克成으로써 繼承하는 것이다. 序卦는 互卦의 象으로써 이 세 가지를 말하니, 사람의 生함은 父子에서 始하는 것이므로 父子의 道인 乾坤으로써 首를 삼은 것이오, 父子가 있으면 國家社會가 組織되는 것이므로 屯卦에서 建侯한 以後는 國家社會의 道로써 序한 것이오 國家社會가 있으면 모든 對待를 調和하기 爲하여 師傅의 道로써 易簡의 理를 가르치는 것이므로 師傅의 道인 旣濟 未濟로써 序卦를 終한 것이다.

     

     

     

     

     

    日月運行法則이 政治의 原理이다

     

    師傅政治는 神道에 依한 政治인데, 神道라함은 天에 있어서는 日月의 運行이 틀리지 아니하는 것이 神道이오 人間에 있어서는 聖人의 設한 宗敎가 神道이다. 佛敎 儒敎 基督敎는 세 聖人이 神道로써 사람을 가르친 宗敎이니, 先天時代의 長의 時運에는 사람들의 自由意志에 依하여 政治를 行하고 있으므로 神道로써 部分的으로 사람을 가르치는 宗敎는 設할 수가 있으나 神道로써 全民衆을 다스리는 政治는 行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長의 時運에서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면 政治도 또한 神道로써 行치 아니하면 안되는 것이며, 神道政治는 日月運行의 法則을 取하여 그 原理를 삼는 것이니, 正易에「日月의 政이 至神至明하다」하고 또「雷風이 位를 正하고 政을 用한다」하여 日月의 運行을 政이라고 한 것은 日月에 政治原理가 있다 함을 말함이오, 이는 사람의 씨가 日月에서 生한 까닭에 日月의 運行法則이 바로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인 政治原理가 되는 것이다.

     

     

     

    正易은 近世에 우리 나라의 易學者 一夫先生이 天의 啓示를 받아서 지으신 글로서 長의 時運의 學問인 易經을 後繼하여 成의 時運에 日月軌道의 變化하는 象을 豫示한 學問인데, 正易의 理에 依하면 長의 時運에는 萬物이 자라서 閏餘가 生하는 象이오 日月의 行度에도 스스로 閏餘가 生하여 지금의 一歲日數가 三百六十五日餘가 되니 一歲의 日數는 三百六十日이 正한 것이므로 지금의 每歲 五日餘는 閏數로 되는 것이다. 日月行度에 閏餘가 있으므로 日月의 行度가 서로 差錯하여, 몇해에 한번씩은 閏日이나 閏月을 두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니, 이것을 日月行度의 不正이라고 하며 日月이 不正하므로 萬物의 자라는 것도 또한 正치 못하여 人口가 過度히 膨脹하고 人心이 바르지 못한 일이 많은 것이다.

     

     

     

    長의 時運에서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면 周天度數는 꼭 三百六十度가 되고 一歲의 月數는 꼭 十二月이 되고 一月의 日數는 꼭 三十日이 되는 것이니, 이것이 日月의 正한 것으로서 一夫先生이 正易에 發表한 后天正曆이다. 后天正曆은 閏이 없고 正하므로 그 時運에는 陰陽의 調和에 依하여 人口가 自然調節되고 萬物도 여물어서 그 形이 正하고 人心도 正을 向하고 政治도 이 日月正度의 理를 取하는 것이다. 日月正度라함은 易經에 말한 易簡(이간)이오 易簡이라 함은 易字가 日과 月로써 構成됨과 같이 太陽이 陽氣를 달에 發施하여 物을 創始하는 作用이 極히 平易함을 易라하고, 簡字가 月로써 構成됨과 같이 달이 太陽의 陽氣를 承受하여 物을 作成하는 作用이 極히 簡約함을 簡이라 하는 것이며, 易簡은 곧 日月의 政이다. 日月이 天地間을 運行하여 晝夜와 四時를 生하고 萬物을 生成함이 至公無私하여 萬物은 日月의 運行하는 속에서 자연스럽게 生하고 자연스럽게 자라고 자연스럽게 여물면서 스스로 富有하고 스스로 日新하니 이가 日月의 易簡의 政이다.

     

     

     

    저 愚妹無知한 鳥獸虫魚도 能히 交精의 作用을 行하여 生長成하고 아무 意識이 없는 草木도 能히 交配의 機能을 다하여 生長成하고 있는 것은 모두 日月易簡의 政에 依한 것이다. 사람이 政治를 行함에 發施하는 政令이 平易하여 人心에 合치 아니하는 것이 없으면 이는 易가 되는 것이오, 承受하는 民心이 簡約하여 政令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이 없으면 이것은 簡이 되는 것이니, 政令과 民心이 서로 感應하여 生物들의 生成作用과 같이 自然스럽게 行하는 것이 곧 易簡政治이다.

     

     

     

    先天의 長의 時運에는 사람들의 天性이 여물지 못하고 政治가 未成品인 人間들의 自由意志에 依하여 行하고 政治를 行하는 者가 日月易簡의 理를 알지못하니, 그러므로 政治가 險阻하기만 하여 千章萬條의 法令을 만들고 複雜多歧한 機構를 만들며, 나라의 爲政層이 權力을 잡고 모든 法令을 만들고 있는데 實際로 나라의 法令을 어기는 者는 無勢無力한 民衆이 아니라 法令을 만든 者가 도리어 自身의 만든 法令을 어기는 것이 거의 大部分이니, 이 까닭에 政治가 易簡치 못하여 日月의 運行法則에 어그러지는 것이다. 日月의 運行法則을 原理로한 后天政治는 어떠한가하면 后天에는 日月의 運行하는 自然法則을 본받아서 師傅가 弟子를 가르치듯 하면서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을 行할 뿐이오 아무런 虛僞 私慾이 없으므로 지금과 같은 千條萬項의 强制法令이 必要치 아니하고 複雜盤錯한 權力機關이 쓸곳이 없고 온 世上이 가르치고 배우고 하는 것이 곧 政治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釋迦 孔子 基督의 세 聖人의 敎는 日月의 運行하는 神道에 依하여 設한 것이오 后天에는 三敎의 合一된 새 宗敎가 나와서 사람들을 敎育하는데, 敎育과 政治는 元來 한가지이오 두가지가 아니며, 또 사람의 씨가 日月에서 生하였으므로 敎育과 政治가 모두 日月의 運行하는 自然法則을 原理로 하고 있어 또한 敎育과 政治가 그 本源이 同一한 것이다. 그러므로 一夫先生의 提示한 正曆의 原理가 바로 后天宗敎와 后天政治의 原理로 되는 것이오, 이 正曆原理에 依하여 새 宗敎와 새 政治가 實行되면 이 世上에는 지금 사람들의 意思의 全然 想到치 못하는 社會가 展開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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